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해고자로 살았다.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으로 한 번, 2015년 박근혜 정권에 맞서 민주노총 총파업과 민중총궐기 조직에 나섰던 이유로 또 한 번 해직된 그는, 수배와 구속, 수감 생활을 견디면서도 민주노조 운동의 일선에서 ‘광장’을 넓히고 밝히며 투쟁을 이어왔다.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 민주노총 첫 직선 집행부의 사무총장, 노동 해방을 위한 좌파 활동가 전국결집 공동대표 등 여러 책임과 역할을 맡아온 그는, 무엇보다 “교사, 노동자”로 살고 투쟁해왔다. 지난 30여 년, 1987년 초등교사로 학교 현장에서 처음 학생들을 마주한 때부터 해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학교 안과 밖 어디에서나 ‘참교육’의 길을 묻고 실천하려 노력해온 그가 복직 투쟁을 시작했다. “교실 없는 교사”, “거리의 교사”로 10년을 살아온 그가 이제야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6월 8일, 타오르는 한낮의 볕 아래 청와대 앞 피케팅에 나선 그를 만났다. 복직 투쟁의 배경과 의미, 교사 노동자로서 학교 안과 밖에서 이어온 ‘참교육’과 민주노조 운동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었다.
복직 투쟁을 시작해 청와대 앞 피케팅에 나선 이영주 전 민주노총 사무총장. 참세상 류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으로 활동한 이후 2014년, 한상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와 함께 민주노총 직선제 1기 선거에 나섰다. “2015년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으로 박근혜와 한판 대결”을 전면에 내건 선거였다. 교사인 자신이 “총파업 조직을 목표로 선언한 민주노총 집행부의 러닝메이트로 나간다는 것 자체가 이미 해고를 각오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었나.
당시 위원장 후보로 나섰던 한상균 동지가 만든 구호가 “절박하다. 단 한 번의 승리가!” 였다. 전교조인 저 같은 경우는 “박근혜는 아무도 구하지 못했지만, 우리는 단 한 명도 버리지 않는다”라는 슬로건이었다. 다른 계산 없이 정말 절박했던 시기였다. 박근혜 정권에 맞서는 노동자의 투쟁이 절실하다고 봤다.
개인적으로는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면서, 몇몇 개인의 투쟁, 어떤 단위 노조, 단체의 투쟁을 넘어서는 전국적인 전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제안을 받았던 초기에는 여러 고민으로 출마를 고사했었다. 그런데 한상균 동지가 러닝메이트를 구하지 못해 출마가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상황에 이르자,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서) 박근혜 정권과 맞서 싸우겠다는 후보가 단 한 명도 없는 현실은 막아야 되겠다는 마음으로 결정을 했다.
당선 여부보다는 선거운동이 현장에서부터 정권에 맞선 노동자의 전국적인 투쟁을 함께 조직해 나가는 과정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자는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전국의 거의 모든 사업장을 새벽부터 밤까지 찾아다니며 조합원들을 만났다.
결국 민주노총 직선제 1기 지도부로 당선됐다. 그러나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으로 인한 해고에 이어, 2015년 총파업과 민중총궐기 관련 유죄 판결은 또 다른 해고 사유가 됐다. 전교조가 합법 노조로 지위를 회복하고, 2015년 투쟁에 관한 유죄 판결에 대해서도 2021년 사면복권으로 공무담임권은 회복됐음에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했다. 무엇 때문이었나. 해고자로 살아온 지 10년, 지금 다시 복직 투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대통령령으로 사면복권이 됐기 때문에 다른 정치적 행위는 가능해졌다. 그런데 공무원 신분, 교사 신분을 회복하기 위한 후속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면복권은 됐지만, 복직으로 이어지는 행정 절차가 구체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것이다.
그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 때 개악된 교육공무원임용령 문제가 있다. 당시 해고된 지 3년이 지나면 다시 채용할 수 없도록 시행령을 바꾸었다. 해당 조항은 전교조 활동 등 사회적 투쟁 과정에서 해고된 교사들의 복직을 막기 위한 속셈이었다고 본다. 관련된 해직 교사들의 사안 대부분이 대법원까지 가서 다투고 나면 이미 3년이 지나버린다. 대법원 판결을 거친 뒤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올 길 자체가 막히는 셈이다.
