고통도 경쟁의 도구로 전락한 콜센터 상담사

[감시 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 위탁업체에서 2년째 상담사로 근무하는 A씨는 한 시민으로부터 최근 7호선 라인에 있는 한 패스트푸드 회사의 모든 지점의 위치를 안내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이에 30분 가까이 해당 패스트푸드 회사에 접속하여 주소를 검색해 안내 후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민은 다시 전화를 걸어 7호선 라인에 있는 다른 패스트푸드 회사의 모든 지점의 위치를 문의한다.

이에 A씨는 한 관리자에게 악성등록 요청을 위해 보고를 했지만, ‘니 운이라고 생각하라’는 터무니없는 답변을 들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해당 시민이 비슷한 내용의 문의를 위한 것으로 보이는 전화를 걸어왔다. 이 전화와 함께 관리자가 작성한 메시지에게 전달됐다. A씨가 관리자로부터 받은 메시지 내용은 ‘생활정보 민원이니 악성등록하지 말고 친절하게 응대하라’였다.


“회사의 압박, 콜센터 상담사 더 힘들게 해”

콜센터 상담사는 한국사회 대표적인 감정노동자 중 하나이다. 콜센터 상담 업무에 고객의 각종 무리한 요구와 폭언과 폭행, 성희롱 등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명숙 민주당 의원과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지난 8~9월 한 달간 벌인 ‘감정노동자 건강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콜센터 상담사, 백화점 판매원 등 감정노동자들은 10명 중 3명꼴로 ‘성적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폭언이나 인격 무시 발언은 10명 중 8명 이상이 들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수단이 절실히 필요한 직업이 콜센터 상담사와 같은 감정노동자들이다. 그러나 회사는 콜센터 상담사를 보호하기보다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폭력에 대해 스스로 이겨내거나 견디도록 압박한다. 상담사 A씨의 사례는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특히 업무 실적이 성과에 반영되어 앞으로 계약에 반영을 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고통스런 감정노동도 상담사 A씨와 같은 콜센터 상담사들은 견뎌내야 한다.

지난 10월 22일, ‘콜센터 노동자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캠페인단’과 한명숙 국회의원이 공동 주최한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 노동문제에 대한 토론회에서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다산콜센터의 경우 업무수행 과정에서 고객으로부터 불만으로 인한 인사상의 직간접적인 불이익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김 위원이 밝힌 불이익은 부서/팀 강제 전환배치, 인사고과 불이익, 성과급 불이익, 벌칙적용, 공개망신 등이 있었다.

또한 김 위원에 따르면 다산콜센터는 노조 설립 이전까지 매주, 매월, 분기별 응대율과 처리율, 민원 등의 사항에 따라 각 업체별 상담 인센티브가 반영되는 경쟁구조체제였다. 현재도 상담사는 평가 시스템(S~D등급)에 따라 성과급 형태로 임금을 받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고객의 무리한 요구 및 폭언 등의 폭력에 콜센터 상담사들이 대응하기 어렵게 만든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일상적인 감시, 하루하루가 지옥 같다”

임상혁 원진녹색병원 부설 노동환경연구소장은 “내 상태와는 무관하게 무조건 친절해야한다는 것이 콜센터와 같은 감정노동의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자신을 상급자와 회사가 더욱 힘들게 한다는 것이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회사의 일상적인 감시와 통제, 업무실적에 따른 임금 차별까지 감정노동이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이런 것에서 출발한다. 김영아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장은 “관리자는 앉은 자리에서 상담사가 화장실에 갔는지, 누구와 주로 같은 시간에 흡연을 하러 가는지, 민원을 접수하고 있는지, 몇 분 몇 초 동안 통화를 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면서 “일하는 시간동안 초단위로 감시를 받으며, 다른 이들보다 적게 일을 하면 바로 월급이 떨어지기 때문에 숨 막히는 무한경쟁을 콜센터 노동자들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로 인해 콜센터 노동자들은 우울증 등 질환으로 고통을 호소하기도 한다. 실태조사에서 296명의 콜센터 상담사 중 100명이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191명이 우울증을 겪은 적이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회사의 감시와 통제가 심하다는 것은 그만큼 열악한 노동조건을 통해 자신들의 이윤을 확대하려는 기업의 욕심에서 비롯됐다. 그리고 그에 따른 고통은 모두 상담사의 몫이 된다.

2년차 상담사 A씨도 “감정 없이 상담하면 없이 했다고 평가가 떨어지고, 감정이 담긴 상담을 하면 감정에 휩쓸린다며 기준 없는 잣대로 목을 조여 오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지옥이다”면서 “아침에 눈을 뜨면 회사 오기가 무섭고 두렵다. 아이가 있고 가정이 있어 그만두지 못하고 있지만, 늘 속으로 울고 있다”고 말했다.

간접고용과 저비용을 통해 보다 많은 공공기관의 콜센터를 맡으려는 아웃소싱 전문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콜센터 업무를 아웃소싱한 기관은 전체 7,639개 중 84%인 6440개로 파악되고 있다. 연간 약 15조원으로 파악되는 콜센터 시장은 메이저회사들이 3%만 차지할 정도로 다수의 중·소업체들이 경쟁을 하고 있는 구도이다. 그래서 지금도 콜센터 상담사들의 고통은 기업들의 경쟁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다.

<연재 순서>

(1) 감정노동자, 회사의 ‘감정통제’와 ‘감시’에 두 번 운다
(2) 흰 옷에 가려진 통제의 그늘, 간호사
(3) 강요된 웃음, 백화점 판매 노동자
(4) 감시와 통제, 돌봄 노동자
(5) 과로사 아니면 자살, 사회복지사
(6) 1인 승무, 공포와 싸우는 지하철 승무원
(7) 인력퇴출프로그램의 결말, 죽어가는 KT노동자
(8) 불법파견의 비극,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9) 퇴출악몽에 자살충동까지, 콜센터 노동자
(10) 독일과 일본, 감정노동자의 권리
(11) 감정노동자의 현실, 감정노동자의 권리

* 이 기획은 뉴스민, 뉴스셀, 미디어충청, 울산저널, 참세상, 참소리 공동기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