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허가제 3년, 이주노동자 “노동비자”를 외치다

“뜨거워 죽더라도 집회는 와야지”

정부 정책의 정당성과 성공의 여부는 정책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들이 이 정책을 어떻게 수용하는가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고용허가제는 실패한 정책으로 보인다. 정책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이 고용허가제에 격렬히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르 파코르 본더꺼로(단속추방 중단하라/방글라데시어)!
짜야, 자야 캄크루 완뜨(노동권을 보장하라/스리랑카어)!
아마데르 보이더 코르테 허베(이주노동자를 합법화하라/네팔어)!
짜야, 짜야, 캄카루 비자(노동비자 쟁취하자/스리랑카)!
러라이, 러라이, 러라이, 짜이(투쟁! 투쟁! 투쟁!)

고용허가제 3년을 맞아 19일 서울역에서 열린 ‘고용허가제 시행 3년 규탄, 단속추방 중단,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 쟁취를 위한 결의대회’는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500여 명의 이주노동자와 연대단위들이 모여 뜨거운 투쟁의 열기를 보여주었다.

“내가 집회가자니까 친구들이 뭐라는 줄 알아요? 이렇게 뜨거운데 뜨거워 죽을일 있냐고 해요. 그래도 와야지요.” 의정부에서 온 한 이주노조 활동가가 웃으면서 건넨 한마디다. 뜨거운 태양조차도 이주노동자들이 집회에 오는 것을 가로막지 못할 만큼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이번 집회에는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이주노조) 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네팔, 방글라데시, 버마 이주노동자 공동체들이 활발하게 참가해 이주노동자 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와 똑같다”

참가단체 대표자 발언에 나선 까지만 이주노조 위원장은 “고용허가제 정책은 25년 전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왔던 산업연수생제와 똑같은 정책”이라고 고용허가제를 규정했다. 까지만 위원장은 “합법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한다고 만든 고용허가제가 사실은 이주노동자들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며 고용허가제의 본질을 폭로했다.

우토이 캘로이 필리핀 이주노동자 공동체 카사마코 활동가도 정부 정책이 오히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카사마코 활동가는 “우리는 한국에서도 세계 어디에서도 불법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연수생제도와 고용허가제가 우리를 이렇게 힘든 고통으로 내몰았다”며 현재 정부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동자로 인정한다며 고용허가제가 왠말이냐”

아울러 한국 정부가 이주노동자들 자체를 범죄시하는 풍토를 만들고 있는데 대해 강력히 성토했다. 우토이 캘로이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러나 동물을 사냥하듯이 단속을 하고 있다”며 정부의 단속추방의 반인권적이라고 주장했다.

네팔 이주노동자 공동체인 NCC 대표 범 라우디도 “한국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며 비정규직법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고, 이주노동자들을 보호한다며 고용허가제를 만들어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비난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비정규직들의 투쟁과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은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다는 이야기다. 범 라우디 대표는 “이주노동자는 눈물이 아니라, 투쟁으로 역사를 만들 것”이라며 정부의 고용허가제와 단속추방에 맞서 계속 투쟁을 해 나갈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를 표했다. 범 라우디 대표는 “이주노동자를 노동자로 인정한다면서 고용허가제가 왠 말이냐”며 최소한의 노동권도 보장되지 않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고 노동허가제를 도입하라고 촉구했다.

뜨거운 연대의 열기

특히 이번 집회에는 현재 투쟁을 진행하고 있는 이랜드 노동조합 조합원과 전철연 등 한국의 연대단위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노동기본권 국제워크숍 참가자들이 함께해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성명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체류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고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맺도록 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인 직장 이동의 자유조차 가로막고 있다”며 “이런 고용허가제의 문제점은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조차 중대한 제도적 결함으로 지적된 바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정부가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도 줄어들 거라고 선전했지만, 고용허가제 아래서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는 전혀 줄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는 이미 실패했다는 것이다.





본집회에 앞서 집회 참가자들은 손도장으로 'STOP CRACK DOWN(단속중단)' 배너 만들기와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철창감옥”반대한다!’는 요구를 알리기 위해 모래주머니로 철창 모형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집회 참가대오는 서울역에서 출발해 남대문을 지나 명동 성당까지 행진한 후 정리집회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