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위해 기득권 버리자"

[인터뷰] 민주노총의 격을 고민하는 김영훈 위원장

뭐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비정규직, 복수노조, 전임자임금지급금지 문제에, 내부적으로는 갈라질대로 갈라진 민주노총을 다시 묶어 세워야 한다. 공무원 정치참여 문제로 정부와 진통을 겪고 있는 터에 선거방침문제도 풀어야 할 큰 숙제다. 이제 6기를 맞은 민주노총은 창립초기보다도 더 험난한 문제들이 놓여 있다.

참세상은 지난 10일 오후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김영훈 위원장과 만났다. 1월28일 당선되고 불과 2주일 남짓 지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의지가 넘치면서도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김영훈 위원장은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의 격'을 주로 고민했다.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의 전략을 세우고, 통합지도력을 발휘하기 위해 진정성을 담는 소통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인터뷰의 큰 관심사는 사무총국 인선과 통합지도력 구축을 위한 구조,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참여 등의 현안과 그가 그리는 민주노총 설계도였다.

김영훈 위원장의 답변엔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었다. 다만 큰 그림 속에 원칙이 있었다. 김 위원장이 밝힌 그림 속 민주노총은 총연맹다운 민주노총이었다. 그렇기에 총연맹의 사무총국 성원의 역할도 단순한 인력배치가 아닌 시스템의 변화 속에서 고민했다. 정파들과의 직접적인 소통도 고민하고 있었다.


특히 김영훈 위원장은 MB 정권 아래에 사는 국민에게 민주노총이 어떻게 친근하게 다가갈지를 많이 고민했다. 정권엔 강경파지만 국민에겐 온건파가 되는 민주노총을 꿈 꿨다. 노사정 협상을 놓고 김영훈 위원장은 대정부 협상이 파업보다 더 어렵다고 말했다. 협상을 하려면 힘과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이날 인터뷰는 1시간 반 여 동안 진행됐다.

[인터뷰 전문]

- 당선 되고 2주가 지났는데요. 현장에 있을 때와 총연맹에 출근하면서 2주간 총연맹을 바라보는 차이랄까요. 어떤 것이 달라졌나요?

현장에 있을 땐 왜 저럴까, 왜 저거밖에 못 할까 생각했다. 저는 사무총국성원을 잘 모른다. 2주간 성원들이 가진 잠재력을 50%라도 발휘 할 수 있는 근무여건이 됐나를 주로 고민했다. 선거에 출마하신 모든 분이 사무총국 혁신을 얘기했다. 저는 인력 쇄신으로 시스템 혁신을 준비 중이다. 시스템 정비에 가속을 낼 것이다.

- 전 임성규 위원장은 사회연대전략 추진이 안 된 이유 중 하나로 정파들이 도움을 주지 않은 것도 있었지만 사무총국 내부에서 사실상 거부하는 흐름이 있다고 참세상과 인터뷰에서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무총국에 대해 어떻게 진단하시는가?

민주노총 사무총국의 역할은 노동운동의 전략을 만들어야 하고, 행정력을 통한 관장력이 담보돼야 한다. 또 지도부에 대한 보좌기능을 통한 지도력 구축 역할을 해야 한다.

우선 가장 먼저 할 일은 총연맹의 관장력을 키우는 것이다. 행정적으로는 문서와 규정, 규칙을 재점검해야 한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은 산별과 가맹조직이 투쟁하면 엄호하고 정치전선을 강화해야한다. 이전에 가맹조직에 조직 내부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총연맹이 잘 관장했는지는 의문이다. IT연맹이나 서울대 병원, 화섬 조직 내 문제 등을 총연맹이 지도했어야 한다. 규약의 원칙이 무너지면서 적절한 방침을 내지 못했다. 그러면서 정파문제가 플러스 됐다. 단단한 행정력이 구축됐다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 시일 안에 행정력을 복원할 것이다. 민주노총은 집권의 꿈을 꾸는 조직인데 행정을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본을 강화해야 한다.

사무총국 선배 그룹은 전략 고민, 젊은 성원은 대중을 보고 큰 꿈과 상상력을

두 번째는 인적 쇄신 문제다. 총국이 약간 양극화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선배들은 전노협 시절부터 노동운동에 평생 몸바쳐 온 분들이다. 그분들에게 지위에 맞는 역할을 드렸나 싶다. 새로 채용된 분들은 현장성은 떨어지고 개인 실무력도 많지 않다. 선배 그룹에 대해선 국가원로에 걸맞은 역할을 드리고, 보다 큰 그림을 그리도록 하고 싶다. 현안에 묻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데 전체 노동운동의 전략을 고민하게 하고 싶다.

