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문제에 발목 잡힌 협상, 패권극복은 어디로

“민주노총이 균형추 역할 해야”...독자파 전국위 부결 뜻 밝히기도

  6월 1일 국회에서 연석회의 합의를 공개하고 진보양당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악수하고 있다.
6월 1일 새벽 진통 속에 어렵게 마련한 ‘진보대통합과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연석회의(연석회의)’ 합의문을 놓고 진보신당 내에선 강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연석회의 합의문 논의 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올라 있던 북한 문제에 대한 합의 문구를 놓고 진보신당 당원들의 반응은 매우 격하다. 당장은 북한 관련 문구가 진보신당 당원들 사이에 이번 합의안의 주요 반대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합의문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반발요소가 있다. 그중에서도 ‘당 운영 방안’은 연석회의 논의 과정에서는 주요 쟁점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양당 의결 기구에서 통합이 결정 된 후 진보신당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당 운영 방안에서 진보신당이 강하게 요구했던 중앙당과 지역당부의 공동운영, 공동집행부 구성 등을 담은 ‘부속합의문2’가 아예 폐기됐다.

연석회의는 이 부분을 “민주적인 당 운영을 위해 패권주의와 분파주의를 극복하고 통일단결의 관점에서 다수가 소수를 배려하고, 다수의 공직 및 당직후보를 선출하는 선거는 1인 1표제, 일정시기까지 공동대표제 등 당 조직의 공동운영, 합의제 존중의 원칙 등에 따라 당을 운영한다. 이와 같은 정신에 입각하여 당 운영의 구체적인 방안은 추후 합의를 통해 ‘부속합의서2’에 담아낸다”고 합의했다.

당 운영 방안은 당 통합 협상의 실질적인 문제로, 31일 협상 막바지에는 진보신당이 요구한 ‘지역당부 공동 운영’ 문구를 놓고 민주노동당이 급제동을 걸기도 한 문제다. 진보신당은 애초 ‘부속합의서2’를 통해 일정기간 지역당부까지 공동위원장제와 공동사무처장을 두고 각급 대의기구도 일정시기까지 참여 주체 간에 균등한 참여를 요구했다. 또 총선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공직후보를 어느 일방의 후보 독식을 방지할 것 등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최종합의문은 이런 구체적인 문제를 각 당 통합 결정 이후 수임기구에서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문제는 당 통합이 결정 되면 수임기구에서 실질적으로 진보신당이 요구한 패권을 극복할 당운영 방안 논의를 이끌어 낼 수 있는가다. 적어도 수임기구 논의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민주노동당의 버티기나 패권을 견제할 장치를 문구화하지 못한 것은 이번 진보신당 협상 전술의 허술함을 드러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진보신당이 북한 쟁점에만 집중하다 ‘도로 민노당’을 극복할 당 운영 방안에서 더 큰 협상 실패를 불러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는 민주노동당에서도 일부 동의하는 부분이다.

민주노동당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북한 쟁점에 목소리를 강하게 내면서 진보신당이 그 문제에만 집중하게 된 부분은 있다. 특히 당 운영 방안을 수임기구에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한 것은 민주노동당이 협상에서 많은 것을 얻어낸 부분”이라고 동의했다.

민주노동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협상은 진보신당 독자파의 협상 전술 실패로 봐야 한다”며 “독자파가 오히려 조승수 대표에게 북한 문제에 유연하게 대처하도록 운신의 폭을 넓게 주고 대신 당 운영 방안을 통해 진보신당 지분을 확실히 확보했다면 북한 문제든 패권주의 문제든 다 제어 할 수도 있었다”고 분석했다.

진보신당에서도 이런 우려가 나왔다. 1일 저녁 진보신당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추진위원회(새진추)’ 김윤기, 김준수, 심재옥, 전원배 등 4인의 추진위원이 낸 성명서에는 당 운영 방안 합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대목이 있다. 이들은 “당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명시했던 ‘부속합의서2’ 관련 내용 협의를 최종합의안 이후로 미뤄 실질적인 논의를 어렵게 하게 된 점 또한 문제”라며 “이는 양당 합당을 결정한 이후 당내 패권을 제어할 방안을 논의하자는 것으로, 패권주의 저지를 위한 실질적인 논의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6월 1일 새벽 5시께 연석회의 합의문에 서명하고 난 후 기념 사진

진보신당 관계자 A씨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가 3차 합의 때만 해도 패권문제는 크게 양보하겠다고 강조하면서 수용하는 뉘앙스를 취했다. 그러나 5월 26일 연석회의부터 민노당이 패권주의 용어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고, 대북 문제도 더 강경하게 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진보신당이 대북 문제에 집중하면서 당 운영 방안을 강하게 제기하지 못한 것은 심각하다”고 협상과정을 돌아봤다.

