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금융센터의 잠못드는 밤

[이랜드 홍콩통신](10) 원정투쟁단 마지막 날 이야기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증권거래소 앞에 피어났던 촛불도 꺼졌다. 침낭 속에 몸을 묻었지만 춥다. 바닥에선 찬 기운이 올라온다.

누가 이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이들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가. 홍콩의 길바닥, 텅 비어 허기진 창자, 가물거리는 정신, 불어 튼 발바닥, 요란스런 차 소리. 아니다.

배가 고프다. 70년 전태일도 그랬다.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어머니 이소선에게 배가 고프다고 했다. 목에서 피가 넘치며 “내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배고프다는 말을 하며 숨을 거뒀다.

전태일의 배고픔은 근로기준법을 화형시키고 자신의 몸에 불을 질러야 했던 최소한의 권리마저 무시되었던 사회에 대한 배고픔이다. 뉴코아 이랜드 노동자의 배고픔은 비정규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길바닥으로 내몬 비정규직법이 강요한 배고픔이다.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이다. 증권거래소 앞에 피어났던 촛불도 꺼졌다. 침낭 속에 몸을 묻었지만 춥다.

김애수 조합원은 자정이 넘었지만 국제금융센터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다. 물끄러미 찻길을 내려다보고 불 꺼진 빌딩을 바라본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맥도날드를 바라보기도 한다. 그리고 잠든 동료의 얼굴을 안쓰러운 얼굴로 내려다본다. 잠을 자는 경기본부 권미정 씨의 흐트러진 담요를 여며준다.

이선아 민주노동당 당원은 몸살기운이 있다며 온몸을 담요로 칭칭 감고 드러누웠다. 물론 잠들지 못했다. 누런 불빛 아래에서 책을 읽고 있다.

한영희 조합원도 잠들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왜 자지 못하냐고 묻자, 내가 잠자는 모습을 찍을까 무서워 그런다고 웃는다. 지하철에서 조각잠 자는 모습을 찍어 기사로 올린 것을 보았나 보다. 얄밉다며 카메라만 들이 되면 손사래를 친다. 새벽 2시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얼굴을 가리고 누웠다. 물론 잠든 모습을 찍었다. 가린 천 사이로 드러난 얼굴을 찍었다.

일찍 잠이 들었던 서강본 부본부장은 새벽 1시께 눈을 떴다. 배가 고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숙소에 있는 컵라면이 떠오르고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끓인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어 잠을 잘 수 없다고 한다.

서비스연맹 박동식 국장은 “다 들 잠들면 몰래 편의점에 가서 뭘 좀 먹을까 했는데, 잠들지 않는 카메라가 무서워 가지 못한다”고 너스레를 떤다. 원정투쟁단의 살림을 맡은 터라 혹 아픈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노심초사다.

김석원 조합원은 홍콩노총 활동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다. 단식을 해도 에너지가 넘쳐난다. 물론 침낭에 몸을 숨기자마자 그는 요란한 오케스트라를 연주했다. 열정은 잠이 들어도 코골이로 이어진다.

교민인 장대업 씨는 한숨도 자지 않고 꼬박 밤을 새운다. 혹시 잠자는 동안 원정투쟁단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싶어 지키고 있다고 한다. 공책을 꺼내 무언가를 계속 적는다. 일기를 쓰는 걸까 분노를 쓰는 걸까.

다이아나를 비롯한 홍콩 활동가들도 잠들지 못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제는 연대를 넘어 원정투쟁단과 오랜 벗처럼 가까워졌다. 홍콩 활동가와 나눈 연대의 정은 따로 꼭지를 만들어 기사를 쓸 예정이다.

7일 새벽 4시 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를 나누어 세수를 하고, 농성장에 깔린 잠자리를 정리했다. 출근 시간. 손에는 유인물을 들고 국제금융센터를 누빈다. 홍콩시민들에게 한 장이라도 더 건네고 싶어 안달하는 이남신 수석부위원장의 모습이 눈에 읽힌다.

홍콩시민들에게 원정투쟁단의 노숙단식은 방송과 신문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원정투쟁단의 성과는 이미 반은 이루어졌다. 냉담하던 금융가의 사람들도 또 다른 눈길로 원정투쟁단에게 말을 건다.

박동식 국장은 “무얼 얻어 갈 수 있을까 두려워했는데, 홍콩에 도착한 순간 달라졌다. 상장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려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원정투쟁단의 활동은 최소한 이상의 성과를 올린 거 아니냐”며 평가를 한다.

한영희 조합원은 “국내에서 보지 못한 언론의 뜨거운 관심에 놀랐다. 더 많은 조합원이 와서 함께 했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한다.

  출국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7일, 이랜드차이나의 일반 공모 마지막 날이다. 16일이 상장이지만 오늘까지 공모 결과가 중요하다. 열 명의 원정투쟁단은 상장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이랜드의 부도덕성을 알려 선량한 투자자의 피해를 막는 것이 큰 목적이다. 노동자를 탄압하는 기업은 어느 나라에서도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는 게 목적이다.