젊은 성원들엔 많은 상상력과 도발, 전투력을 키우게 하고 싶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한다. 위원장에게 깨지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대중을 보고 큰 꿈을 꿨으면 좋겠다. 여유를 가지고 실력을 키워가도록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총국 성원이 실력을 발휘하도록 혁신의 초점를 맞추겠다.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운동의 지휘부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머지않아 혁신이 가시화할 것이다.

- 첫 사무총국회의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두 번 했다. 바빠서 30분 정도 참가했다. 어느 때 보다 의지가 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직은 제가 뭔 짓을 할까 의구심을 있을 줄 아는데 점점 눈높이를 맞춰 나갈 것이다. 블로그를 적극 활용하고 내밀한 얘기 들도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총국의 소통력을 높여 나갈 것이다.

-사무총국 운영은 어떻게 하실 예정인가?

개인적으로 회의를 길게 하는 것에는 문제의식이 있다. 회의가 길어지는 것은 준비가 덜 된 것이다. 보고사항은 미리 공유하고 점검할 것이다. 구두 보고는 안 받는다. 안건토의는 주문사항과 취지, 근거를 명확히 하고 운동의 대의 등으로 판단하면 된다. 진공적으로, 정확한 판단 속에 실천가능토록하면 된다. 회의하다 시간만 가고, 그러다 편이 갈라지는 회의는 안 할 것이다. 상대는 그렇게 움직인다. 상대는 국가를 움직이면서도 우리보다 회의를 짧게 한다. 내셔널센터답게 움직여야 한다.

- 사무총국 인사의 시기나 구상을 알려 주실 수 있습니까?

인사는 규약에 명시된 대로 사무총장의 재량에 따라 할 것이다. 사무총장은 위원장에 버금가는 역할을 해야 한다. 총국 면담과 토론을 토대로 인사를 할 것이다. 대원칙은 안정과 혁신의 효과를 어떻게 낼 것 인가다.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안정과 변화 모두 어떻게 바꿀지 고민이다.

총국 첫 회의 때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나 먼저 설득하라고 했다. 그것은 맞장을 뜨자는 것이 아니다. 저를 설득 시키면 내가 나서 산별과 지역을 설득하겠다는 것이다. 위원장을 막힌 곳을 풀고 돌파하는 데 활용하라는 것이다. 철도 위원장을 할 때 장관을 만나면 정부는 실무자 설득부터 해달라 하더라. 저도 정부에 우리 실·국장 부터 설득하라 했었다. 그만큼 총국에 권한을 줄 것이다.

- 선거 과정에 정파 논란이 많았습니다. 그에 따른 통합지도력 구축의 과제가 있는데 총국 인사에 어떻게 반영할 생각이신지?

정파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새 세상을 꿈꾸는 분들이 정파가 없을 수 있나? 그것은 노동자 정치운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문제는 분파화 됐고 패권화 됐다. 정파는 마르지 않는 지혜의 샘이 되어야 한다. 간부육성의 부대고 헌신성과 열정이 식지 않도록 조직을 채찍질해야 한다. 같이 혁신할 것을 호소할 것이다. 진정한 통합 지도력은 몇 명을 민주노총에 모신다고 지도력이 구축될 것이라고 생각 안 한다. 실천사업에서 그분들의 뜻을 녹여나가도록 하고, 의견이 사업에 반영되는 통로는 여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문제가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만날 것이다. 형식은 다양할 것이다. 오해가 있다면 제정파와 토론도 하고 다양한 방식을 모색할 것이다. 문제는 대화의 진정성이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 이전 소통구조는 사실 그런 과정이 없었는데 가능하다고 보시나?

산별대표자나 사무총국도 대부분이 정파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그분들이 대중조직에 몸을 담는 순간 정파와 대중조직의 이해가 배치될 수 있다. 이때는 대중의 이해에 우선해야 한다. 때로는 '반 조직적이다, 당파성이 없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물론 ‘투쟁’이나 ‘원칙'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가 있다.

국민에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 내셔널센터로서의 위상을 많이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에 걸맞은 전략이 있는지요? 예를 들면 임성규 위원장은 사회연대전략을 내세웠습니다. 현 지도부에 그런 수준의 그림이 있다면 뭔가요?