또한 과거 교육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해직 교사들을 복직시켰던 경로였던 ‘특채’를 사실상 없애고, 경력경쟁채용 방식으로 바꿔 버렸다. 시험 등 경쟁을 통한 공개 채용 방식은 정권의 탄압으로 부당하게 해고된 사람의 복직 방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탄압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노동조합 활동의 사회적 의미를 인정하는 복직 경로가 필요하다. 우선은 시행령에서 3년 제한을 없애는 것이 1차 목표이고, 나아가 사면복권된 교사가 복직할 수 있는 특별채용 경로를 마련할 수 있도록 투쟁하려고 한다.
현재는 ‘이영주 복직 투쟁’이라 이름 붙이고 있지만, 이번 투쟁은 사실 바로 그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 투쟁이다. 저 한 사람의 복직 문제만이 아니라, 이 시행령에 갇혀 있는 전교조 해고자들, 나아가 공공부문 해고자들의 복직 경로를 만들기 위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고민이었다.
시행령 개정은 국무회의 의결 사항으로 정부가 의지만 가지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퇴진 이후 정권이 거듭 바뀌며 10여 년이 흘렀어도 제자리다. 전교조를 비롯해 어느 단위에서도 이 투쟁에 나서지 못했고, 이제 누군가는 이 문제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 과정에서 해고된 동지들과도 지난해부터 이제는 이 투쟁을 공동의 과제로 잡자는 마음을 모아왔다. 전교조 법외노조 투쟁을 완성하는 마무리이자, 박근혜 정권이 남긴 적폐를 바로잡는 과정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내년 8월이면 제가 퇴임이다. 그러다 보니 교사로서 마지막 남은 시기 동안 운동적으로 내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다. 해고된 동안에는 노동인권교육과 조합원 교육, 직업계고 현장실습 폐지 운동처럼, 학교 밖에서 교사인 제가 할 수 있는 참교육의 영역들을 찾아 실천하려 했다. 퇴임 1년을 앞두고 그런 고민들 속에서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 투쟁을 제 교사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하는 운동으로 삼게 됐다.
앞서 해고 이후 학교 밖에서도 참교육의 영역을 찾으려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어떻게 교사가 되었고, 참교육을 고민하게 되었나. 전교조와 총연맹(민주노총)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이어오면서의 고민과 바람은 무엇이었나.
사실 처음부터 교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고, 당시 교대는 학비 부담이 크지 않았다. 공부 말고는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교사가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됐다.
처음 교사가 됐을 때는, 교사가 되고 싶어서 교사가 된 사람에게 배우는 학생들보다 내 교실의 학생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열심히 일했다. 학생들에게 죄책감도 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생각도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특별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 좋은 사람들만 특정 직업에 모여야 한다면, 거꾸로 그렇지 않은 직업도 있다는 말이 된다. 교사도 하나의 직업일 뿐인데, 교사라는 일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87년에 발령을 받은 뒤 곧 6월 항쟁을 겪었고, 전교협과 전교조로 이어지는 교육운동 속에서 교사로 성장했다. 대학 시절에는 야학 활동을 많이 했다. 그곳에서 노동자로서 살아가는 학생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참교육은 전교조 활동에서부터 저에게 굉장히 큰 화두였다. 한국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학생들을 끊임없이 순치시키고, 개별화하고, 서열화하는 역할을 한다. 한 마디로 자본주의에 필요한 ‘근로자’를 생산해 내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그 교육에 맞서는 노동운동의, 노동조합의 교육은 무엇인가. 그것이 저에게 계속 고민이고 화두였다. 자본주의에 맞서는 교육은 어떤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시키고 서열화시키고 순치시키는 자본주의 체제의 교육에 맞서 협력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을 성장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노총에서의 활동도 그러한 고민과 맥을 같이 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것인가, 어떻게 주체적이고 자율적이고 협력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향한 투쟁을 함께 만들어갈 것인가가 저의 고민이었다.
2015년 민중총궐기와 2016년 촛불은, 그런 의미에서 제가 교사로서 우리 조합원들과 한국 시민들과 함께 만든 하나의 공개수업이었다고도 생각한다.
68혁명은 실패했다고도 하지만, 68혁명을 경험한 시민들이 그 이후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왔던 것처럼, 그 공개수업을 경험한 시민과 조합원들이 어떤 계급적 단결을, 사회적 투쟁을 경험하고 이것을 토대로 그다음의 투쟁과 다음의 세상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가 그 시기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렇게 보면 민주노총에 있을 때에도 저는 그냥 교사였다.
앞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육은 학생들을 체제에 순치시키는 기능적 역할을 한다고 짚었다. 그럼에도 자본주의체제 내 공교육 현장 안에서 자본주의에 맞서는 참교육을 구현할 수 있을까.
