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노동사회단체 2000여 명이 공무원노조의 6월 투쟁을 지지한다는 선언을 하던 기자회견. 오도엽 시인은 직접 쓴 시를 낭송한 바 있다. 그 시를 듣고 권승복 위원장은 오도엽 시인의 시 구절 중 "중요한 것은 법내냐 법외냐가 아니라 우리의 속내였다"라는 말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고 말했다.
23일, 공무원노조가 두 개로 갈리던 날. 오도엽 시인은 다시 서울역 광장에 서서 투쟁사를 했다. 투쟁사는 또 다시 그 자리에 모인 조합원들을 울리고 말았다. 오도엽 시인은 "역사에 어떻게 쓰여 지려고 하는가"라며 공무원노조의 더 큰 단결을 호소했다. 투쟁사 전문을 옮긴다.
왜 이런 날 시를 읽어야 합니까
왜 이따위 시를 써야 한단 말입니까
이 자리가 이천이년 삼월 이십삼일 공무원노조 출범날이라면
오늘이 괴나리봇짐을 지고 서울 시내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던
이천사년 십일월이라면
아니 우리의 심장에 못이 탕탕 박히고
사지 질질 끌려 거리로 쫓겨났던 이천육년이라 할지라도
슬프지 않았을 텐데
왜 이 자리에서 시를 읽어야 한단 말입니까
노동조합의 얼굴인 위원장은
스무날이 넘게 배를 쫄쫄 굶어야 하는 오늘
누구는 올림픽 경기 날도 아닌데
역기를 들어 올리려는지
체육관에 모여 있고
여기 당신네는 서울역 시멘트 바닥에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인가요
나를 공장으로 노동자로 이끈
함께 감방에서 칼을 갈았던 선배는
당신네와 같은 조합원인데
저 먼 부산에서 서울 올라온다 해서
반갑다 못해 징하게 술 한 잔 나누려고 했는데
왜 내가 서 있는 서울역에
그 조합원은
그 선배는 없단 말인가요
공무원노조 왜 만들어졌나요
이제 먹고 살만 합니까
이제 뭔 꼬라지입니까
당신네 출범선언문
당신네 규약과 강령
십 년도 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겁니까
저 모가지 잘린 해고자 동료는
당신네 철밥통의 밑거름인데
이제 피하고 싶은 똥으로 취급할라 하십니까
역사에 어떻게 쓰여 지려고 합니까
치욕스럽게 공무원노조의 이름을 지켰다고 남고 싶습니까
아니면 지더라도 아름답게 싸웠다고 남고 싶습니까
이 아버지는
이 어머니는
옹졸하고 쪼잔하게 살았지만
철밥통 조직을 살렸다고 그래서 니네들 이만큼 키웠다고 들려주고 싶습니까
아니면
이 시대의 양심의 목소리를 내는 공무원이었다고
그래서 철밥통 부수고
오늘 서울역에 나왔노라고
역사는 치욕의 승리보다는
아름다운 패배를
비열한 전진보다는
떳떳한 후퇴를 기억한다고
그래서 이 아빠는 이 엄마는 행복하다고
우리의 자식에게 우리의 미래에게 들려주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서울역이냐 체육관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네 노동을 느끼는 국민들은
둘 다 똑같고
둘 다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손가락질 한다는 겁니다
지금 체육관에 있든
지금 서울역에 있든
정직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국민과 역사는 손을 들어줄 겁니다
스스로의 속내
속마음을 깨끗이 하지 않은 이들이여
어서
돌아가십시오
이 자리에서 떠나십시오
이 자리 떠나 권력의 똘마니로
소시민의 안락과 부를 누리십시오
속내를 열어두면
서울역이면 어떻고
체육관이면 어떻습니까
민중의 곁으로 달려갈 수만 있다면
믿습니다
정말 바랍니다
이제 더 큰 하나의 조직이 되어 만나리라
한치의 의심도 없기에
오늘의 아픔
쪽 팔리는 슬픔
말할 수 없는 부끄럼
감내하고
감내하고
뻔뻔스레
이 자리에 속내를 밝히며
읽지 말아야 할 시를
쓰지 말아야 할 시를
정말 열 받는 시를
사랑으로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