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점휴업 민주노총, 대선방침이 ‘영화보기’?

정치방침 부재, 대선사업 축소...올 대선 문재인 ‘소극적’ 지지?

‘노동자 정치세력화’라는 목표를 내걸어 온 민주노총이 18대 대선을 앞두고 갈 길을 잃었다. 통합진보당 사태로 큰 충격을 받은 뒤, 정치방침의 부재로 방향감각을 상실한 듯하다. 자연스럽게 대선사업도 축소됐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8일, 18대 대선시기 ‘민주노총 조합원 3대 대중운동 지침’을 발표했다. 3대 지침의 내용은 △반드시 투표하기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 투표참여 보장 운동 △좋은 영화보기, 투표참여 SNS 전파 운동이다.

그간 숱하게 외쳐왔던 ‘노동자 정치세력화’나 ‘계급투표’라는 말도 잘 찾아볼 수 없다. 그야말로 민주노총 설립 이래 가장 고요한 대선 시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총, 과거 대선시기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민주노총은 지난 2002년과 2007년, 두 차례의 대선 모두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라는 정치방침에 따라 움직였다. 두 차례의 대선 모두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했으며, 민주노총은 권 후보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쏟았다.

  민주노총은 2007년 10월 단위노조대표자수련회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대선 후보 지지를 밝히고 선거대책본부를 출범시켰다.
[출처: 민주노총]

이에 따라 민주노총은 2002년 대선 당시 △정치실천단 구성 △조합원 1인당 1,000원 모금 △민주노동당 당원확대 사업 전개 등을 제안하며 대대적인 노동자 계급투표 조직에 나섰다.

2007년 역시 상황은 비슷했다. 민주노총은 단위노조 대표자 수련회에서 ‘권영길 지지’ 민주노총 선거대책본부를 출범시켰다. 선대본부장으로는 당시 민주노총 위원장이었던 이석행 전 위원장이, 부본부장으로는 민주노총 임원과 산하 연맹 위원장이, 집행위원장으로는 이용식 사무총장이 포진했다.

또한 대선 전략으로 ‘행복8010전략’을 제시했다. 대선에서 80만 조합원이 10명씩 조직해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정치세력화를 이뤄 집권토대를 구축한다는 비전이었다.

하지만 민주노총의 ‘계급투표 전술’은 실패했고, 대선은 참패했다. 대선 패배 후 민주노동당 내부에는 ‘책임론’이 일었으며 분당이 가시화됐다. 하지만 당시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분당하자는 사람부터 솎아내야 한다”며 당내 정파대결 구도에 압박을 가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서까지 발표해 “탈당은 전 조직의 단결을 해치는 용납할 수 없는 반조직적 행위”라며 “민주노동당을 통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실현한다는 방침은 확고하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현장파 쪽에서는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방침’이 계급적 단결을 저해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배타적 지지방침은 2011년, 통합진보당 창당 직전까지 이어져 왔다.

한편 한국노총의 경우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전폭적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17대 대선에서는 조합원 총투표를 진행해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식 지지했다. 대선 후 1월, 이용득 한국노총 전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정책연대를 했던 만큼 향후 5년도 국가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한국노총 출신들의 공천을 공식 요구했다.

민주노총,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민주당과의 관계

주목할 만한 점은, 민주노총이 ‘노동자정치세력화’를 끊임없이 주장해 오면서도 이른바 ‘자유주의 세력’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출처: 참세상 자료사진]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총은 노무현 후보에 대해 김대중 정권의 후계자이며, 반노동자적 공약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날선 공격을 가했다. 또한 당시 교안자료를 통해 “노동자들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판적 지지를 외치면서 노무현에게로 간다면 우리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그리고 노동자 세상 건설도 머나먼 미래의 일이 되고 말 것”이라고 경계했다.

하지만 2004년, 국회가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에 나서자 민주노총은 ‘탄핵무효화’ 성명을 발표하며 노무현 재신임 운동에 가세했다. 논란이 되자 첫 번째 성명을 철회하고, ‘보수부패정치 청산’이라는 성명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노무현 심판’을 외치던 민주노총은 탄핵무효화와 보수부패척결을 요구하는 ‘범국민행동’에서 노사모 등과 함께 활동하며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명박 정권 들어 민주당과 노동계의 ‘야권연대’는 더욱 가시화됐다. 2011년 초, ‘민중의 힘’ 구성을 놓고 민주당을 포함시킬 것인지가 논란이 됐다. 또한 2012년 4.11 총선에서 민주노총은 사상 처음으로 민주당과 총선 정책협약을 체결했다. 국민참여당과 통합한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비례대표 집중투표 방침을 확정했다.

통합진보당 사태 이후, 민주노총은 대선을 맞아 ‘독자후보’전술을 고민했지만 얼마 못가 폐기했다. 대신 민주노총 전, 현직 임원들의 대선캠프행이 이어졌다. 2007년 당시, 권영길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민주노동당 사수’를 외치던 이석행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 조합원 1천 명의 입당서를 들고 민주당에 입당했다. 같은 시기, 이명박 정권과 함께 할 것이라 약속했던 이용득 위원장 역시 이석행 전 위원장과 문재인 캠프에서 만났다.

2007년, ‘권영길 지지’ 민주노총 선거대책본부 집행위원장이었던 이용식 전 사무총장 등도 안철수 캠프를 거쳐 문재인 캠프로 이동했다. 이밖에도 다수의 전, 현직 임원과 조합원들이 캠프로 이동하거나 문재인 후보의 지지를 선언했다.

이같은 흐름 속에서, 민주노총은 18대 대선에서 역시 민주통합당과의 애매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사실상 ‘정권교체’를 목표로 문재인 후보에 대한 소극적 지지에 나선 듯한 행보다.

실제로 민주노총은 ‘반드시 투표하자’는 지침을 내걸며 “역대 최대의 박빙으로 예상되는 18대 대선, 노동자 투표참여가 승부를 가른다”고 강조했다. 3대 지침을 두고도 ‘진보적 정권교체에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좋은 영화보기’와 인증샷을 통한 ‘SNS전파 운동’ 등의 지침도 같은 맥락에 있다.

민주노총이 말하는 ‘좋은 영화’란 ‘남영동 1985’와 ‘26년’이다. 민주노총은 해당 영화들을 단체로 관람해, 조합원들에게 역사인식을 높이고 투표참여의 필요성을 문화적 방식으로 고취시키겠다는 계획이다. 또한 민주노총은 “조직적 투표참여를 통해 노동대중의 정치의식을 고취시키고 진보적 정권교체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이 3대 지침은 가맹, 산하조직에 전달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