예전에는 전교조 교사들이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결국 사회의 권력자들이 지배하는 시스템 안에 교육이 있고, 교육 시스템 자체도 그 안에서 움직인다. 그러다 보니 교육만으로 교육을 바꾸는 데에는 한계가 많다. 그래서 “세상을 바꿔 교육을 바꾸자”는 말이 나오게 됐다고 생각한다.
결국 두 가지를 함께할 수밖에 없다. 자기 자리에서 자기 교육을 혁신하는 실천과, 한국 사회의 정치적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학교 밖의 투쟁을 교사들이 함께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이것을 교사로서의 애프터서비스라고 생각한다. 참교육의 애프터서비스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내 교실 안에서 아무리 참교육을 실천해도, 그 교실을 졸업한 학생들은 결국 한국 사회의 자본주의 현실 앞에 서게 된다. 저는 이미 대학을 나와 정규직 노동자인 교사가 됐는데, 학생들에게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할 수 있다. 참교육을 배운 학생들이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참교육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정말 내 교실에서 참교육을 하려면, 그 학생들이 그렇게 살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책임까지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걸 절실하게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예전에 졸업한 학생들과 반창회를 한 적이 있는데, 한 학생이 술을 몇 잔 마시고 엎드려 울더니 제 눈을 보고 “선생님, 그때 나 때려서라도 공부시키지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그날 “교육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생각이 무너졌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내 교실 안에서 참교육을 하려고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들으며 내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때 알았다. 이것이 학생을 위한 참교육이 아니라 나를 위한 참교육일 수도 있겠구나. 나는 행복했지만, 무책임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일 수 있겠구나. 정말 학생을 위한 참교육이라면 세상을 바꾸는 투쟁과 함께 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제 활동의 범위가 전교조 안에서 점점 바깥으로, 더 넓은 투쟁의 장으로 나가게 됐던 것 같다.
그 ‘공개수업’들을 적극 조직하면서 수배와 구속, 수감생활을 겪고 10년을 해고자로 지내왔다. 2015년 민중총궐기와 총파업에서부터 2016년 박근혜 퇴진 투쟁으로 이어진 흐름은 지난해 윤석열 퇴진 투쟁 과정에서도 환기됐다. 결국 두 차례 퇴진 투쟁이 모두 정치적으로는 민주당의 집권으로 수렴됐다는 씁쓸한 평가도 제기된다. 두 역사적 경험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그 과정에서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역할과 이후 과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박근혜 퇴진 투쟁 과정에서는 전체적으로 노동자·민중과 사회운동이 주도력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이번에 소위 ‘빛의 광장’의 경우, 초기부터 민주당의 주도로 진행되면서 노동자가 그 중심에 서지 못했다.
2016년 촛불의 경우, 앞서 2015년 민중총궐기와 총파업을 조직하는 과정이 있었다. 한상균 집행부가 들어서고 그해 2월에 민주노총의 3년 계획을 제출했는데, 그 1년 차 계획이 민중총궐기였다. 하루의 집회가 아니라 2017년까지 투쟁을 이어가기 위한 도입 투쟁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당시 민주노총의 위상도 높지 않았고, 조합원들 안에서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신뢰가 충분하지 않았다. 민중총궐기는 안으로는 조합원들이 민주노조와 집행부에 대한 신뢰를 찾고, 밖으로는 박근혜 정권이 민주노총의 위상을 확인하도록 하는 투쟁이었다.
민중총궐기는 서울에서 10만 명 이상이 모인, 거의 10년 만의 대규모 집회였는데, 성사되기 전까지는 불가능하다는 말이 많았다. 중앙과 지역의 노동자·민중 조직을 다시 점검하고 재건하는 과정을 통해서 가능했고, 그것이 이후 중앙과 지역에서 전국적인 촛불이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됐다.
한편, 당시 “총파업보다 민중총궐기가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실패하더라도 끊임없이 총파업을 선언하고 집행하려 했던 투쟁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행부를 신뢰했고, 민중총궐기에 참여할 결의를 만들 수 있었다.
이후 민중총궐기투쟁본부가 확대되면서 박근혜퇴진운동본부로 전환됐고, 그 안에서도 중심 세력은 민중총궐기투쟁본부였다. 2016~2017년 촛불의 시작도 사실상 공공 부문의 파업이었다. 촛불을 시작하고 지속하는 거의 모든 역할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만들어냈고, 광장 안에서 노동자들이 노동자의 요구를 분명하게 제출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당시 투쟁의 주도력이 노동자 계급에 있었다고 평가한다.