실제 협상 과정을 복기해 보면 민주노동당이 협상 막바지 과정에서 다른 쟁점들을 내세워 진보신당 내부를 흔들고, 숨겨진 핵심 과제에서 이목을 돌리게 하는 효과를 만든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A씨는 “진보신당 내에서도 ‘부속합의서2’에 대한 이견은 있었다. 더 풍부한 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그게 전부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오해의 소지가 있어 폐기하자는 주장이었다”면서도 “그러나 부속합의서를 두는 것을 추후에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명백한 후퇴”라고 강조했다.

진보신당은 지난 5월 29일 전국위원회에서도 북한 문제 관련 협상에 더 주목하는 모습을 보였다. A씨는 “전국위에서도 5월 26일 협상 과정 논의만 하다가 협상 내용을 꼼꼼히 살피지 못했다”며 “연석회의 협상 내용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많아 강한 지적을 안 했고 주로 대북 문제에서 후퇴하지 말라는 메시지만 강조했다. 조 대표가 차라리 이번에 합의를 말았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이번 협상 실패가 독자파의 패착이라기보다 31일 연석회의가 양당 대표 간 2+2 협상으로 주로 운영되면서 당 운영 방안 등에 강한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진보신당 관계자 B씨는 “당 운영 방안은 진보신당의 안을 중심으로 당연히 받고 들어가야 하는 것들인데 조승수 대표가 너무 쉽게 합의해 줬다”며 “31~1일 연석회의가 2+2 비공개 협상으로 가면서 우리도 협상 내용을 제대로 듣지 못했고 의견 개진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양당 실무 비공개 협상에서 실질적인 당 운영 논의가 있긴 했지만 어느 정도의 논의가 있었는지 확인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밝혔다.

전국위원회 부결 움직임도 나타나

현재 진보신당의 독자파나 당 게시판엔 협상안 부결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박용진 진보신당 부대표는 “이번 합의 안은 당대회나 전국위 결의안에 너무 못 미쳐 당원들이 찬성에 선뜻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며 “새 진보정당은 도로 민노당이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합의 안에는 여전히 북한 문제가 있고, 구도도 옛 정파 구도 그대로다. 노선도 민주노총 중심의 대중행동 노선이 그대로다. 이렇게 만드는 진보정당이 한국사회 진보정치의 희망이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진보신당 A씨도 “5월 26일 정도의 합의안이면 모르겠지만 진보신당 내부에서는 이번 합의문에 설득할 여지가 없다. 통합파조차 대놓고 설득하기 쉽지 않은 안”이라고 평가했다.

진보신당 관계자 B씨는 “냉정하게 바라보고 진보신당 전국위에서 이번 합의안을 부결시키기 위해 입장을 모으고 있다”며 “조승수 대표와 노회찬 새진추 위원장이 무리하게 사인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진보신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아직 여러 가지 변수가 있어서 부결될지 통과될지 여부는 가봐야 안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내 통합파의 한 관계자는 “진보신당 내에서 갈수록 당 운영 관련한 합의가 문제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커 부결 입장이 더 강하게 나올 수 있다”면서도 “지금이야 말로 민주노총이 더 강하게 패권주의 문제에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어차피 새 진보정당은 일반 당원을 얼마나 확대해 당내에서 패권의 움직임을 당원의 목소리로 제어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민노당 주류의 패권을 극복하기 위해선 중앙위원이나 대의원을 어떻게 뽑을 것인가가 중요하다”며 “민주노총이 선언한 대로 10만 명이 당원으로 가입하면 주류의 패권이 제어되고 북한 문제도 다 풀 수 있다. 이제는 일반당원 확대 사업이 진짜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