평등사회를 만들자던 전노협의 구호가 얼마나 과학적인지 지금 알 수 있다. 20년 전 그것은 사회전진의 슬로건이었다. 그러나 담론은 있었으나 힘이 없었다. 민주노총이 얘기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은 보수여당에서 이미 들고 나왔다. 슬로건이 구체화 되면서 이론과 과학성은 입증됐다. 그러나 우리 힘이 있었나 고민된다. 그렇다면 김영훈은 뭐냐? 선거 때 얘기한 ‘승리하는 민주노총’은 우리 민주노총 내부용이다. 협상에서 단련된 간부가 승리의 역사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우선은 MB에 지친 민중에 던질 메시지를 고민하고 있다. ‘노동이 존중 받아야 민주주의가 앞당겨 진다’, ‘노동기본권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그런 메시지를 던지고 싶다. 비정규직, 미조직, 영세정규직 등 민주노총 울타리 밖에 있는 분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다. 예컨대 "우리 민주노총이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라는 것이다. 한 달 후쯤 구체적인 비전으로 제시할 것이다.

제일 쉬운 일이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었다


- 근로시간면제심의위 참여 여부는 어떻게 결정 하실 건가?

날치기 당사자들의 명분은 현행대로 가면 혼란이 온다는 것이었지만 타임오프는 건전한 노사관계 일 수 없다. 더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4-5년 뒤에 대법 판례 나오면 혼란을 누가 책임 질 것인가? 법이 가져야할 예측 능력도 못 가졌다. 근본적인 재논의가 불가피 하다. 말은 타임오프지만 인원제한도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유니온 오프라고 솔직히 얘기해야 한다. 근심위 참여 근심스럽다. 산별대표자들과 숙고할 것이다.

철도에서 겪은 제 경험으로는 대정부 교섭이 가장 어려웠다. 제일 쉬운 일이 파업에 돌입하는 것이다. 정부와 교섭에 들어 갈 때 죽을 각오로 하라했다. 교섭에는 전문성과 내공이 필요하다. 그런 것이 없으면 위원장 말 한마디에 이상한 결론이 난다. 대정부교섭은 외교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MB정부와의 대정부 교섭이다. 저쪽의 잘못된 시그널이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 교섭에 나갈 때는 철저한 준비와 내공에 물리력까지 갖춘 상태에서 나가야 한다.

- 전 집행부가 제시한 4월 총파업이나 올해 투쟁 전망은 어떻게 보시나?

어렵지만 투쟁은 준비해 나갈 것이다. 계획된 대로 차질 없이 준비하고 풍부화 시킬 것이다. 사회적인 의제로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가에 있다. 실질적인 저항운동과 노동기본권이 민주주의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 나갈 것이다.

제 당선은 철도의 모범을 대의원들이 동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도는 한국노총의 1번지에서 칼침을 맞으며 민주노총으로 왔다. 공무원의 고통을 안다. 민주노총으로 올 때도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이 있었다. 철도는 사회적 의제로 파업을 해 왔다.

정파문제도 철도사례를 통해 못할 것이 없다. 불꽃같이 싸우다 사라진 대공장노조가 많지만 철도는 2만이 넘는 조직인데도 단일후보를 낸 경험이 있다. 그 힘으로 MB전선의 최전선에 섰다. 사회적 의제를 앞세운 투쟁을 주저하지 않는 민주노총을 만들 것이다. 이 상태로 철도는 3차 파업이 불가피하다. 현장은 준비되어 있다. 단순히 친정을 돕는 차원이 아니라 민주노조 운동을 살리는 다양한 방식의 투쟁을 조직할 것이다.

- 민주노총은 노사정 합의기구 참가를 놓고 많은 내홍을 겪었습니다. 작년에도 노사정 6자 협의체 등 협상 테이블에 앉았는데요. 노사정 합의기구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가?

제가 교섭을 바라보는 입장의 연장이다. 노사정 논의의 한 축은 한국노총이다.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 정책연합을 한 상태다. 그들의 행보를 비난하거나 책임돌리는데 한국노총을 몰랐나? 원래 자기 길을 간 것이다. 문제는 우리문제다. 정말 힘을 가지고 배신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원래 자기 길을 간 것이다. 힘은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실제 수가 틀리면 일격을 가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그런 준비를 하고 전술적으로 그때마다 판단할 것이다.

- 성폭력 사건은 끝내 해결하지 못하고 현 지도부로 공이 넘어왔습니다.

안타까운 문제다. 피해자 입장에선 상처에 만신창이가 된 고통이다. 대의원대회에서 수차례 안건을 재론했다. 그 자체가 2, 3차 가해를 원치 않게 했다. 그분의 입장에서 보면 원망이 클 수밖에 없다. 보고서 채택 중심의 사업이 아닌 피해자가 어떤 고통을 당하고, 어떤 얘기를 하는지 듣고 고통을 나누는 것으로부터 시작할 것이다.

- 조금 개인적인 질문들로 가겠습니다. 우선 위원장께서는 어떤 정파에 속하셨나?

