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세상 편집국에서는 추석을 맞아 여자들 얘기를 해보기로 했다. 다양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참세상 편집국 성원들이 조용히 수다를 떨던 중 낸 아이디어 였다. 그러나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얘기를 공개적으로 한다는 것이 조금은 쑥스럽거나 다들 사는 모양인데 특별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기 마련.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그녀들은 자신을 조금 숨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가명으로 글이 나간다는 점, 독자들에게 양해를 구한다.-편집자 주
혼기 찬 비혼녀 이모할머니 공략기
“니네 아빠 있냐??”
너무 깜찍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벌써부터 몇몇 이들(이꽃맘, 최인희 등등등)의 질타와 분노가 들리는 듯 하지만 좀 과하게 표현해 잡아먹고 싶을 정도 였거나 아니면 확~깨물어 버리고 싶을 정도 였던 듯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반가운 ‘우리우리 명절’에 그토록 이뻐해주시는 이모할아버지와의 만남을 그리도 끔찍하게 기억하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그렇다. 이뻐하는 사람이 그럴 수 없다. 볼을 잡아 뜯고 품안에만 두려하는 것까지는 그럭저럭 참고 넘어가겠지만 예고 없는 뽀뽀세례는 악몽 아니 그건 테러다 테러! 유치원생에게도 그들만의 세계가 있는 법, 거기다 이모할아버지가 이상형도 아니었겠다.
‘아주 날 잡아먹겠네’, ‘두 번만 이뻐했다간...'
그 집 현관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쭈뼛대며 마중나온 열 댓살 위인 이모에게 “니네 아빠 있냐??”라고 물은 것은 지금와 고백하건대 절대 복종의 이모할아버지와의 대면을 앞둔 마지막 몸부림과도 같은 것이었다. 부딪칠 수 없다면 가능한 한 피하고 보는 방법, 몇 차례 써먹어 봤지만, 우선 기본적으로 50대 이상 친척분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어김 없이 이모할아버지는 계셨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만의 표현방식의 ‘이쁨’을 받아야 했다.
그리고 20여년 후. “니네 엄마 있냐??”.....라고 묻지는 못하지만, 그와 유사한 위기와 공포를 최근 느끼기 시작했다. 비단 명절뿐이 아니다. 몇 가지 시추에이션을 보자면 이렇다.
띠링띠링
“여보세요”
“누구냐?”
‘윽...잘 못 걸렸다’ “XX요”
“돈 마~는 남자만나야 헌다. 다른 거 암~것도 소용 없어! 성격 좋아 어따 써먹을래!”
대뜸 날라오는 맥락없는 ‘돈 마~는 남자’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그녀는 이제 갓! 20대 중반을 넘어(왜 가슴 한쪽이 찔려오는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혼기에 들어선 ‘여자’를 가만두고볼 위인이 못된다.
이름하야 이모할머니, 그녀는 마흔된 첫째 딸과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서른 여섯 셋째 딸 등 혼기를 놓친 두 딸과 돈 못버는 남편에 대한 회한을 푸는지 “돈 많은 부잣집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강변한다. 아참! 그 뒤에는 꼭 “너는!”라는 말이 붙어있다. 아마 옆에서 결혼 안한 혹은 못한 두 이모 중 한 명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만나기만 하면 안되고 결혼까지 골인해야 한다.
나는 이제 시작인데 반해 얼마전 마감했거나, 여전히 진행 중인 몇몇 이들은 이모할머니와의 기싸움에서 대체로 실패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3년 전 서른 살 한창(?) 나이에 결혼해 현재 육아 중인 언니나, 현재 7세와 3세의 딸을 두고 있는 둘 째 이모는 대략 피하는 방식을 택했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만 평생 안 볼 작정이 아니라면 두고두고 노여움만 사는 방식이다. 한편 이른바 ‘노처녀’인 두 이모는 “아무한테나 확~시집가버린다”라고 위협하다가 맞거나 “나 결혼할 생각 없어”라며 싸움을 걸다가 또 매 한대를 더 벌거나 “이제 좀 그만해”라고 단념을 유도했지만 결국 토라진 이모할머니를 달래야 했다.
이 순간을 대비해 관찰해온 결과 이들의 실패 원인을 두 가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항상 같은 레파토리, 그러나 늘 다른 대응방식이 문제. 이모할머니의 지구력이 그들의 인내심 보다 강했다. 두 번째, 그녀들은 이모할머니를 관심의 대상으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올 추석 이모할머니 공략기! 첫 번째, 자동응답시스템 구축. 할머니의 늘 같은 레파토리에 늘 같은 대답으로 응수하기. 문제는 초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매 년 같은 마음가짐을 스스로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뒷 말이 적다는 장점이 있다.
두 번째, 근황 묻기로 화제 전환. 그러나 할머니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줄 수 있는 자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들어줄 생각도 없으면서 화제 전환 한답시고 근황이며 안부를 묻는 순간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을 면키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