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 대공황이후 최악의 위기를 겪고 있는 미국 경제.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232년 역사상 최초의 흑인 미 대통령에 당선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경제위기는, 역으로 버락 오바마 당선자를 가혹한 시험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를 두고 <알 자지라>는 "새로운 젊은 대통령이 맞이해야 할 대통령직은 그 어느 때보다도 끔찍하고 압력이 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버락 오바마 당선자는 유세에서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유세 당시의 슬로건을 전면에 내걸면서 경제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는 점을 여러차례 강조해왔다.
"그 어느때보다도 끔찍한" 경제위기
그러나 미국인들이 '변화'를 위해 투표장으로 향했던 4일에도 미국 경제는 여전히 암울했다.
미 상무부는 9월 공장주문이 한 달 전에 비해 2.5% 하락했으며, 자동차와 항공기 부문을 제외하면 하락률은 3.7%로 1992년 이후 가장 높았다고 발표했다. 특히 비내구성 소비재 주문은 전월 대비 5.5% 하락 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발표된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10월 제조업지수는 38.9에 머물러 최근 26년간 최저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업률도 지난 9월 6.1%로 상승해 2003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 대선을 앞둔 2일 <블룸버그>는 10월 신규실업자수 예측조사 결과 20만명이 실직할 것으로 전망했으며, 이는 지난 9월 15만 9천명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실업률이 6.1%에서 6.3%로 증가할 것임을 예고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소재 H&R 블록 파이낸셜 어드바이저사의 러셀 프라이스는 "신용위기가 경제전반에 파급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수개월에 걸쳐 실업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위기는 멈출줄 모르고 확산되는 양상이다.
앞으로의 전망은 더욱 어둡다. 재무부는 금융업계의 전망을 종합해 2009회계년도 전체 재정적자가 1조 4천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집계했으며, 한 비정부기구는 같은 기간 재정적자가 무려 2조 6천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을 넘을 수 있나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가 승리할 수 있는 최대 요인으로 꼽혔던 경제위기는 역으로 부시행정부의 경제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로 오바마 당선자가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오바마 당선자의 승리를 확정짓는데 경제위기가 크게 작용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 확산되고 있는 금융위기가 부시정권 실정의 문제로만 소급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민주당 출신의 클린턴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부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비롯한 자유무역이 확산되었고, 글라스 스티걸법 폐지로 상업은행이 투자은행 업무도 병행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금융시장을 자율화하는 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미 대선에 앞서 오바마 민주당 후보의 당선시에 기용될 재무장관의 명단에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금융시장 규제를 완화했던 인물들이 거론되었다는 점은 과연 오바마 당선자가 민주당의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과 결별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 후보의 내각 예상 명단에 거론되었던 사람들은 티모시 게이너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폴 볼커 전 연방준비은행 총재, 로버트 루빈과 로렌스 서머스 전 재무장관이었다. 오바마 선거운동에서 경제자문역을 맡았던 제이슨 퍼먼도 경제관련 부처 및 각료로 중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졌다.
특히 선거운동 과정에서 경제자문에 결정적 역할을 한 제임스 퍼먼의 경우 월 스트리트의 자금으로 만들어진 해밀턴 프로젝트 소장을 맡고 있었던 인물이며, 해밀턴 프로젝트를 주도한 인물이 바로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로버트 루빈 장관이라는 점은 오바마 당선인이 클린턴 행정부의 유산과 단절이 쉽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국의 진보적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리지웨이는 <카운터 펀치>에 기고한 글에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글래스 스티걸법안 수준의 새로운 법안이 도입되고 투자은행을 은행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정도의 개혁은 필수조건이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개혁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과연 오바마 정부가 이런 은행자본에 대한 통제가 가능하겠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오바마가 개혁에 나선다 하더라도 월 스트리트에서 쉽게 동의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개미군단의 소액모금으로 선거운동이 가능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이야기지만, 오바마의 선거자금의 많은 부분은 월 스트리트 자금이라는 점도 꾸준히 지적되어 왔다.
커져가는 재정적자, "중산층"을 위한 대책은
오바마 대통령은 유세당시 "중산층"을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자는 지난 2월 미 의회가 통과시킨 1천68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법안과 세금환급 등을 골자로 하는 경기부양책을 내놓을 계획이라고 밝혀왔다. 연소득 25만 달러 이하 가구에 대한 세금감면 정책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을 위한 추가 세제상 특전도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아울러, 오바마 당선자는 고유가로 뜻밖의 소득을 올린 거대 석유기업에 초과이득세를 부과해 국민들에게 1천 달러의 세금을 환급하는 한편 향후 10년 동안 연간 150억 달러를 재생에너지 생산 등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해외로 외주를 주는 다국적 기업을 규제하는 한편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은 인상한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오바마 당선자의 공약은 실현되기 전에 저항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미 재정적자가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세금정책센터(TPC)는 오바마의 세금정책이 시행되면 현행 세금정책을 2010년까지 유지하는 것에 비해 향후 10년간 세수입이 2조 9천 500억 달러 가량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석유기업초과이득세법도 법안 수립뿐만 아니라 의회 통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주목할만한 것은 오바마 당선자가 '재생에너지 생산'에 투자하겠다고 한 부분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사회기반시설 확충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200만 개 늘리고 향후 10년에 걸쳐 재생에너지에 투자해 500만 개의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영국 <타임>은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타임>의 조 클라인은 최근호에서 "오바마의 최우선 정책은 '대체 에너지 경제로 전환하는 것'"인데,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대규모의 인프라 부양정책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더 많은 지출을 하는 것에 대해서 미국인들이 냉소적인 시각을 보낼 것이지만 그래서 "오바마가 선거기간동안 기간시설 은행(Infrastructure Bank)을 제안했고, 이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1년 예산이 3조 달러인 점을 감안한다면 1년에 0.5%의 투자로 뭔가 효과를 내는 정책이 가능할 것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작도 있다. 또, 민주당과 공화당을 넘어서 '초당적 합의'를 이루어내겠다는 오바마 당선자의 의지는 '대규모 인프라 부양정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기간시설 은행의 성격도 문제가 될 수 있다.
보호무역주의? 누구를 위한?
오바마 당선자의 정책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부분은 콜롬비아, 한국 등의 자유무역협정(FTA)에서 보호무역주의 기조가 강화될 조짐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바마 당선자는 유세기간 동안 미국의 '산업적'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 자유무역협상(FTA)에 대해서는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곧 세계무역기구(WTO) 등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에서 양자간 자유무역협정으로 확산되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노동조건과 임금수준이 하락했던 "자유무역"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지난 3월 오바마 당선자는 경기침체로 타격을 입은 오하이오주에서의 경선을 앞두고 '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무효화 할 것'고 공언했다. 그러나 당시 오바마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오스틴 굴스비가 캐나다 정부 관계자를 만나 '선거용이니 너무 걱정말라'고 안심시킨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망신을 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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