이번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는 사실상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조직적으로 제출되지는 못했다. 물론 다양한 소수자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무척 중요한 장점이다. 한편, 관련해서 이번 광장에서 20대 여성들이나 소수자들이 마치 처음으로 광장에 몰려나온 것처럼 표현하는 흐름에 대해서 왜 그런 오류가 일어나는지 의문이다. 2008년 촛불에서도 10대, 특히 여학생들이 중요한 주도 세력이었고, 2016~2017년 촛불에서도 10대·20대 청년들이 앞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청년들, 여러 소수자들은 늘 사회 변화의 전면에 있었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가 점차 주도력을 갖는다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데, 또한 노동 진영은 이들과 함께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2016~2017년에는 노동조직들이 지속적으로 파업을 비롯한 여러 투쟁들을 결의하고 이행해 냈다. 그런데 이번 ‘빛의 광장’에서는 민주노총의 그런 역할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노동자 스스로의 평가다. 결국 2016년 이후 10년이 지나도록 노동운동이 이 대중운동의 장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구체적인 전망과 상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현 민주노총 집행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운동 전체의 한계라고도 여겨진다. 최근 체제전환을 고민하는 사회운동의 흐름 안에서도 여러 고민들을 하고 있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것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공격하자는 것이 아니라, 전 사회적으로 운동 진영이 함께 고민하고 답을 찾아야 할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2016년의 촛불과 이번 ‘빛의 광장’ 모두 ‘혁명’이라는 표현이 등장했지만, 이것이 곧바로 진정한 혁명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몇 차례가 될지는 모르지만, 이런 역사적 경험들을 반복하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의 의식이 성장해 나가고, 분명히 혁명적 순간이 도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노동자·민중이 계급적으로 그 시기에 주도력을 가지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실망스러운 점도 있고 후회되는 점도 있지만, 빠르게 재정비하고 이후의 투쟁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광장 이후 다시 민주당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민주노총의 선거 방침, 집권 이후 사회적 대화 등을 둘러싼 논쟁도 잇따랐다. 현 이재명 정부 시기 민주노총, 민주노조 운동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나.
2016~2017년 촛불 이후, 그리고 이번 광장 이후에도 다시 민주당 정부가 들어섰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당이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저는 거꾸로, 민주당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잘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운동, 진보 진영이 제대로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민주당이 정말 잘하기를 원한다면, 민주노총은 지금 이 시기에 정말 강력한 투쟁으로 민주당이 우리가 원하는 일들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빛의 광장’에서 시민들이 외쳤던 요구들, 차별금지법을 비롯해 다양한 노동기본권의 요구 등을 민주당이 실현할 수 있을 만큼 강하게 압박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당을 도와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운동 진영은 민주당을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것을 민주당을 지원하는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저는 그것이 역사의 죄를 짓는 일이라고 본다. 그렇게 하면 민주당도 더 보수화되고, 한국 정치도 결국 보수 양당 체제로 고착화될 뿐이다. 지금은 더 강하고 자신 있게 우리의 목소리를 요구해야 할 때다.
2017년에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이 사회적 총파업이라고 하는 6·30 투쟁이었다. 지금 이재명 정부에서도, 정부가 사회대개혁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강력한 투쟁이 여름에 배치돼야 한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다 상식처럼 알고 있는 이야기인데, 지금 민주노총이 올 7~8월 투쟁을 정말 강도 높은 총파업으로 만들어낼 수 있느냐고 물으면, 불가하다고 다 여긴다. 그런데 2015년에도 마찬가지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주체적 정세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보는 것은 진단이지, 그것이 곧 결정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체적 조건이 어렵다면 정치적 정세는 어떠한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가능하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이 나와야 한다. 저는 무엇보다 올해는 투쟁이 필요한 시기라고 판단한다.
그 투쟁의 핵심은 불안정 노동 철폐와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이 정규직 대공장 노동조합이라는 비판은 굉장히 중요한 비판이다. 그런데 그 비판에서 운동이 멈춰버렸다. 그 비판을 넘어서는 투쟁을 만들어야 한다.
