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이전의 조갑제만큼 훌륭한 기자를 보지 못했다

[낡은책 18]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 (조갑제, 한길사, 1987년 2월, 358쪽)

<해방 전후사의 인식>은 나의 대학시절을 온전히 지배했다. 그 긴 터널을 슬기롭게 빠져나오는 건 쉽지 않다. 폭력적으로 극복하다보면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같은 뉴라이트로 가는 지름길에 이른다. ‘해전사’는 한길사가 만든 역작이다. 비슷한 시기 조갑제는 역시 한길사를 통해 이 책 <고문과 조작의 기술자들>을 썼다.

이 책은 ‘기자 조갑제의 현대사 추적 2탄, 고문에 의한 인간파멸과정의 실증적 연구’란 부제가 붙어있다. 20여 년 전 시커먼 표지의 이 책을 읽은 뒤 소름끼쳤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일파 연구의 독보적 존재였던 고(故) 임종국 선생도 친일경찰 관련 기록은 이 책의 1장에 해당하는 ‘고문과 조작의 뿌리’에서 인용한다.

조갑제는 이 책 1장 ‘고문과 조작의 뿌리’에서 “고문은 정권의 야만성을 드러내는 구조적 폭력”이라고 전제한 뒤 일제 고등계 형사, 헌병출신들의 고문인맥에 대해 추적하고, 2장부터는 고문과 조작이 인간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을 추적했다.

1장 ‘고문과 조작의 뿌리’는 해방 당시 조선총독부에 소속된 조선인 경찰 가운데 요즘 계급으로 파출소장 이상의 간부급 경찰의 숫자를 모두 파악해 소개한다. 그들의 해방 전후 행적을 소상히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동백림 간첩단 조작사건의 고문 피해자 천상병 시인과 술친구였던 수필가 전혜린의 아버지 전봉덕이 친일 경찰 관료중 핵심이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지금도 제헌절이면 조선일보에 시론을 싣는 보수적 헌법학자 김철수가 전혜린의 남편이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전봉덕은 일제 말기 의주경찰서 보안과장을 지냈다. 전혜린도 바로 그 의주에서 태어났다. 당시 (신)의주가 어떤 곳인가. 저 강만 건너면 독립운동기지로 직행할 수 있는 압록강 하구다. 독립운동을 위해 탈출을 꿈꾸는 조선청년의 마지막 길목을 지키는 곳이 의주경찰서였다. 그 경찰서 보안과장은 말해 무엇하리.

전봉덕은 해방 이후 변호사로, 법학자로 변신해 전두환 정권의 국보위에도 원로로 참여했던 인물이다. 이 사실은 전혜린의 감성적 수필을 통해 문학청년을 꿈꾸던 나의 어리석은 10대를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조갑제는 일제 고등경찰·헌병 출신자들의 해방 후 변신과정에 대해 “친일 경찰은 해방 직후 충견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것만이 생존의 유일한 방법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끊임없이 정치사건을 조작해갔다. 독립투사들을 고문한 손으로 민주투사들을 고문한 것이다. 4.19와 5.16은 8.15때와 마찬가지로 일제 경찰들을 단죄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유산을 이어받았다. 이런 변신 과정을 통해서 그들은 이 땅에 가치관의 전도, 고문, 용공조작, 그리고 교묘한 변명의 논리를 확산시킴으로써 사회정의를 황폐화시키고 관·민간에 불신감을 조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기록했다.

100여 쪽에 걸쳐 작성한 1장만 있었다면 조갑제는 임종국 선생이나 여느 연구자 정도에 그쳤을 것이다. 그러나 조갑제는 여기서 머물지 않고 고문 피해자들의 뒷이야기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 당시 희대의 살인마로 지탄 받았던 살인사건 피의자들의 억울한 사연을 파헤쳤다. 이들이 고문에 의해 조작된 범인이라는 물증을 집요하게 제시한다. 김기철, 고숙종 사건을 다룬 2장 ‘김기철은 왜 요절했나’와 3장 ‘고숙종씨의 결백증명서’에 이어 경주 당구장 사건 등을 경찰과 다른 시선에서 뒤집는다.

중정과 안기부에 3번 끌려갔던 조갑제

과연 당대 최고의 탐사보도 기자의 진면모를 드러낸다. 나는 적어도 아직까지는 1989년 이전의 조갑제만큼 훌륭한 기자를 보지 못했다. 기자 생활하면서 중정과 안기부에 3번 끌려간 사람이 있었던가. 김중배, 최일남은 물론 정연주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신 미국에서 주는 돈으로 하버드 연수나 다녔다.

조갑제는 머리말의 끝을 “고문자는 당대에 처단되는 사회를 이루어야 하고, 그런데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해서 서둘러 이 책을 만든 것”(6쪽)이라고 엄숙히 선언했다. 조갑제는 이 책 9쪽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승만 독재정권 아래서 일제 경찰 출신들, 그중에서도 특히 고등계 형사 출신들은 정권의 3대 파수꾼인 경찰, 특무대, 헌병의 중추부를 장악, 폭력배들을 외곽집단으로 이용하면서 권력에 충성을 다하였다.”

적어도 1987년 조갑제의 머리 속에 이승만은 ‘독재정권’이다. 그러던 조갑제는 2007년 7월 한국교육방송(EBS)의 ‘시대의 초상’이란 프로그램에 나와 “이승만을 국군을 만든 건국의 아버지”라고 말했다.

도대체 누가, 무엇이, 어떻게 조갑제를 오늘날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지 나는 지금도 의문이다. 적어도 1989년 이전의 조갑제와 1989년 이후의 조갑제는 동면의 양면처럼 확연히 다르다. 조갑제가 이 책 5쪽에 쓴 글을 읽고 요즘 젊은 독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대로 소개한다.

오늘날 고문은 개인적 폭력이 아니라 구조적 폭력이다. 고문은 정권의 야만성과 국민의 용기가 어떤 눈금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지표다. 고문은 국민과 정부의 역학관계가 뒤바뀌지 않을 때는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민주화가 안 된 정권 아래에서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때립니까’라는 (경찰의) 말을 믿고 고문이 없어지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은 한강 물이 여의도 쪽에서 팔당 쪽으로 흐르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

“고문하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해야 한다. 여기엔 쓸데없는 온정주의가 끼여선 안 된다. 친일파를 온정으로 대한 결과는 친일파로부터 국민이 온정을 구걸해야 하는 지경으로 나타났지 않았는가. 고문하는 자, 고문을 시키는 자들의 가슴에 여론의 화살을 좀 더 깊숙이 꽂아야만 뭔가 달라질 것이다. 고문하는 자들이 제도란 방패 뒤로 언제든지 숨어 버릴 자신이 있는 사회에서는 고문은 근절될 수가 없다. 그런 방패를 걷어내고 고문자들을 사냥하려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야 뭔가 달라질 것이다. 대법원 재판부는 학생을 불법 감금한 경찰관을, 권모 양을 신문한 문귀동 형사의 가혹행위를 인정한 뒤에도 “국가에 공이 크므로 불기소함이 가하다”는 판단을 했다. 이 판사들은 경찰관만이 국가에 공을 세울 수 있고, 자기 직분에 충실한 보통사람들은 국가에 아무 기여를 할 수 없는 이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런 판사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