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로, 두 아이를 키우며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가 있으며, 학부모의 입장에서 교육 문제 전반에 날카롭고 따끔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교육의 주체로 빠질 수 없는, 학부모의힘을 보여준다.
학부모의 불만과 공적인 분노 사이
"나는 학부모 22년차, 교육운동에 발 들인 지 16년..."
김정명신 
누구나 자식을 낳으면 부모가 되지만 좋은 부모는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만들어지는 영광의 자리이다. 한편 누구나 자식을 학교에 보내면 학부모가 되지만 좋은 학부모는 끊임없는 관심과 학교에 대한 참여를 통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런 학부모들이 내아이만 아닌 우리의 아이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질 때 우리교육은 달라질 수 있다. 학부모의 각성과 참여가 교육개혁의 동력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최소한 학부모의 각성된 노력과 행동이 바탕이 될 때, 학부모각자의 불만이 공적인 분노로 바뀔 때 우리교육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22년차 학부모이다. 1990년 초짜 학부모 시절, 좋은 부모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어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했는데 좋은 학부모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부터 영 어려워 보였다. 좋은 학부모 되자며 주변 엄마들과 독서 모임을 꾸렸는데 아이가 입학하면서 지조를 버렸다며 하나둘씩 안 나오는 것을 보고 학부모로서 혼자 결단하는 것은 기본이지만 구조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교육운동에 발을 들인 것은 지금부터 16년전 일이다.

자녀양육이 인생의 보람이라는 것은 나뿐 만이 아니라 아이를 양육하는 대부분의 부모가 알고 있으며 일상에서 실천할 것이다. 그런데 학부모가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녀의 행불행은 학벌에서 마무리되기 때문에 아이의 인성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알아서 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대학입시와 효율만을 강조하는 사회경쟁체제 라는 것이 깔려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저 출산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은 것은 자녀양육이 더 이상 기쁨이나 행복, 보람이 아니라 학부모로서의 고통과 압박과 스트레스가 따르기 때문이다.

최근 교육문제에 대해 진단은 같아도 각자 해결책은 다르다. 한국 사회도 양극화가 깊어지기 시작해 이제 계층이 뚜렷이 생겨나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자신들이 대변하고자 하는 계층의 이익에 최대한 부합시키는 것이 고교평준화 해체라고 생각한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역시 선거에 표를 위해 특목고를 설립하고 교육특구를 만든다며 정략적으로 교육을 흔든다. 교육부총리는 자립형사립고 20개교 증설, 공영형 혁신학교 16개 도입한다고 하고 지자체들은 앞을 다투어 1군 1명문고 설립한다고 한다. 지난 6년간 초등학생 유학이 10배나 늘어났다는 통계가 발표되었다.

이런 광풍으로부터 어느 부모가 자유롭고, 평화로울 수 있겠는가만은 그래도 길을 찾아야한다. 길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학교에 대한 믿음과 참여이다. 학부모들은 교육부는 불신하더라도 학교에 대한 믿음은 가져야 한다. ‘학생은 학교 공부에 최선을 다했을 때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 그러한 믿음에서 비롯된 학교에 대한 관심은 실제 대학입시에서나 학부모 역할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편 그 길은 뜻밖에 자신들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같은 글을 쓸 수 있고 독자들은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한편 지루해할 것이다. 내가 독자라도 그럴 것이다. 다행히 so what? 이 아니라면. 그러나 막상 대안제시에 이르면 흥! ...하고 발길을 돌린다. 대안들이 뜻밖에 참 소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촛불시위처럼 각자 선자리에서 각성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어떻게 광풍의 흐름을 바꾸어낼 것인가? )

나는 2년전 집 부근 한 고등학교 학교운영위원 지역위원 선거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때 나뿐만이 아니라 한국 교육에 학교운영위원회를 도입한데 크게 기여한 백명에 낄만한 아무개 박사와 아무개 회장 등 몇 명이 모두 떨어졌다. 낙선한 우리들 대신 당선된 사람은 학교장이 내정한 전직 학부모회장들이었다. 학부모들에게는 단위학교 운영의 민주성과 투명성보다는 내아이 대학합격을 위해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 실시 경험이 풍부하고 교장선생님과 친분이 돈독한 전직 학부모회장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부모도 입시교육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자녀를 학교에 볼모잡혀 놓았다고 생각하면서 학교운영위원이 되어 교장선생님이나 교사들 앞에서 바른말을 한다는 것은 고독하고 힘든 작업이다.

