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지키는 경찰… 노동자 갈 곳 없다

[기자의 눈] 단식 14일 기륭전자 닫힌 공장 문 앞에서

구로동맹파업으로 노동운동역사의 한 쪽을 장식하였던 구로공단에서 9월 6일 또 한 구절의 역사를 아로새겼다. 해를 넘긴 싸움이라 이제 며칠 째인지 헤아리기보다는 그냥 장기투쟁사업장이라 부르면 그만일 기륭전자 앞에서 노동자들은 공장과 업종, 지역을 뛰어넘어 단결된 힘을 보여주었다.

  동료를 굶겨 죽일 수 없다고 지역 업종을 뛰어넘어 달려온 노동자들. 기륭전자 앞을 가득 메웠다.

  철조망, 꽉 막힌 철문도 부족하여 공장 안에는 바리케이트와 철조망으로 이중의 방어막을 쳤다.

  한 포항건설노동자가 높은 정문 위로 올라서자 다급해진 용역경비들이 달려온다.

단식 14일째, 일주일 전만 해도 버틸 만 하다고 여유 있게 웃던 김소연 분회장의 얼굴은 핼슥하고, 쩌렁쩌렁하던 목소리는 오간데 없다. 강화숙 부분회장은 발을 한걸음 내딛는 것도 힘겨워 보인다.

굶는 것은 노동자

굶는 것은 노동자다. 날마다 출퇴근을 하며 단식자의 얼굴을 보지만, 아직 법에도 명시된 교섭 자리마저 갖으려고 회사는 나서지 않는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요구를 들어주느니 불우이웃돕기를 하겠다고 회사는 공공연히 말을 한다고 한다.

김소연 분회장은 말한다. “구걸하지는 않겠다.” 단식을 하는 이유도 교섭을 하자고, 정규직을 시켜달라고 구걸하는 게 아니다. 당당하게 말을 하는 것이다. 목숨을 걸고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기륭전자 노동자는 무엇을 잘못했는가? 그들이 해를 넘기며 한 일을 살펴보자. 법에서 보장된 노동조합을 만들고 교섭을 하자고 했다. 하지만 회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자신이 일하는 공장에서 농성을 했고, 회사는 공권력을 동원하여 공장 밖으로 쫓아내고 감옥으로 보냈다.

법도 비정규직 노동자가 잘못이 아니라 회사가 불법파견을 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회사의 불법에 이제는 법에 맞게 정규직으로 일을 하게 해달라고 했다. 법을 어긴 사람은 회사 안에 있고, 법에 맞게 일하고 싶은 노동자는 공장 밖에서 굶고, 노숙을 하고 있다.

불법 사수 경찰

9월 6일 ‘기륭전자 승리 결의대회’가 있는 날이다. 경찰은 법을 어기고 공장 안에 있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집회 시작 전에 공장 안에 들어갔다. 집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터로 들어가려고 하자 검은 옷의 용역경비들이 노동자를 향하여 불을 끌 때 사용해야 할 소방수를 쏘아 된다. 물만이 아니라 소화분말가루를 사람의 얼굴에 뿜어 된다.

경찰은 지켜본다. 소방수를 불이 아닌 사람에게 쏘는 것은 분명 불법인데, 불법을 뒤에서 지켜주고 있다. 소화분말가루를 사람에게 쏘는 행위를 바라보고 있다.

  삼팔선은 삼팔선은 ... 기륭전자 담에도 철조망은 있다. 철조망을 걷어내는 노동자들.

  철저한 방어, 이번에는 철저한 공격. 물대포에 소화분말가루에. 전쟁이다.

  물대포를 맞으며, 온 몸은 흠뻑 젖어도, 열리라 기필코 열리라.

물을 흠뻑 뒤집어쓰고, 소화분말에 기침을 하고 숨을 쉴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공장 문을 열었다. 이제껏 공장 안에서 불법을 지켜보던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노동자를 가로막는다.

집회 참석자들은 경고를 한다. “너희가 문을 열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지역 업종을 뛰어넘은 단결된 힘으로 문을 언제든지 열 수 있다. 하지만 스스로 문을 열 기회를 주겠다”며 집회를 마무리 했다.

초조한 것은 사용자

초조한 것은 14일 단식을 한 노동자가 아니다. 회사가 성실히 교섭에 나올 것을 경고하고 여유 있게 기회를 준 노동자는 자신감에 넘쳐있다. 경찰까지 공장 안으로 모셔(?)놓고 벌벌 떠는 회사 측이 더욱 초조한 것이다.

20년 전 구로동맹파업의 지역답게 오늘 집회에는 금속노조 남부지역 노동자들과 화섬연맹, 포항건설노동자 등 300여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달려왔다. 정문을 열 때는 내 일처럼 몸을 사리지 않고 나서는 모습에 눈물겨웠다.

특히 동료의 장례를 치르고, 대학로에서 청와대까지 십보일배를 하며 눈물을 쏟고 달려온 포항지역 건설노동자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싸웠다. 더욱 높아진 철문, 틈새 없이 용접된 정문, 더욱 무섭게 둘러쳐진 철조망, 쇠침이 박힌 담이 노동자의 연대의 힘에 쉽게 무너진 것이다. 오랜만에 구로답게 연대의 힘을 보여 준 집회였다.

  대답없는 기륭전자...하얀 희망의 글귀가 처량하다.

  못 가. 한 조합원이 공장을 지키다 집회가 끝나자 공장을 나가는 경찰차를 가로막자 차를 조합원 몸을 향해 운전을 한다. 그래 노동자는 비정규노동자는 경찰의 보호 받을 자격도 없는 존재다. 밀어라 깔아라.

착잡한 취재

하지만 신이 나지 않는다. 왜 정당한 목소리를 내며 곡기를 끊는 아픔을 감수해야 하는가. 순천 구미 청주를 비롯하여 전국에서 한달음으로 달려온 노동자들은 닫힌 정문을 열었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은 무겁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언제 일하던 라인 앞에 서게 될지, 저 목숨을 건 단식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기 때문이다.

취재하는 마음이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