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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9세가 된 노동자가 있었다. 그는 중학교 중퇴 후 생계를 위해 부산, 서울 가리지 않고 전국을 돌며 운전대를 놓은 적이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덤프트럭 한 대를 장만하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올해 4월 그 꿈을 이뤘다.
하지만 그의 꿈이었던 덤프트럭이 목줄을 죄어 왔다. 그의 수입으로는 덤프트럭 빚은 물론 방세조차 내기 어려웠다. 그가 일하던 영종도는 전국에서 가장 낮은 운임료인 25만 원을 주었고 그나마도 어음이었다. 갑자기 폭등한 경유세와 표준 임대차계약서조차 작성되지 않은 건설현장이 덤프트럭 할부금을 눈덩이처럼 불려버린 것이다. 파업을 해도 건설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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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복을 입은 건설노조 조합원의 뒷편 논길이 故 김상만 조합원이 덤프트럭에 목을 매 유명을 달리 한 곳이다. |
결국 그는 자신의 꿈이었던 덤프트럭 적재함에 목을 매고 세상을 원망하며, 돈을 갚지 못한 금융사에게 미안하다며, 건설노동자들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짧은 유서를 남기고 지난 24일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름은 김상만이었다.
30일 故 김상만 노동자가 목을 맨 평택에서 그의 노동자 장례가 진행됐다. 그의 유족은 그의 친동생과 친동생의 가족뿐이었다. 故 김상만 노동자의 영정 앞에 그의 동생이 흐느낄 뿐이었다.
노제에 참석한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조합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추모사를 하는 노조 간부들의 어깨는 쳐져 있었다. 강원규 건설노조 기계분과 위원장은 “죄송합니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남궁현 건설연맹 위원장은 “왜 몹쓸 길을 가야했냐”며 “너무 안타까워 붙잡고 싶지만 손을 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백석근 건설노조 위원장은 노제를 마치고 끝내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렇게 한 노동자가 죽은 지 일주일 만에 치러진 노제가 끝이 났다.
그리고 故 김상만 노동자의 노제가 열린 다음 날인 7월 1일, 건설노조 건설기계분과 파업 지부투쟁본부회의 참석을 위해 이동하다 교각을 들이받고 운명한 故 김지헌 노동자의 노제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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