출국을 한다는 소식을 들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홍콩 활동가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았다. 다시 한 번 홍콩에 원정투쟁단이 온 이유와 그간의 활동, 그리고 성과에 대해 설명을 했다. 언론에서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의 목소리를 중요하게 다뤄 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함께 한 홍콩 활동가와의 이별 장면은 도저히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노동자는 하나다. 이 말로도 부족하다. 함께 불렀던 ‘님을 위한 행진곡’은 비행기에 오르고 홍콩 땅을 날아 오른 뒤에도 귀에 맴돈다.

  마지막까지 함께 한 홍콩 활동가와의 이별 장면은 도저히 글로 표현하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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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 비행기 , 이랜드 , 노숙 , 증권거래소 , 뉴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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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쯧쯧쯧

    너무 기가 막혀 말도 안나옵니다. 해외에 나가서 국내기업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것이 이렇게 감동적인 것인건인지... 이랜드그룹이 만에하나 부도나서 더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길바닥으로 내모는 것이 노동조합 아니 그위를 지배하는 노총들의 목표인가요? 기업의 상장은 물리적으로 저지할 수 있는것도 아니지만 결국 무산이 되었으니 너무 뿌듯하겠네요 근데 그래서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되나요? 우리보다 훨씬 열악한 근무환경과 조건속에서 일하면서도 이런 멋진 노동조합 및 노총이 없는 중국과 홍콩에 가신김에 한국노조산업을 수출하는 것은 어떠신지...

  • 이랜드노조에 연대하는 학생

    이랜드 부도 나더라도 노동자는 해고되지 않습니다. 다른 자본가를 만나게 되겠지요. 이랜드 홍콩 원정시위를 좋은 의미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지만(글쓴 분과 다른 이유로), 이런 투쟁이 정규직 노동자를 길바닥으로 내모는 행위는 절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쯧쯧쯧

    학생이라서 부도의 의미를 잘 모르시는가 보군요 만약 이랜드가 부도가 나면 결국 자본가가 아닌 채권단에의해서 자산이 매각되고 결국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해당 노동자들(경영자포함)은 직장폐쇄가 됩니다. 매각되는 자산을 인수하는 다른 유통업체가 과연 회사를 부도에 내몬 노조 및 기존 노동자들을 그대로 모두 받아드릴까요? 다른 "자본가" 누가 그럴 수 있을 까요? 소수의 소외받은 희생자(?)들을 이용한 노조 정치세력이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지내요... 그냥 그분들 재취업을 주선하는 일을 하는것이 더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재시하는 것이 아닐지...

  • 정규직노동자

    '쯧쯧쯧'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뭔가요? 이랜드
    투쟁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떠나서 이랜드 박성수회장과 경영진의 욕심과 무책임으로 인하여 발생된 것 입니다.
    지금 현재 남아서 투쟁하고 있는 조합원들중에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라는 요구 조건이 있지만 과연 전원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이랜드 투쟁에 대해 단편적인 면을 다인것처럼 비하하는 행동은 정말 힘들게 투쟁하고있는 조합원들에게는 큰 상처를 줍니다. 전 정규직 조합원 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비정규직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아직까지 투쟁하고 있습니다. 이번 투쟁이 아니었어도 이랜드 경영진(박성수회장)의 무리한 투자와 경영 실책으로 기업의 영업실적 부진과 그에 따른 재무적 부담 증가는 이미 예상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를 노사문제의 여파로 포장하려는 회사가 잘못된 것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회사의 한 구성원으로서 회사(박성수회장)의 독선적이고 비윤리적인 경영방침에 대해 항의 하는 이유중에 하나 입니다. 과연 노동조합이 이 투쟁을 마무리하고 아니 이 투쟁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회사의 실적 부진이나 재무부담이 증가하지 않았을까요? 회사는 자신의 실책을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힘없는 노동자에게 전가하려다 생각지도 못한 큰 저항을 받은 것 입니다. 노동자가 너무한게 아니라 노동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힘든 생존권 투쟁을 하게 만든 회사를 비판 하심이 옳다고 봅니다. 국내기업의 이미지 실추는 노동자가 한게 아니라 기업 스스로 한것임을 알기 바랍니다. 요즘 말도 안되는 색깔론을 들며 노동자들을 매도하는 성향이 있는데 요즘 바보도 아니고 자기 생존권을 걸고 이용당하는 바보들이 어디 있습니까? 정규직이나 비정규직이나 다같은 월급쟁이 입니다. 그런데 그 회사가 당신의 목을 조여 온다면 방관만 하시겠습니까? 조용히 다니다가 부도 나기전에 다른 회사로 옮기는게 현명 할지도 모르지만 조금이나마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경영진의 잘못된 부분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 가는게 옳다고 생각 합니다. 그 대화와 타협의 결과는 회사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임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보수언론이나 지도층에서 본질을 흐려버린 이랜드 비정규직 투쟁에 대해 자세히 아시고 댓글을 달아 주시기를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