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장애 호소한 지하철 기관사 또 자살

도시철도공사 처우개선 노력한다더니...노조 “기관사 현실 암울”

지하철 기관사가 또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시철도노조는 서울지하철 6호선 기관사로 일하던 황 모(40) 씨가 19일 오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20일 밝혔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이유로, 노조 관계자는 “전날 오후 4시경 출근하겠다고 말한 뒤 경기도 고양시에 자신이 살던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투신했다”고 전했다.

주변 동료들에 의하면 고인은 평소 과묵하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기관사 업무에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황 씨는 지난해 10월 한 차례 사고를 겪으며 심리적 불안을 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황 씨가 운행하던 열차에서 한 승객의 가방이 끼었는데, 그 상태에서 열차가 움직였던 것이다. 당시 승객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사측은 황 씨에게 경위서를 작성하게 했고, 시말서를 요구하며 호되게 문책했다.

이후 황 씨의 심리적 불안 증세는 더 커졌던 것으로 보인다. 노조에 의하면 황 씨는 사고 재발 우려에 대한 ‘스트레스성 장애’ 소견을 받고, 병원을 다니며 신경안정제 등의 약물치료를 받았다

황 씨의 주변 사람들은 “지난 해 11월부터 이상했다. 누워있기는 하나 잠도 못 이루고, 점심을 먹고는 저녁에 뭐하지 걱정을 했으며, 시계를 계속 보며 시간이 빨리 가네, 뭐하지 하며 불안해했다”며 “어떨 때는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보며 앉아 있었다고 한다”고 증언했다.

노조는 지난해 3월 기관사 이 모 씨가 왕십리역에서 투신자살한 이후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시로 구성된 기관차 처우개선 특별위원회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10개월가량 지나며 기관사들이 “절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 씨의 유가족들도 “기관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기관사의 문제”라며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에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3월 박원순 시장이 취임한 후 자동운전 시스템으로 다시 전환되긴 했지만, 기존 수동운전 시스템은 모든 사고의 책임을 전적으로 기관사가 져야 한다. 차량 앞뒤로 기관사가 2명씩 타는 지하철 1~4호선의 서울메트로와 달리 지하철 5~8호선의 도시철도공사는 여전히 1인 승무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혼자서 운전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것이다.

노조는 “10개월의 긴 시간동안 사측은 ‘NO’만 되뇔 뿐 기관사 처우개선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인운전을 해야겠다느니 기관사가 너무나 편해서 정신질환이 걸렸다느니 막말을 일삼았다”며 “결과적으로 기관사들이 처해 있는 암울한 현실은 전혀 변한 것이 없다”고 비판했다.

  공황장애를 앓던 도시철도 기관사 이 모 씨가 지난해 3월 또다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자 노동, 사회단체 관계자들이 기관사의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했다. [자료사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연맹, 서울도시철도노조쟁의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작은 사고 하나라도 나면 해당 기관사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매도하는 조직문화와 통제 위주의 조직관리 속에서는 앞으로도 또 다른 이 모 씨, 황 모 씨와 같은 기관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며 황 씨의 죽음이 전적으로 사측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또 노조는 “기관사 처우개선 특별위원회에서의 소극적이고 비상식적인 행태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며 “처우개선 특별위원회에서 교번제 실시 등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바랐던 현장의 많은 기관사들을 절망에 빠뜨린 책임을 통감하고 사측은 이제라도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할 것이다”고 요구했다.

노조는 고인의 명예회복과 유족생계대책 마련, 재발방지대책을 사측에 요구한다는 입장으로 22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연다.

한편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앓던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벌써 여러 번이라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2003년 8월 도시철도의 두 기관사가 자살했고, 2012년 3명의 기관사가 자택이나 자신의 일터였던 선로에 뛰어들어 숨을 거뒀다.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지난해 7월 휴먼에러연구위원회와 직무환경개선연구소를 만들어 자살 예방에 나섰지만 공황장애를 앓는 기관사들의 자살을 막지 못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