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차 민주노총의 화두는 '위기'와 '혁신'

[2005참세상이슈](5) - 사회적 교섭 논쟁과 비리 사태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일군 조직 ‘전노협’을 전신으로 1995년 출범해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대표 조직으로 자리잡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10주년을 맞이했다. 출범 10주년인 2005년의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 찬반논쟁, 노조지도부 비리 사건, 이수호 위원장 사퇴 등 그 어느 해보다도 많은 진통을 겪었고 ‘민주노총의 위기’, 나아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거론하는 논쟁의 중심에서 내내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올해 민주노총이 꼽은 ‘10대뉴스’에도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사건 △대의원대회 폭력사태 △기아, 현대자동차 비리사태 등 불명예스러운 사건들이 포함됐다. 갖가지 내홍과 도덕성 훼손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정부, 자본과 보수 세력에 맞선 투쟁도 해야 했고, 연말 비정규직 투쟁까지 쉼없이 달려온, 그야말로 태풍을 헤쳐 온 민주노총의 1년을 되돌아본다. 여기서는 주로 ‘위기’로 표상됐던 사건들에 대해 다룬다.

  2월 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연단에 오른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

‘사회적 교섭’ 논쟁과 3번의 대의원대회 무산

‘사회적 교섭 재개’를 표상하며 당선된 이수호 집행부는 작년 말부터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의 반발에 시달렸다. 민주노총이 1월 20일에 속리산 유스호스텔에서 개최될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사회적 교섭(안)’을 다루기로 결정하자 수십 개 노조와 수백 명의 활동가들이 성명서와 연서명을 발표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정작 33차 대의원대회는 대의원 정족수 미달로 무산됐다. 2월 1일 임시대의원대회(영등포 구민회관)는 조합원들의 항의와 단상 점거로 무산됐고, 세 번째 시도인 3월 15일의 임시대의원대회(잠실 교통회관)도 격렬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했다.

'사회적합의주의-노사정담합 분쇄 전국노동자투쟁위원회'(전노투) 등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안)을 반발하는 세력들은 비정규직 관련법의 개악이나 노사관계 로드맵이라는 의제들을 사회적 교섭에서 다룰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투쟁에 혼선을 주지 않고 자본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강력한 '총파업'을 조직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들은 35차 임시대의원대회를 앞둔 3월 14일에 '전국 현장활동가 결의대회'를 갖는 등 현장 조직에 주력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사회적 교섭을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대신, ‘민주노총은 물리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는 분노에 찬 성명을 발표했다. 3월 15일의 성명과 18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은 “그동안 참고 인내하면서 반대의견들을 설득하고 포용해 왔으나 대의원대회 자체를 무산시키는 상황에 접하며 더 이상 이해만 해줄 순 없다”면서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민주노총의 지도집행력 회복을 위해 강력히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강력한 대응’의 일환이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수호 위원장은 상정하려던 ‘재신임 건’을 자진 철회했고, 세 번째 사회적 교섭(안) 관철 시도가 무산된 3월 15일 저녁에는 강승규 당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등이 사회적 교섭 반대 입장을 보여온 전해투의 사무실에 난입해 전해투 간부들을 폭행하고 집기를 부수기도 했다. 진상을 조사한다며 대의원대회에 참석한 조합원들에게 진술서를 요구하고 징계를 검토하던 민주노총은, 6월에 스스로 동원한 질서유지대의 한 조합원에게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으로 10여 명의 조합원을 ‘폭력’ 혐의로 고소해 또 한번 물의를 빚었다.

  2월 1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이수호 위원장이 사회적 교섭안 표결을 강행하려 하자 조성웅 현중사내하청노조 위원장이 항의하고 있다.

  '질서유지대'에 의해 끌려나가는 조합원

이후 민주노총은 3월 24일 3차 중앙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교섭 추진과 관련, 노사정대표자회의를 개최하여 ‘비정규 입법’을 최우선 과제로 논의토록 추진하고 적절한 시점에 대의원대회를 소집, 승인여부를 결정한다”고 정했다. “위원장 책임 하에 추진하겠다”던 노사정대표자회의에서는 별 소득을 얻지 못했고, 한국노총 김태환 열사의 죽음, 정부의 비정규법안 개악안 강행 기도 등으로 ‘대화’ 흐름은 곧 경색됐다.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비리 사건과 이수호 위원장의 사퇴

지난해 말부터 터져나온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입사비리 사건으로 기아자동차노조 집행부가 1월 20일 총사퇴했고 급기야 민주노총도 ‘대국민사과’를 발표하게 됐다. 민주노총은 논평과 성명서를 통해 ‘유감’을 표시했지만 “노조에 대한 공격의 호재로 삼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충고하며 “진상을 명명백백히 수사”할 것을 검찰에 촉구하는 한편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투명성과 도덕성이 높아지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 천명했다.

5월에는 현대자동차노조에서도 전현직 간부 3명이 취업비리 혐의로 긴급 체포돼 우려를 더했고, 한국노총 권오만 사무총장의 리베이트 혐의가 드러나며 택시 업계의 비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는가 싶더니 10월엔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긴급체포’라는 ‘폭탄’이 터졌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10월 11일 기자회견을 열어 △비리혐의에 모든 책임을 지고 단호히 대처할 것 △위원장으로서의 도의적 책임과 대중적 책임을 분명히 질 것이라고 밝혔지만 그 ‘책임’이란 ‘조기 임원선거’와 ‘차기 선거 불출마’였다.

