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보작전…파업출정식의 재구성

공동투쟁본부가 벌이는 까르푸 중계점 상황중계

아침 바람이 다르다. 9월 5일 이랜드노동조합이 파업 출정식을 하는 날이다. 이랜드 신촌 본사에서 열릴 파업 출정식에 가려고 카메라와 취재수첩을 챙기는데 전화가 왔다.

  파업, 파업이다

  김경욱 까르푸노조 위원장(왼쪽)과 홍윤경 이랜드노조 위원장. 출정식의 웃음이 일괄타결의 웃음으로 이어지는 날까지

햇살이 다르다. 따갑지만 한여름의 햇살은 아니다. 까르푸 중계점에 도착하니 벌써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오후 1시에 파업출정식이 예정된 신촌 본사에 있어야할 조합원들이 노원구 중계동에 와 있다. 이랜드 그룹사인 까르푸 중계점 옆의 ‘2001 아울렛’에서 매장 선전전을 마치고 나온다.

“첩보 작전과 같았어요.” 매장 선전작업을 마치고 나온 노동자의 말이다. ‘2001 아울렛’ 중계점에서 선전전을 하리라고 회사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매장에 피켓과 유인물이 춤을 춰도 어쩌지 못한 것이다.

허를 찌르다

이랜드의 파업 출정식은 회사의 허를 찌르며 시작되었다. 이랜드 신촌 본사는 까르푸와 뉴코아 노동자까지 몰려올 것이라고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는데, 본사 직원 및 용역경비업체를 민망하게 됐다.

빨간 조끼의 까르푸 노동자와 푸른 조끼의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이 까르푸 중계점 현관 앞에 모여든다. 오늘 이동작전(?)이 탄로날까봐 노조 조끼를 입고오지 않은 조합원도 있었다.

“니 옷 자랑 할끼라고 그런 기지?”하며 무안을 주자, “아녀, 조끼 입지 말고 움직이라고 해서 그런 거여.”라며 얼굴이 빨개진다. 부산을 비롯하여 지방의 노동자들도 삼삼오오 파업출정식을 참여하려고 올라왔다. 말투는 달라도 웃으며 같은 노동자임을 확인한다.

갑자기 고개가 건물 위를 올려다본다.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6층 주차장에서 조합원이 대기하고 있다가 집회가 시작되면 현수막을 내릴 예정이었는데, 용역경비에게 발각되어 현수막을 빼긴 거다. 현수막을 되찾기 위한 실랑이가 조합원과 용역경비 사이에서 일어났다. 사복형사의 중재로 현수막을 건물에서 내리지 않는 조건으로 조합원이 되찾아서 내려온다.

고조되는 긴장

다시 현관 앞. 건물에서 현수막을 내리지 못하자 조합원들은 다시 건물 입구에 현수막을 걸려고 준비를 한다. 까르푸 안전팀장이 무전기를 들고 몇 마디하자 양복바지에 흰 와이셔츠의 건장한 어깨를 지닌 사람들이 우악스럽게 달려들어 현수막을 빼앗는다.

  현수막을 걸려고 하면 어김없이 달려드는 흰 와이셔츠

  까르푸에 가면 색다른 안내원이 고객을 맞이한다

다시 밀고 당기는 공방. 험한 욕설도 오간다. 건물 대신 가로수에 현수막을 거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이것을 본 까르푸 중계점 소속 노동자는 울분을 참지 못한다. “우리 사업장에 조합에서 현수막을 거는 게 뭐 잘못이냐. 니네 까르푸 직원 맞아.” 와이셔츠의 건장한 어깨들에게는 목에 신분증이 매달려 있지 않다.

오후 3시, 신촌 본사가 아닌 까르푸 중계점에서 까르푸, 뉴코아, 이랜드노조 공동투쟁본부 주체로 3사 노동자가 참여한 가운데 파업출정식이 시작되었다.

