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월드컵과 사람들]‘월드컵 6.10’에 떠밀려난 ‘6.10정신’

월드컵에 가려진 6.10항쟁 15주년 기념식

김학규/6월항쟁계승반전평화대회위원회 사무국장
월드컵 한-미전이 열린 지난 6월 10일은 87년 6월항쟁이래 최대 인파인 13만명이 서울 시청앞 광장에 집결했다는 점에서 역사에 새롭게 기록될 날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날은 15년 전 우리 사회민주화의 결정적 분수령이 되었던 87년 6월항쟁이 일어났던 바로 그 6월 10일이었다. 15년 전에 있었던 6월항쟁의 감격을 되새기면서 시청 앞 광장에서 한-미전을 응원했다면 그 날은 아마도 우리 사회 민족민주운동의 역사에도 새롭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미전이 열린 바로 그 날, 시청 옆에 있는 대한성공회성당에서 2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6월항쟁계승반전평화대회위원회(공동대표 오충일 외 24인)의 주최로 ‘6월항쟁 1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기념식이 있은 후 ‘6월항쟁 15주년에 즈음한 2002인 선언’까지 발표되었고 평화행진이 있었지만 그 역시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이는 전적으로 언론의 책임이다. 예년 같으면 방송에 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조망해보는 다큐멘터리가 거의 단골메뉴로 등장하곤 했다. 신문에도 6월항쟁을 재조명해보는 기획특집물이 거의 빠짐없이 실렸으나 올해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6월항쟁의 성과 중 하나인 <한겨레>에서조차 6월항쟁 15주년사업 관련 기사는 월드컵의 열기에 밀려 ‘한겨레2’의 ‘한반도’란에 실릴 수밖에(?) 없었다. <노동일보> 등 일부 언론만이 1면에 관련기사를 다루었을 뿐이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은 당일에는 한-미전을 전망하느라, 한-미전이 끝난 후에는 그 결과를 분석하고 차후 한국의 16강 전망을 다루느라 정신이 없었다.

월드컵이 온 국민의 관심사이고 전세계인의 축제인 마당에 언론에 크게 다루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대사에 하나의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었던 6월항쟁 15주년의 의미를 이렇게 소홀히 다룬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소중한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월드컵의 열기 때문에 묻어버린다면 그것은 지금 당장의 이익 때문에 우리의 역사와 미래를 팔아먹는 행위다.

더군다나 월드컵이 한창인 이 시간에도 한반도 전쟁위기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6월항쟁 15주년기념 반전평화대회의 문제의식은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다루어야 한다. 앞뒤 맥락 없이 “6월항쟁 이래 최대인파 서울시청앞 집결”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것으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는 일이다.

또한 우리 진보운동과 시민사회운동 일부에서 6월항쟁과 뒤이은 ‘7·8·9노동자대투쟁’을 기계적으로 대립시키면서 6월항쟁의 의미를 폄하하려는 경향도 6월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일을 미약하나마 방해했다는 사실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 92호] 6.17 ~ 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