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살리기'는 '비정규직 살리기'가 아니다"

[기고] 35일째 고공농성 중인 박현상 GM대우비정규직지회 조합원

GM대우의 비정규직노조에 대한 폭력적인 탄압을 규탄하고 노조 가입을 이유로 부당하게 해고된 조합원의 전원복직을 요구하며 교통CCTV탑에서 고공농성을 시작한지 30일이 지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한겨울 30M 상공에서 얼어 죽든지 말든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와 인수위는 경제성장을 통해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만을 반복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 과제라며 올해 경제성장률 6%를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한국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고, 경제성장만 하면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되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한국 경제는 수년간 4%대 후반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7년도만 하더라도 한국 경제는 4.9%의 성장률을 기록하였고, 이는 1.2%를 기록한 미국의 4배에 달한다. 굳이 미국과 비교하지 않더라도 4%대 후반의 경제성장률은 경제학적으로 한국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같이 경제가 어렵다고들 한다. 경제가 6, 7%가 아니라 4, 5%밖에 성장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다. 안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노동자 서민이 경제가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바로 ‘사회 양극화’에 있다.

IMF 이후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은 1998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사상 최대의 수익을 갱신하고 있지만, 이러한 대기업들의 눈부신 성장의 혜택은 ‘삼성특검’에서 드러나듯이 재벌들의 비밀금고를 채우거나 이 비밀금고를 유지하는 떡값으로만 사용된 듯 하다. 그 사이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성장의 혜택을 누리지 못한 채 오히려 ‘88만원 세대’가 되어 버렸다. (세계 일류 기업이라는 GM대우자동차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본급 역시도 88만원 전후다. 주야맞교대 근무에 매일 2시간 잔업, 토·일 특근을 해야지만 그나마 입에 풀칠은 하고 살 수 있다.) ‘이천화재사고’는 먹고 살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고 일할 수밖에 없는 ‘88만원 세대’의 참담한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삼성특검’과 ‘이천화재사고’는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며, “경제가 어렵다”는 말은 사회 양극화의 부정확한 표현일 뿐이다.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성장의 결실을 분배하는 사회적 구조가 심각한 문제다. 아무리 7%, 10% 경제성장을 해도 이런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코 ‘경제’는 좋아질 수가 없다.

경제적 양극화는 법의 영역에서도 그 양극화가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삼성의 탈세, 편법, 불법에 대한 검찰, 법원, 국세청 등의 비호가 있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다. 어디 삼성뿐이겠는가! 현대 정몽구 회장과 한화 김승연 회장에 대한 솜방방이 처벌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법적 비호가 삼성만의 특권이 아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게 해준다. (인천 지역에서는 GM대우가 그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에 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최저임금법, 4대 사회보험법 등을 적용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허다하다. 특히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노동3권과 노동조합 활동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해고와 동의어다. ‘노동조합 인정’이 대다수 비정규직노조의 요구사항이라는 점은 이를 잘 보여준다. 정상적인 노조 활동이 보장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공농성 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활동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다. 하기에 법과 원칙에 따라 처벌하겠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말이 노동자만을 향하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이런 현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차원에서의 해결책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법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3권과 노동조합 활동이 우선 보장되어야 한다. 노조를 설립하고 활동하는 것은 헌법에도 보장되어 있는 기본권일 뿐만 아니라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자기 노력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 문제라고 해서 개별 기업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대기업 원청사의 경우 그 책임이 막중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청업체의 문제라고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은 대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있어 잘못이다. 하청업체들이 원청의 지시 없이는 생산과 노무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은 상식이고, 원청 사용자성이 인정되고 있는 판결이 속속 나오고 있는 추세인데도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발뺌하는 것은 대기업이 보여줄 자세가 아니지 않은가!

국세청과 검찰에 바칠 떡값과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사용되는 비용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데 사용된다면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사라지고도 남을 일이다. (GM대우는 고공농성 직후 시설보호라는 이유로 150여명의 용역깡패들을 공장 안에 상주시키고 있는데, 대략 매일 1,5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세계적 기업이라는 타이틀에 맞게 GM대우 역시 비정규직 노동자들 문제 해결을 위해 책임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고공농성 20일째이던 지난 1월 15일, 초등학교 동창인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과 LA에서 10년째 호텔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친구와의 전화통화 내용 중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한국에 돌아오고 싶어도 경력 인정은커녕 6개월짜리 비정규직으로 취업해야 하기 때문에 엄두가 안난다는 하소연이었고, 다른 하나는 고공농성 중이라는 나의 근황을 듣고 “한국은 아직도 그러냐”라는 한심스럽다는 말투였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심각한 비정규직 문제는 10년째 한국 사회의 밖에서 살아온 그 친구에게 아예 한국 국적을 포기하라고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말

박현상 조합원은 GM대우자동차비정규직지회 조직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 27일부터 부평구청역 CCTV탑에서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 글은 <프레시안>과 동시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