웃음이 넘치는 출정식

최근에 마주한 집회 중에 가장 많이 웃고, 활기가 넘쳐 보이는 집회다. 자신의 사업장을 넘어 공동투쟁으로 파업을 여는 집회라서 그럴까? 그보다는 ‘단결투쟁가’를 부르더라도 종이를 꺼내 가사를 보며 팔뚝짓을 하는 집회라서 그런 것 같다. 처음 노동가요를 부르는 기쁨. 노동자로 태어나는 것이다.

맨 앞자리에 앉은 김경욱 까르푸노조 위원장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풍문이 있다. 사실 확인은 굳이 중요하지 않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노래에 맞춰 박수를 치는 모습이 군인의 박수 치는 모습을 닮았다.

까르푸노조는 한 때 십여 명의 소수 노조로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400여 명을 포함한 1,000명의 조합원을 지닌 노조로 다시 태어났다. 웃음을 잃지 않는 김경욱 위원장의 낙천성과 절도가 밴 박수치는 모습이 일군 것 같다.

유상헌 이랜드노조 조직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집회는 홍윤경 위원장과 김경욱 위원장이 함께 나와 결의를 밝히는 인사로 시작되었다. 둘은 공동투쟁본부 공동본부장이다. 함께 앞으로 나오자 조합원들이 “닮았다” “남매 같다”고 한다. 홍윤경 위원장이 “제가 영광이죠”라며 말을 받는다. 지난 3개월 동안 공동투쟁을 해오며, 뜻을 모으다보니 얼굴마저 닮아갔다 보다.

얼굴이 닮았다

집회를 마치자 김경욱 위원장이 건물 앞으로 조합원을 집결시킨다. 순간 까르푸 건물 앞에 천막이 등장한다. 다시 건장한 어깨들이 천막을 향해 몸을 던진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고, 달려드는 어깨들의 바지춤을 움켜잡고 천막을 칠 때까지 몸으로 어깨들을 막아선다.

  까르푸 중계점 앞에 한이 서린 천막이 섰다. 공동투쟁본부 사무실이자 파업투쟁본부가 된다.

천막이 까르푸 중계점 앞에 세워졌다. 조합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파업투쟁의 본부가 될 천막이며, 공동투쟁본부의 사무실이 될 천막이다.

화섬연맹 우진지회 노동자들은 부러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강남 아셈타워 앞에서 농성 중인 우진지회는 천막을 치려다가 구청 철거반원에 막혀 아직 노숙 신세다. “그래도 한 시간은 천막치고 버텼다.” 위안을 하며 한마디 던진다.

이랜드 조합원들에게는 한 맺힌 천막이다. 지난 8월 신촌 본사 농성을 들어가며 천막을 치려다가 용역경비에게 막혀 노숙을 하며 농성을 하였다. 그 한을 이곳 중계동으로 옮겨와 푼 것이다.

“천막을 치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누군가 이야기를 한다. 오늘 저녁 용역 경비에 철거당할지도 모를 일이다.

천막의 운명

하지만 저 천막이 오래 이곳에 버티기를 바라지 않는다. 하루빨리 저 천막을 조합원의 손으로 걷어내고, 일터에서 일을 했으면 좋겠다. 고용불안이 없는 일터에서 오늘 집회에서처럼 웃으며 일을 했으면 좋겠다.

  가사를 보며 노동가요를 부르는 조합원

노동가요를 이 파업이 끝날 때에도 종이를 펴고 가사를 보며 불렀으면 좋겠다. 노동가요를 외우기 전에 파업이 승리하고, 공동투쟁의 성과를 보듬고 매장에서 손님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아침 바람이 다르다. 따갑지만 가을 햇살이다. 겨레의 명절 한가위가 멀지 않았다. 3사 공동투쟁도, 포항건설노동자의 투쟁도, 코오롱, 기륭전자를 비롯한 장기투쟁사업장들의 노숙도 한가위가 오기 전에 끝이 났으면 좋겠다.

파업출정식에서 파업 없는 한가위를 생각했다.

공동투쟁의 새로운 신화를 여는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