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오래도록 문학과 예술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려는 우리시대의 평범한 시민이자 시와 소설, 영화평론 등에도 관심이 있는 문학도. 세상은 마침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전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낙천주의자
"머릿속에 뭐가 들었나, 영혼과 정신마저 수입하려는 자들!"
싸늘한 가을 들녘에 서서
김규종 
가을걷이가 끝난 들녘에 나가 논길을 걷는다. 논에는 한여름의 장렬한 햇살과 모진 바람을 이겨낸 벼의 합창이 종언을 고하고 누런 밑둥치만 덩그마니 남아 있다. 그런 논에도 황량함만 자리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정갈함과 잘 만들어진 질서가 오롯하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탓이다. 인간이 자연에 순응하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의 뒷모습이 아닐 수 없다.

언젠가 비교우위와 자유무역협정을 내세우면서 논을 갈아엎어야 한다던 경제학 교수와 목소리 높여 언쟁한 적이 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한반도의 농업은 가격경쟁력이 없으니, 논을 모두 없애고 공장과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요한 농산물은 미국이나 중국에서 보다 싼 값에 사오면 되고, 우리는 공산품으로 승부하면 된다는 주장이었다.

한반도에서 논농사가 가지는 의미가 무엇인지, 대규모 곡물상인들과 국가주의가 어떤지, 국제관계가 어떤 역사적인 변화를 겪었는지 그 교수에게 물었다. 하기야 국립대학 등록금을 지금보다 세배 올리고, 대학총장은 대기업 총수 찾아다니며 발전기금 얻어오고, 한국대학은 스탠포드 대학 식으로 운영하면 최고일 것이라는 사람이니,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남위 35도부터 북위 51도까지 분포하는 논에서 농사를 짓는 나라는 35개국 정도 된다고 한다. 논농사의 북방한계선을 최고도로 끌어올린 당사자는 우리 조상들이다. 조선말기 조정의 가렴주구와 학정을 피하여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한 한인들이 밭을 논으로 개간한 것이다. 한국에서 논, 그것은 장구한 세월 동안 삶 자체이자 역사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아가 논은 쌀을 생산하는 단순한 농사현장이 아니다. 그것은 한여름의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는 보 노릇을 하기도 한다. 계단식 논부터 평지의 드넓은 벌판에 만들어진 크고 작은 저수지를 연상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논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공장과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해마다 홍수가 우리를 엄습할 것은 삼척동자도 알만한 자명한 이치다.

봄부터 가을까지 논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 풍치를 인간에게 선사하는가. 어린모에서 시작하여 제법 푸른 티를 내는 벼가 한들거리는 여름을 지나, 가을수확을 앞두고 미풍에 흔들리는 아름다운 황금물결을 바라보고 찬탄해본 사람들은 안다. 그리고 한겨울 내리는 눈발 속 논바닥에서 속이 텅 빈 우렁이 껍질을 들여다본 사람들은 안다. 논이 우리에게 무엇인지.

시집 <강아지풀>을 남긴 시인 박용래는 겨울 논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노래하였는가.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에/ 뒹구는/ 우렁껍질/ 수레바퀴로 끼는 살얼음/ 바닥에 지는 햇무리의/ 下棺/ 線上에서 운다/ 첫 기러기떼 (<하관> 전문)

그 논을 갈아엎고 공장과 아파트를 짓겠다니! 참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식량을 자급자족하지 못하고 나라 밖에서 사다 먹겠다는 생각은 또 얼마나 위험한가. 옷은 조금 덜 입어도, 집은 조금 허술해도 되겠지만, 먹지 않고 어찌 살겠는가. 농산물을 수출하는 이른바 외국 곡물 메이저들이 제멋대로 가격을 농단한다면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가.

100년 전 1905년에 우리의 자랑스러운 ‘우방’ 미국이 일본과 ‘카스라 태프트 밀약’을 맺어 조선을 일본에 넘겨주고, 저들은 필리핀을 접수한 역사적인 사실을 벌써 잊은 것은 아닌가. 한국이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한 것이 불과 13년 전 일이다. 국제정세와 국가관계는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우며, 식량자급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국가 중대사가 아닌가 말이다.

내가 무엇보다 우려하는 것은 이 나라 지식인, 특히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치는 자들의 머릿속 깊이 박혀있는 사대주의 근성이다. 근대이전 중국에 빌붙어 모화사상에 젖어있던 조상들의 후예답게 지금은 미국의 힘과 자본, 권력에 자발적으로 무릎 꿇은 대학교수들이 부지기수다. 중국 대신 미국을 식민모국으로 생각하는 지식인들이 너무 많다는 이야기다.

그런 자들의 눈에 비친 대한민국은 얼마나 한심하며 기준미달이겠는가. 제 나라의 문화와 역사적인 전통에 기초하여 현재를 살고 앞날을 설계하면서 후학을 인도함이 마땅한 법인데, 남의 나라를 최상의 전범으로 모셔놓고 그 틀에 맞추려고 진력하는 꼴이 안타까운 것이다. 사태의 핵심에 자리해야 할 ‘나’와 ‘우리’ 대신에 그들을 세운 ‘그들’을 난 이해할 수 없다.

아직도 중심을 찾지 못하고 밖에서 제도와 방식뿐 아니라, 영혼과 정신마저 수입하려는 그들 머릿속엔 무엇이 들어있는지 참 모를 일이다. (물론 이런 말은 우리나라 외교부, 교육부, 국방부 고위관료들부터 새겨들어야 할 터이지만). 공영방송에 난무하는 ‘로드맵’, ‘태스크 포스’, ‘21C', 'BK 21’, ‘에이펙’ 등의 어처구니없는 외래어 공해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열반에 들면서 석가모니는 “모든 것은 변한다”고 갈파했다 한다. 변화는 만상의 근본이치다. 애오라지 ‘지금’과 ‘여기’만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힘세고 강한 자에게 빌붙어 사는 노예근성은 이제는 버려야하지 않을까. 논바닥으로 월동에 들어간 미꾸라지와 온갖 미물들을 생각한다. 한겨울 폭설과 설한풍을 이겨낼 그들로 풍성해질 새봄의 초록물결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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