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부리]의 행.페이야기
박미선, "딴세상을 여기로 가져오는"(Bring elsewhere home) 페미니즘, 여성, 소수자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 이론과 실천으로서 페미니즘과 급진 이론의 혜안들을 '따로 또 함께' 나누는 페미니스트 네트워커. '행.페'는 '행동하는 페미니즘'의 줄임말
황우석 사태, 성,계급,인종 차별적 첨단과학 연구의 단편
과학 민족주의와 황우석 교수 찬반 논쟁을 넘어서
박미선 
최첨단 생명공학 실험에 대한 황우석 교수의 "고해성사"는, 지금 여기 우리가 (과학)민족주의, 그라고 "오~ 필승, 코리아"를 모두가 외쳤던 2002 월드컵식의 애국주의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그간 "영웅시"되어온 황교수를 두둔하거나 '개인'으로서 황교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황교수로 인해 불거져 나온 문제들을 통해서, 보다 민주적이고 윤리적인 과학 연구 및 사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 및 연구지침을 마련을 위해 적극 개입하는 일이다. 이것은 과학 일반, 특수하게는 최첨단 생명(의료)공학 연구 및 그것의 사회적 사용에 대한 생산적인 논쟁들과 이견들의 경합을 필요로 하며, 또한 이것은 과학 연구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우선, 황교수(의 성과)를 중심으로 한 찬반논쟁을 피할 필요가 있다. 생명 공학 일반, 특수하게는 스템 셀 관련한 윤리 문제는 한국 뿐 아니라 구미에서도 뜨거운 논쟁점이자, 이를 둘러싼 찬성과 반대를 중심으로 이데올로기들이 경합 중이다. 하지만, 찬성이냐 반대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최첨단 테크놀러지 및 과학 연구를 둘러싼 (생명)윤리적 문제들에 대한 젠더-인종에 민감한, 개방적이고 생산적 논쟁들이 더 전개될 필요가 있다. 그리하야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입장의 이데올로기들이 경합을 한다면, 그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보다 윤리적인 사회적 합의점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찬반 논쟁의 핵심에는 "발전"이라는 관념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데, 찬성파는 대체로 난치병 치료 운운을 근거로 하며, 반대 의견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거나 종교에 기반한 근본주의 성격을 띠곤 한다. 하이 테크놀러지 발전 및 테크노문화 발전은 크게 보아 인류발전에 기여해 왔고 기여할 것이 분명하지만, "발전"의 명분만 가지고 테크놀러지를 바라보는 것에 심각한 덫이 있다는 점은 이미 계몽주의 기획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들에서 드러난 바 있다.

생명공학 연구를 둘러싸고, "우리"의 생산적 논쟁과 개입을 절실하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보다, 누구를 위한, 어떤 윤리일 것이냐 하는 점이다. 과학 일반, 특수하게는 최첨단 생명(의료)공학의 윤리적 연구와, 윤리적이고 민주적인 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성(gender)과 계급, 인종(ethnicity)에 민감한 윤리기준이 수립되어야 한다.

우선은, 적극적이고 힘있는 주체로서 여성과 소수자들에게 금기시된 영역이 (정치만큼이나) 과학이었다는 점, 우리 시대 여전히, 그러나 가장 강력하게 울트라 쑤퍼 짱 남성중심적이고 남성주의적(masculinist) 최후의 영역이 과학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여성 연구원의 난자를 사용하고도, 그들의 "프라이바시"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했다는 황우석 교수의 뼈속깊은 젠더권력 맹안을 보라. (딴 소리지만, 윤리에 관한 한 "무지"는 변명이 되지 못한다.)

몇 년 전에 개봉된 영화이긴 하지만, <복수는 나의 것>과 <페이스 오프>는 의료 테크놀러지 발전으로 인한 신체(장기)거래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이 두 영화가 이 문제에 대한 똑부러진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 영화는 최첨단 (생명, 의료)과학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그라고 그것에 대한 윤리적 합의가 부재가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를 징후적으로 보여준 영화들이다.

우선, <페이스 오프>는 생명을 다루는 과학자(의사)의 "윤리"에 대한 문제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연쇄 살인 (혹은 연쇄 행방불명)의 핵심에는 심장이식 전문의사가 있다. 이 영화의 플롯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는 바로, "혁명적" 성과라 할 심장이식 연구에 매혹된 이 의사인데, 그는 항상 공급이 달리기 마련인 이식용 심장을 마련하기 위해 아주 치밀한 살인을 계획했던 것. 이 영화는 한 심장이식 전문의가 자기 명성을 위해서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최첨단 생명공학 연구의 매혹성을 넌지시 시사한다. 그러나, 이 의사가, 그라고 황교수가 보여주듯, 첨단 (생명)과학은 그 성과만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징후적으로 본다면, 어떤 특정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다른 생명들이 소리없이 죽어줘야 한다는, 열라 위계적인 논리와 구조가 최첨단 (생명, 의료)과학 연구에 이미 농밀하게 배여있다는 점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다.

