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허수아비 집회로 표현의 자유 빼앗지 말라

[기고] 동희오토 집회와 교통질서 캠페인 동시 보장 가능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의해 야간집회 금지조항의 효력이 사라진지 두 달째. 이제 집회시위는 자유로운 걸까? 동희오토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이들에게 집회는 신고하면 할 수 있는 보장된 권리가 아니다.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박한 집회는 계속 금지당하고 있다. 어찌된 일일까.

  교통질서 캠페인을 하는 용역직원들이 1인 시위를 하는 동희오토 노동자를 막고 있다.

노동자들이 집회를 하고자하는 양재동 현대기아차 그룹 사옥 앞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기아 측이 고용한 용역들이 매일 건물 앞 인도를 꽉 매운 채 교통질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용역들이 이곳에서 교통질서 캠페인을 하기 시작한 것은 동희오토 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하고부터. 이들은 서초경찰서에 24시간 진을 치고 있으면서 동희오토 노동자들보다 먼저 집회 신고를 내고, 서초경찰서는 중복집회 금지조항인 집시법 8조를 근거로 나중에 접수된 동희오토 노조의 집회를 금지하고 있는 것이다.

집회를 할 생각도 아니면서 오로지 다른 집회를 방해할 목적으로 집회 신고를 먼저 내어 특정한 장소를 선점하는 '유령집회'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지자, 돈으로 용역을 사서 그 자리에 세워놓는 허수아비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정작 집회를 필요로 하는 이들의 집회 시위를 방해하기 위한 목적임은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정작 그 장소에서 집회가 절박하게 필요한 노동자들은 사측의 집회를 방해했다는 죄목으로 경찰에게 체포되고 있는 상황이다.

누구나 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동등한 조건이지는 않다. 현대기아처럼 매체와 자본을 소유하고 원하면 얼마든지 자기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지 않고는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노동자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으로 사는 현대기아차의 허수아비 집회조차 보장되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동희오토 노동자 같은 사회적 약자들의 집회의 자유는 더욱 보장되어야 한다. 돈과 권력을 보유하여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데 굳이 집회라는 수단이 필요하지 않은 자들과는 달리, 자신을 표현할 별다른 수단을 갖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회 시위의 자유는 최후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측의 허수아비 집회를 서초경찰서가 돕고 있다. 동일한 장소에 서로 상반, 방해된다고 판단되는 집회신고가 있을 때, 나중 것에 금지통고를 할 수 있다는 집시법 8조를 편한 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 상반된다고 혹은 그렇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상반, 방해되는 집회라도 나중에 신고 된 집회를 무조건 금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집회 금지에 관해 헌법재판소는 ‘집회의 금지와 해산은 집회의 자유를 보다 적게 제한하는 다른 수단, 즉 조건을 붙여 집회를 허용하는 가능성을 모두 소진한 후에 비로소 고려될 수 있는 최종적인 수단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경찰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제한을 최소화하면서 양측의 집회를 모두 보장할 수단을 찾아내야한다.

헌법재판소, 집회장소를 항의 대상으로부터 분리 금지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서초경찰서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용역직원들.

경찰이 노동자들의 집회를 금지하지 않고 양측의 집회를 모두 보장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가령, 집회 목적에 비추어 양측의 집회 장소를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헌법재판소는 집회 장소가 집회의 목적과 효과에 대해 갖는 중요한 의미를 인정, 집회장소를 항의의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금지한다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다. 그렇다면 현대기아측에 원청사용자성 인정과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는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집회를 현대 기아차 사옥 앞에서 하도록 하고, 딱히 어디서 하느냐가 중요해 보이지 않는 '교통질서 캠페인'은 장소를 조정하여 보장하면 충분할 것이다.

최근 수원지방법원은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인권지킴이)이 용인경찰서를 상대로 집회금지통고처분에 대한 효력정지 신청을 낸 건에 대하여, 반올림이 집회를 하지 못하면서 헌법상 보장된 집회의 자유를 침해받을 수 있다며 집행을 정지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반올림도 삼성측이 미리 집회신고를 내놓아, 용인서가 나중에 접수된 반올림의 집회를 금지한 경우다. 이 판례에서도 동일 장소에 중복 집회가 있더라도 나중의 집회를 무조건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양측의 집회를 보장하기 위한 다른 방법이 존재함에도 금지통보를 남발하는 서초경찰서의 의도는 빤히 보인다. 서초경찰서는 더 이상 동희오토 노동자들의 집회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 최소금지원칙을 천명한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존중하여 노동자들의 집회도 보장해야 한다. 아울러 서초경찰서와 같이 법을 멋대로 해석해 노동자집회를 탄압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는 집시법8조를 하루 빨리 개정해야 한다. 중복집회에 대해 기계적으로 나중에 접수된 집회를 금지하는 방식이 아니라, 최소한의 제한으로 가능한 모두 보장하는 방식을 찾도록 해야한다. 그렇게 되면, 오로지 집회를 방해하기 위한 꼼수로서의 허수아비 집회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