2017년 6·30 사회적 총파업의 핵심도 비정규직 의제였다. 그전까지 민주노총 안에서 비정규직 의제는 비정규직의 파업이고, 정규직은 거기에 연대하는 방식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6·30 사회적 총파업은 비정규직 의제를 민주노총의 공식 총파업 의제로 선언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 투쟁의 주체로 함께 나서라는 요구였다. 많은 분들이 한상균 집행부 때 가장 의미 있는 투쟁으로 민중총궐기를 꼽지만, 사실 우리는 6·30 사회적 총파업을 만들기 위해 민중총궐기를 한 것이었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을 비정규직 의제로 선언하는 것, 그것이 목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민주노총이 정말 민주노조로서 혁신을 만들려면 불안정 노동 철폐를 전면에 걸고,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투쟁을 배치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모두 복무해야 한다. 그것이 혁신이다. 민주노조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그 길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사업으로 잡힌다면, 되는가 안 되는가를 먼저 따질 일이 아니다. 민주노총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교육과 선전부터 시작해야 하고, 정규직 사업장들이 그 결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 과정 자체가 운동의 혁신이고, 이것을 넘어서야 민주노총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지금 민주노총의 사업은 어떻게 보면 백화점처럼 많다. 저는 이것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불안정 노동 철폐와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확보를 민주노총 전체의 투쟁으로 세우는 것, 그것이 지금 민주노조 운동이 다시 자기 역할을 찾는 길이라고 본다.
다시 복직 투쟁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후 투쟁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나.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게 된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을까.
지난 5월 복직 투쟁을 공개적으로 시작한 이후 7월 초까지는 청와대 앞 피케팅 등을 이어가며 교육공무원임용령 개정의 필요성을 사회화해 나가려고 한다. 7월 이후에는 공동대책위원회를 확대 구성하고, 더 넓은 투쟁을 조직해 나갈 계획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시행령 개정은 국무회의 의결 사항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방선거 이후에는 진보교육감협의회와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우리의 요구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출하려고 한다. 이후 교육부, 노동부, 대통령실 등과도 간담회를 추진해 부당하게 해직된 교사들을 비롯한 공공 부문 해고 노동자들의 명예회복과 복직을 위한 길을 찾아가려 한다.
초등교사의 좋은 점은 학생들과 혼연일체가 되는 수업이 가능하다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담임 제도가 있고 대부분의 교과를 한 교사가 맡는다. 그래서 수업의 통합이 가능하고, 생활지도와 수업이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초등만의 수업 방식과 장점이 있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추억으로 남는다. 저에게도 학생들과 현장에서 함께했던 수업들의 기억이 있다. 학생들과 완전히 서로 간의 일체감이 느껴졌던 수업의 상이 있다. 혹 다시 학교로 돌아간다면, 그런 수업을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 싶다.
한편, 지금 하고 있는 복직 투쟁 역시 하나의 수업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민주노총에서 사업이나 투쟁을 할 때도 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한국 사회가 또는 우리 동지들이 이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가 저에게 가장 큰 화두였다.
노동교육의 경우,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승리하는 사례 자체가 최고의 노동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학교 현장에서 본다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나 교사들이 노동기본권을 누리면서 승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노동교육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학교 밖 저의 복직 투쟁 과정도 학생들에게 또 하나의 노동교육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노동조합과 노동자가 존중받고, 투쟁을 통해 결국은 승리한다는 사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교실이 없는 교사라는 것은 순간순간 막막한 일이기도 하다. 교실이 없는 교사는 어떻게 참교육을 해야 하는가를 계속 고민해 왔다. 그런 점에서 이 투쟁 또한 하나의 공개수업, 참교육의 공개수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복직 투쟁 외에 앞으로의 활동이나 삶의 계획이 있다면.
해고된 이후 제게 가장 큰 목표는 분명했다. 모든 해고자의 투쟁은 자기와 동일한 해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표현은 다를 수 있지만, 해고자들이 싸우는 이유는 결국 자신과 같은 해고자가 다시 만들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본다. 그것이 해고자 투쟁의 의미라고 생각해 왔다.
지금까지 제 해고자 투쟁은 교실 없는 교사 노동자로서의 참교육을 끊임없이 실천하려 노력하는 과정이었다. 그다음으로는 전국적인 투쟁의 전선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왔다. 그 고민의 한 축이 전국 결집(노동해방을 위한 좌파활동가 전국결집) 등의 활동이었다.
당분간은 내년 여름까지 이 투쟁에 집중하려 한다. 다만 계속되는 고민은, 이후에 내가 어떤 역할로 우리의 세대가 아니라 다음 세대들의 운동을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이제 제가 주도할 시기는 지났다고 생각한다. 어떤 판을 새로 주도한다기보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나이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이제 60대로 들어선 상황에서, 내 운동을 새롭게 만들어간다기보다 지금 운동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어떤 지원과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더 무게를 두어 가고 있는 상황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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