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단두대 위에 세우는 비정규법

7월 시행 앞두고 비정규직 마구잡이 해고 중

“나는 단두대 위에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올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비정규 관련 법안과 5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될 ‘공공부문 비정규 대책’ 때문에 목숨이 위태하다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울부짖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다는 노동부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인간적 모멸을 느꼈다”라고 울부짖었으며, 노동부 산하 산업인력공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때문에 66일간의 파업으로 얻어낸 정규직화 노사 합의도 무로 돌아갔다고 울부짖었다. 심지어 노사정이 모여 ‘새로운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만들겠다고 나선 노사발전재단에서도 비정규직들은 일방적인 계약해지에 거리에서 울부짖고 있다. 금융부문에서, 병원에서, 유통업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울부짖는다.


노동부, 비정규직 고용 최대 “집안도 못 챙기면서 무슨”

30일, 오전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 노동자 증언대회에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했다.

노동부에서 10년을 일했다는 박재철 공공노조 노동부비정규직지부 지부장은 “차별과 모멸 속에서 어느 정부부처 노동자들보다 힘들게 일했다”라며 “그러나 임금수준은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는 90만 원 정도에 불과하고 시간외 수당을 다 해야 1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라고 비정규직의 설움을 전했다.

  박재철 공공노조 노동부비정규직지부 지부장

박재철 지부장에 따르면 노동부는 사무보조원규정이 있음에도 각 지청별로 급여 책정방법이 달라 비정규직 사이에 급여 차이가 존재했으며, 승급조정에서도 원칙이 없었다. 또한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는 차 심부름은 물론이고 화장실 청소에다가 공무원, 상담원 책상까지 닦아야 했으며, 해고가 될까봐 육아휴직은 꿈꿀 수도 없다. 어느 비정규직 노동자는 자기가 어느 소속인줄도 모르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민원상담, 민원접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박재철 지부장은 “집안일도 제대로 처리 못하면서 남의 집을 생각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라며 “노동자를 보호하고 법을 위반하는 사업주를 처벌해야 하는 노동부가 이런 행위를 하는데 누가 노동부를 믿고 있을지 의문이 간다”라고 노동부의 행태를 꼬집었다.

공기업들도 비정규직 집단 해고 중

노동부도 이러한데 공기업들은 뭐가 다를까. 도시철도에 있는 매점에서 일하는 서영옥 씨는 “5월 말로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따른 무기계약 전환 대상자 제출에서 도시철도공사는 14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중 단 한 명도 무기계약으로 전환할 수 없으며 전원 외주용역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 때문에 도시철도공사에서 일하던 142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 위기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서영옥 씨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노조에 가입해 도시철도공사에 교섭을 요청했다. 그러나 도시철도공사에서 돌아온 말은 “조합원 명단을 공개해라”, “도시철도노조 하고만 얘기하겠다”라는 교섭을 회피하기 위한 말 뿐이었다.

금융, 유통부문 비정규직에도 해고 칼바람

문제는 민간 기업으로 가면 더욱 심각해진다.

농협 성남 농수산물 종합유통센터에서 2000년부터 일한 임미선 씨는 일한 지 5년이 된 2005년 12월 31일부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이는 금융권 전반이 5년 고용연한제라는 이상한 준칙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5년 고용연한제는 “계속근로 5년 근무 후 근로계약기간이 종료되어 1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는 직원으로 채용할 수 없다”라고 밝히고 있다. 결국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5년짜리 시한부 인생을 살라는 얘기다.

임미선 씨는 이런 준칙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제소했으며 승소했다.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승소했다. 그러나 사측은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행정소송을 걸었다.

이에 대해 배삼영 농협중앙회노조 위원장은 “정부는 비정규법안에 따라 차별시정이 가능하다고 홍보하고 있지만, 임미선 조합원처럼 노동위원회에서 사측이 패소하면 법원에 제소해 대법원까지 수 년간 법정 공방을 벌일 것이 분명하다”라며 “수 년 간의 법정 공방을 벌이는 동안 비정규 노동자의 삶은 어떻게 될 것인지 너무나 명확하다”라고 지적했다. 차별시정도 남의 나라 얘기다.

해고의 칼바람은 유통부문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이랜드그룹 소속인 뉴코아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오는 7월 비정규 관련 법안 시행을 앞두고 작년 말부터 계약직 노동자들의 계약기간을 10개월에서 6개월, 3개월 등으로 강제적으로 단축시켜 왔으며, 지금은 계약기간을 1개월로 단축시켰다. 이 들 중에는 계약 기간을 아예 공란으로 하고 회사가 임의로 계약 기간을 기록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에 축산, 수산과 일부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90명의 계약직 노동자들과 계산직 380여 명의 계약직 노동자들은 모두 오는 6월 30일부로 계약해지 위기에 있다.

또한 이랜드그룹의 홈에버(구 까르푸)는 06년 노조와 “18개월 이상 근무한 계약직 조합원에 대해 정당한 사유 없이 계약기간 만료를 이유로 계약해지 할 수 없다”라고 합의했으나 사측은 이를 어기고 오늘자로(30일) 400여 명의 보안, 주차, 가트 비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했으며, 청소용역 노동자의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증언대회에 나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 노동자를 죽이는 비정규법이 한국사회를 엄습하고 있다”라며 “비정규법이 시행되기도 전에 해고와 외주화 그리고 단협 불이행 등으로 생존권의 위기에 몰려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제 정부와 자본의 전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에 맞서 단호한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라고 목소리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