<복수는 나의 것>은 이 최첨단 (생명, 의료) 과학의 사용이 계급적 그라고 전지구적 차원을 갖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신하균의 이야기가 보여주듯(신장병을 앓는 자기 누이를 위해서 돈을 모으다가 여의치 않자, 아이를 납치하고, 자기 의도와 달리 아이는 죽고, 결국 자기 신장을 불법 장기거래 집단에게 파는데), 신체장기 거래에서 "없는자," "제3세계"와 여성들은 "있는자," "제1세계"의 돈을 받고 진짜로 생몸을 팔게 되는 지경이다. 또한, 이 영화가 시사하듯 이 불법장기거래 집단은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조직과도 연결되어 있다. 즉 "제3세계"의 장기들이 "제1세계"로 팔려나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최첨단) 과학의 사용에도 인종적으로 위계화된 전지구적 자본주의 논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또한, 장기거래의 논리는 몸이란 떼어낼 수 있는 부분들의 합이라는 것이다 ("그깟 난자 좀 매매하면 어때서?"에 배여있는 논리). 이런 논리는 우리의 신체관(기, 혼, 살, 뼈의 통일체로서)을 뒤흔들고, 이제 신체부분들은 "상품"이 된다. 이런 발상보다 더 철저한 몸의 도구화가 있을까. 그리고 이러한 (의료 테크놀러지 발전과 더불어 수반되는) "몸의 상품화"는 다시 한번 젠더의 축을 따라, 그라고 계급문제와 국제적인 수준에서의 인종위계화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리고 황교수의 연구는, 치료와 연구 둘 다를 위한 이 신체 거래에 여성의 몸이 절실하게 (과학 발전을 위해서) 동원되(어야 한다는 점을 당연시함시롱 동원되)고 있음을 증명해버렸다.

의료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일어나고 있는 여러 문제들 (예컨대, 인공출산, 전지구적인 신체장기 거래, 성형수술과 외모지상주의 문제, 뇌사자의 장기이식, 난자매매 등)은 우리의 일상 멀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 문제들은 우리의 세계관, 인간관, 삶의 방식과 직결되는 문제다.

예컨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끈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 피비가 자기 동생 부부의 수정란을 대신 품어주는 출산 엄마를 해주는 경우는 단순히, 우리보다 더 잘 사는 넘의 나라 일만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어나고 있고 곧 더 많이 일어나게 될 일이다. 이 경우 이 아이의 부모는 둘인가? 셋인가? 단순한 인공수정이 아닌, 좀더 복잡한 의료 테크놀러지에 의해서 매개된 인공출산의 문제는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복잡한 문제를 우리에게 던질 것이다.

강수연식의 "씨받이"에서 첨단 의료 "씨받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도 벌어지고 있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이론적 합의는 부재한 상태다. 테크놀러지에 의해서 매개되는 임신과 출산은 여러 가지 담론적, 이데올로기적, 사법적 쟁점들을 초래하고 있다.

또한 초음파 테크닉으로 태아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자, 낙태와 태아의 생명권, 여성의 피임 권리 문제는 다시 논쟁이 되고 있다. 서구 사회에서 종교 단체들,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는 근본주의자들, 보수주의자들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을 이용하여 낙태를 반대하고 있다.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부모의 피임권리가 서로 반대될 경우는 무엇에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경우, 군사독재하에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 하느라, 태아의 생명권이나 낙태와 관련된 여성의 몸 문제를 오랜 동안 사적인 문제로 제껴 두었다.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이러한 최첨단 과학 연구들은 여전히 인종차별주의적이고 성차별적인 신자유주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사회공학 일반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다. 그렇기 때문에, 최첨단 연구들에 대한, 보다 해방적인 개입이 시급한 것이다.

황교수 사건이 보여준 바대로, 전지구적 자본주의 질서와는 언뜻 보아 거리가 먼, 최첨단 과학 연구들의 핵심에는 일차적으로 여성의 몸이, 그라고 우리들의 몸이 있다. 또한, IT강국 어쩌고 하는데서 알 수 있듯, 최첨단 과학들은 신자유주의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또한 그것은 최첨단인 만큼이나, 젠더와 계급, 인종에 따른 위계화가 최첨단으로 개무시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또 여기에, 전지구적 자본주의 질서 하에서 한 분야에서만이라도 강국이 되고자 하는 우리 나라 정부의 지지까지 확실하게 업고 있는 마당이니, 최첨단 생명공학 및 과학 일반의 윤리적 연구 및 민주적이고 윤리적 사용에 대한 이견들의 경합과 사회적 합의점 찾기는 더욱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지만, 최첨단 연구들은 그것이 최첨단인만큼이나 그 연구와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부재한 상황이라, 우리들의 적극적인 개입 (경우에 따라서는 '주도')에 최첨단으루다가 열려 있는 장이다.

성(gender), 계급, 인종에 민감한 대안적인 시각들과 보다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논리, 담론들로 무장하고서, (최첨단 생명) 과학 연구들에 개입하고, 그것의 윤리적 사용을 주도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최첨단 생명) 과학 연구들이 속깊이 남성중심적이라는 점, 그것의 사용은 계급적, 인종적, 젠더권력의 위계화와 함께 간다는 점을 보다 자세하게, 집단적으로 다시 인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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