특정 정파에 소속되어 본 적은 없다. 철도 노민추(노조민주화추진위) 당시에 원칙이 있었다. 철도에는 난다긴다하는 분들이 계셨다. 집행부들이 다짐한 것이 파업 한 번 하고 서로 멀어지는 전철을 밟지말자 했다. 민주노조는 언제나 투쟁 후에 민주파의 분열이 있었다. ‘하지 말아야 할 투쟁이었다’와 ‘더 싸워야 했다’는 쟁점으로 사분오열되고 정권의 작업에 추풍낙엽이 됐다. 반석에 올리기 전까지 정파의 이해보다 대중이해에 앞장서 반석에 올리자고 했다.

예를 들면 집행부 경조사 모임이 있다. 몇 대 집행부 모임 이런 계모임이 정파가 된다. 그것도 부정했다. 끝나면 흩어지고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무정파로 남는다.

- 당선 되자 어느 언론은 강경파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은 온건파라고 했고요. 자신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가?.

동아가 정론 직필해서 저를 강경파라 했다.(웃음) 언론노조 대의원 대회에 가서 온건파로 써줘서 고맙다고 했다. 온건하고 싶다. 내용도 없이 밀어붙이는 MB에 지친국민에게 친근한 벗으로 다가가고 싶다. 당장 대원칙은 못 세워도 "저놈들 보는 낙으로 산다"는 말을 듣고 싶다. 국민에게 더 친근하고 가까이 가는 넓은 행보를 하겠다. 다만, 상대(MB정권)에 대해선 온건할 수 없다. 저는 온건파나 국민파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없다.

- 언론이 온건파라 하는 의도가 뭐라고 보시는가?

상대적으로 허영구 후보에 비해 교섭을 중시한다든지 그 차원에서 온건파라고 부른 것 같다. 진보적인 언론들이 더 온건화한 의도도 느낀다. 잘 쓰셨다고 했다.

- 철도 위원장직 이후 상급단체에 있다 다시 기관사로 복귀하셨다.

2007년 산별위원장을 한 후 복직판결을 받았다. 그때 뒤도 안 보고 현장 기관사로 복직했다. 주변에서 현장 복귀보다는 다른 일을 하라는 제안도 많이 했지만 민주노조를 안으로 강화하기 위해 2년 6개월 동안 기관사 생활을 다시 했다. 그러면서 '꿈꾸는 기관사'라는 제 블로그도 운영했다.

- 기관사로 다시 현장에 복귀했을 때 어떠셨나?

처음 조합원들은 어색해 하기도 했지만 좋아했다. 사측이 당황했다. 옛날 어용노조 때 노조위원장들은 철도 자회사를 꿰차고 나갔던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2-3개 월 뒤 조합원들과 자연스레 섞였다. 처음 운전대를 다시 잡을 때는 무서웠다. 계기판이 눈에 보이지도 않았지만 베테랑 기관사와 파트너를 하며 두려움이 사라졌다.

- 위원장을 맡으신 많은 분들이 현장에 복귀하기 보다는 주로 상급단체 일을 많이 한다. 그런 면에서 기관사로의 복귀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현장의 신뢰를 쌓는 것이었다. 기관사는 공부를 엄청 많이 해야 한다. 엄청난 사람과 물류를 나르는데 자기 업무에 정통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엄청난 자기 관리도 필요하다. 승무가 있으면 전날은 술자리를 피한다. MB가 가짜면허를 속성코스로 주겠다는 것은 기관사를 능멸하는 것이다.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단결은 자신이 가진 힘을 놓아야

- 진보대연합도 넘어야 할 큰 산인데요?

연대연합전술은 고도의 정치행위다. 제가 아는 최고의 정치 행위다. 정당의 핵심이지만 단결만큼 어려운 게 없다. 먼저 자기 힘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그 힘을 놓아야 한다. 나를 중심으로 단결하라는 것은 패권이다. 힘도 없이 붙으라는 것도 안 맞다. 1차로 우리 내용과 힘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빠른 시간에 모아 올바른 진보대연합과 대통합, 대단결을 이루는데 있어 가진 게 있다면 버리자고 호소하겠다.

- 당장 닥친 이후 일정은?

3월 초 중앙위를 통해 위임받은 두 가지 안건을 처리할 것이다. 노개투 총력투쟁과 정치방침과 상설연대체 문제를 확정 짓고 집행에 들어갈 것이다. 저는 52%로 지지를 받은 위원장임을 3년 간 잊지 않고 가져갈 것이다. 의견을 모을 때는 그런 자세로 모아가겠다. 철도 위원장 때도 52%의 지지를 받았었다. 52%가 작다 많다를 떠나 그에 버금가는 지지하지 않았던 동지들이 있다. 어떻게 모을지 고민 속에 사업계획을 잡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