  10월 13일 민주노총 지도부 총사퇴를 요구하는 사무총국 간부 15명의 집단사직 기자회견

곧이어 민주노조의 도덕성 훼손과 혁신 미흡의 책임을 묻는 ‘지도부 총사퇴’ 주장이 들끓었다. 산하 노조에서도 총사퇴를 주장하는 성명서와 간부직 사직이 줄을 이었고 10월 13일에는 사무총국 간부 15명이 집단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자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10여 년의 역사에서 조직의 위기를 부르는 심각한 오류를 범했을 경우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전통을 지켜왔는데 이번 사태는 하물며 지도력의 근간이 되는 도덕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땅바닥에 떨어진 조직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며 이것이 전제돼야 하반기투쟁도 새로운 지도력 구축도 제대로 이뤄질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노조비리 근절을 위한 종합대책’(10월 18일)을 발표하고 ‘규율위원회 설치’를 검토하는 등 자구책 마련에 나섰지만 조합원들의 거센 요구로 결국 10월 20일 전 임원이 사퇴했고, 당면 과제인 비정규직 법안 관련 투쟁은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10월 21일)되며 비대위의 몫으로 넘어갔다.

기아자동차노조 취업비리 사건 이후 민주노총 내 구성된 '조직혁신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고 있었던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으로 큰 충격에 휩싸였던 노동계는 이를 계기로 반성과 성찰, 내부 혁신의 목소리를 높이게 됐다. 11월 11일 열린 민주노총 10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이상학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장은 현재 민주노총이 '출범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10월 20일, 사퇴를 선언하고 민주노총 건물을 나서는 이수호 전 위원장

사회적 교섭 대신 현장 조직과 강력한 총파업을 주장했고,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의 비리 사건과 관련해 민주노총 집행부가 총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온 조합원들은 사직한 사무총국 간부들, 현장활동가들, 노동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주축이 된 '비정규직 철폐 현장투쟁단'을 구성해 비정규법안 개악 저지를 위한 활동을 펼쳤다. 이경수 현장투쟁단 공동대표는 "투쟁이 아닌 협상에 매달리거나, 실리주의에 만연했거나, 담합과 비리에 물들어 있다거나 한 것들을 깨 나가는 것도 혁신이지만, 당면한 과제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도 혁신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1년 동안 보수 언론에게 뭇매를 맞은 것도 모자라, 민주노총은 최근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선정한 '한국사회 10대 위기주범'에 '재벌 대기업 노조운동 진영'이라는 항목으로 지목되기까지 했다. 연말 비정규직 투쟁으로 다소 주춤하긴 했지만 민주노총과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논쟁은 거의 일 년 내내 계속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민주노총의 책임있는 자세와 자기 비판으로 내부 혁신을 해야 한다는 주장과, '실천'과 '투쟁'을 통한 신뢰 회복, 산별노조 완성이나 사회적 책임론까지 해법은 다양하지만 민주노총의 위기가 곧 자본의 호기로 작용할 것이란 인식엔 대체로 공감한 2005년이었다.

비정규직 투쟁과 노사관계 로드맵 분쇄 투쟁 등 새해 벽두를 또다시 투쟁으로 열어젖혀야 하는 민주노총에게, 2006년 투쟁과 혁신을 어떻게 이뤄나갈지의 몫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할 것이다.

관련 사건 일지

1월 20일 기아자동차노조 집행부 총사퇴
1월 20일 33차 민주노총 정기대의원대회에 ‘사회적 교섭(안)’ 상정, 정족수 미달로 무산
1월 26일 기아차 입사비리 관련 민주노총 기자회견
2월 1일 34차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사회적 교섭 반대세력 단상점거로 무산
3월 15일 35차 민주노총 임시대의원대회, 사회적 교섭 반대세력 회의장 점거로 무산
3월 15일 민주노총 성명 “민주노총은 물리력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3월 15일 강승규 수석부위원장, 이석행 사무총장 등 전해투 사무실 난입, 폭행 사건
3월 24일 민주노총 3차 중앙위원회 “사회적 교섭 관련 노사정대표자회의 추진” 결정
5월 10일 현대차노조 전현직 간부 3명 취업비리 관련 긴급체포
6월 8일 민주노총 중집회의에서 ‘3월 15일 부상자 치료비 지급과 재판결과에 따라 회수’ 결정
10월 7일 강승규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금품수수 혐의 긴급체포
10월 10일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업무정지 선언
10월 11일 민주노총 기자회견 “위원장 사퇴 철회, 조기선거 실시”
10월 13일 민주노총 사무총국 간부 15명 집단 사직 기자회견
10월 15일 ‘민주노총 현 사태에 대한 비상시국토론회’
10월 18일 민주노총 ‘비리근절 종합대책’ 발표
10월 20일 이수호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임원진 총사퇴
10월 21일 전재환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회(위원 9명)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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