지금까지 학부모들은 공교육 불신의 가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악순환 구조는 학부모들이 자신의 불만을 공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해결한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학부모들이 지금까지 교육문제를 개별적으로 해결하려 발버둥을 쳤다면, 학원비 부담 때문에 답답했다면, 단 한 번이라도 대안교육과 조기유학을 상상해 보았다면, 가사일, 직장일로 바쁘다며 내 아이 학교는 멀리했다면 이젠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내가 사는 지역의 학교에 관심을 갖는 것이 우선이다.

아버지. 할머니라도 좋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입시교육에서 좀 자유로우니 학교운영위원회가 제대로 돌아가면 학교운영의 민주화와 투명성 확보가 한결 수월하다. 학교운영위원 선거는 오는 봄에 시작한다. 학부모와 지역위원으로 당당히 참여하여 개인적으로 학교에 가졌던 불만을 공적인 언사로 풀어내고, 공부 못 하는 내 아이 입장도 대변해주고, 고속도로 화장실만도 못한 학교 화장실에 휴지와 비누를 달아달라며 정부에 요구하고, 학원보낼 돈 없어 학교밖에 매달릴 곳이 없는 가난한 부모 입장도 대변해야한다.

그래야만 기왕에 시작한 교육개혁을 내 것으로 만들고, 그 변화를 내 아이가 체감할 수 있다. 때마침 참여정부가 사립학교법을 개정하여 큰 발걸음을 내딛었다. 한편 교원단체에서 학교장승진제도를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각성된 학부모가 받쳐주어야 빛을 발할 것이며 그렇지 못하면 또 다시 형식상의 민주주의, 절차상 민주주의에 머물게 될것이다.

매일 아침 반복되는 자립형사립고 증설과 평준화 해체가 공교육을 살린다는 담론에 맞서 학부모들은 어떤 그림이 내 아이와 우리 아이의 성장과 국가 미래를 돕는 것이 될지 한 번쯤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때이다.

참세상 고정칼럼주장, 학부모의힘을 시작하며

교육운동을 하면서 주로 성명서, 논평, 발제문과 토론문등 딱딱하고 지당하신 말씀, 때에 따라서는 내가 읽기에도 지루한 글을 쓰게 된다. 그 글을 읽은 독자들은 가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①주장이 옳긴 옳은데 ... ②so what?

이러한 공공의 영역과는 달리 개인의 영역에서 두 아이 10대 사춘기를 지켜보며 울고 웃긴 이야기를 일기처럼 써왔다. 그렇게 묶인 책이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이다.(2002년, 동아일보사간행)

그런데 이번에는 여성이든, 남성이든, 지식인이든, 노동자든 ‘학부모’라는 딱지를 붙인 동료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이야기, 언론을 통한 한줄 주장이 아닌 한줄속에 생략된 많은 이야기, 각자의 교육과 관련한 개인적 경험이 바탕이 되어 담론까지 이어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학생들을 구하는데 학부모의 힘이 절절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학생급식비에서 찌질하게 돈떼어먹고 불량급식못하게 하려면, 아시아대학처럼 모든 교수와 직원들에게 5000만원부터 1억씩 채용 뇌물 받으며 차용증서를 써준 이사장 교육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면 사립학교법이 개정되었어도 그 이후 학부모들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하다. 시민운동, 양에서 질이 나온다. 교육시민운동 16년, 내가 지리멸렬 제자리 걸음하면서 속도붙이지 못하고 못 이룬 일을 함께 하려면 교육에 관심있는 각성된 학부모의 힘이 필요하다.

군대간 큰애가 지난 12월, 면회 간 내게 말했다.
“군대내 일어나는 갈등의 주원인은 교육문제에서 시작되었다는 결론을 얻었다. 잘못 교육받은 사람들이 계급을 매개로 일어나는 수많은 갈등과 폭력... 잘못된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불쌍하다. 엄마는 열심히 구조를 바꿔내라. 나는 올바르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아이가 무엇이 되겠다고 장래의 희망을 말한 것은 난생처음이다. 그애가 어렸을 때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아무리 물어도 그 흔한 대통령도, 연예인도, 벤처기업인도 입에 올린 적이 없다. 자유주의적 성향, 특목고 졸업, 유명대(?) 경영학과에 적을 둔 아이가 한 그 말은 솔직히 나를 놀라게 했다. 저희 학과 선배들 대부분 장래희망이 펀드매니저가 되어 방송사 기상캐스터와 결혼하는 것이라고 웃던 아이였다.

그런데 큰애뿐만이 아니다. 작은애도 그렇다. 중2때 학교를 자퇴한다고 선언했다가 결국 부모의 미련 때문에 고1때 자퇴한 후 엄마인 나를 수없이 울고 웃게 했던 작은 아이의 싸이 홈에도 입구에 최근 이런 글이 적혀있었다.
“교육의 힘...나는 무엇을 할까? ”

교육을 위해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두손 마주잡고 함께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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