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묵은 것을 다 태워 버리고"

여수화재 참사 희생 이주노동자 49재, "투쟁은 이제 시작"

지난 2월 11일 새벽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주노동자들의 장례식이 3월 30일 치러진 다음날 여수 외국인 보호소 화재참사 공동대책위원회(여수공대위)는 ‘미등록이주노동자 단속추방 중단․외국인보호소폐쇄 공동행동-여수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 희생자 49재’를 열었다.



“보호는 필요 없다! 전면 합법화 쟁취하자”
“노동비자는 굽히지 않는 우리의 요구”


집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옆에 길게 늘어진 흰 천위에는 ‘보호는 필요 없다’, ‘노동자는 하나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쟁취하고 노동비자 줘라’는 등의 이주노동자들의 요구와 바람이 각 나라의 언어로 쓰였다.



집회에 모인 400여명의 이주노동자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장례는 끝이 아니라 투쟁의 시작일 뿐”이라며 투쟁의 의지를 높였다.

까지만 서울경기인천 이주노동자 노동조합(이주노조) 위원장은 “장례식은 끝났지만, 우리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집회의 문을 열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딱지 붙여 2003년부터 단속추방을 한 이후로 9만 여명이 단속추방되고 30여명이 자살했다”며 안타까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까지만 이주노조 위원장은 “우리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사람에게는 투쟁밖에 없다. 한국정부는 당연히 노동권리, 노동비자를 줘야 하고, 우리는 받아야만 한다” 아직도 미등록 이주노동자 전면합법화 및 노동비자 쟁취의 요구를 굽히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네덜란드 이주노동자 보호소에서도 화재
두 명 장관에 대한 사임 끌어내고, 수상 탄핵운동으로 이어져


이날 집회에서 눈길을 끈 것은 네덜란드에서 온 활동가의 발언이었다. 2005년 네덜란드에서도 외국인 보호소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서 11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결국에는 법무부 장관과 주택부 장관 두 명이 사임한 성과를 얻어냈던 투쟁에 함께했던 잔 폴 스미트 암스테르담 및 공항 추방자 보호소 감시단체 사무국장이 집회 연단에 올랐다.



연단에 오른 잔 폴 스미트 사무국장은 “네덜란드 보호소와 여수보호소는 1년 전에 한 차례 불이 났던 것이 유사하다”며 “가장 큰 문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언급과 책임을 정부가 회피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에서는 2005년 이후 교회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에서 보호소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면서 독립적 수사기구를 설치했다며 이 수사기구의 결과가 두 명의 장관에 대한 사임뿐만 아니라 수상 탄핵운동으로 나아갔다고 전했다. 잔 폴 스미트 사무국장은 “이주노동자도 인간인 이상 어떤 곳에서도 인권은 반드시 존중되어야 하며 감옥에 가두는 것은 인권침해”라고 강조했다.

책임 회피하는 법무부에 대한 비난 쏟아져

이주노동자 공동체 활동가들도 이주노동자들을 범죄인 취급하는 한국정부에 대한 비난을 성토했다. 필리핀 출신 마크 이주노동자 공동체인 카사마코 활동가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아주 쉽게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한국 정부를 비난했다. 핵심적인 문제는 “고용허가제, 연수생제도, 단속 추방에 있다”며 “우리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추모나 기념은 없다”고 못 박았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 단체인 미얀마행동 활동가 소모뚜 활동가는 “한국은 민주화되지 않은 나라이다. 한국인들은 안전한지 모르지만 희망을 찾아 이 땅에 온 노동자들을 동물처럼 끌려가고 억울하게 죽어가고 있다”며 “개판이 되고 있는 대한민국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고 호소해 집회 참가자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네덜란드 외에도 수많은 곳에서 연대의 메시지가 도착에 집회 참가자들의 힘을 북돋워 주었다. “마땅히 한국에서 존중받아야 할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유령으로 남아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전면적인 합법화”를 요구하는 메시지, “노동권 보장”을 촉국하는 메시지가 미국, 일본, 홍콩, 유럽 등에서 날아왔다는 소식에 이주노동자들은 환호했다. 현재 전 세계에서 610여명 개인과 17개 해외단체가 항의서한 및 지지서명을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법부무 선별 합법화 시사에도 냉담한 반응

법무부가 지난 29일 조건부 선별 합법화를 시사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집회에 참가한 안산지역 네팔 이주노동자 나렌드라는 지역에서 이 소식을 접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고 전했다. 사실 2003년 때 다 겪었던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반응이다. “한 번 갔다 오면 돈이 몇 천만 원 깨지는데 누가 나가겠느냐. 나가도 돌아올지 확실하지 않다”며 한국 정부 정책이 이주노동자들에게 전혀 신뢰를 주고 있지 못하며, 현실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결의문을 낭독하기에 앞서 최현모 이주인권연대 대표는 “이주노동자들을 분열하고 억압했던 정책이 3년을 맞는 지금 기만적인 술책으로 이주노동자들을 갈라놓고, 선별합법화하는 정책”을 정부에서 내고 있다며, “돌아가신 영혼이 찬바닥에 누워있는 동안 정부는 여전히 억압적인 정책을 그만두지 않고 있다”며 “투쟁 없이 얻어낼 수 있는 것을 없다”고 강조했다.

허세욱 조합원 분신 소식에 술렁
“아...또 한명이” 안타까움과 분노


집회가 끝날 때 즈음 허세욱 조합원의 분신 소식이 알려지면서 집회참가자들은 또 다시 안타까움과 분노를 쏟아냈다. 허세욱 조합원의 분신 소식을 전하던 사회자는 “노무현 정부가 또 한명의 목숨을 앗아가려 한다”며 분신 소식을 전했고, 이주노동자들은 억울하게 보호소에서 죽어간 이주노동자들의 49재에 다시 또 한명이 죽음 건 사투를 하고 있는 소식에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난과 투쟁의 결의를 다졌다.





집회는 “이 묵은 것을 다 태워 버리고 망자들이 편하게 천국에서 살기를 기원”하는 의식을 진행했다. 분신 소식을 접한 집회 참가 대오 대다수는 착잡한 마음으로 이후 진행되는 한미FTA저지 촛불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발길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