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오래도록 문학과 예술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려는 우리시대의 평범한 시민이자 시와 소설, 영화평론 등에도 관심이 있는 문학도. 세상은 마침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전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낙천주의자
옛일을 생각한다
김규종 
사는 곳이 '개발제한구역'과 맞물려 있어서 그런지 자연과 만날 기회가 많은 편이다. 요즘처럼 비가 잦으면 금호강변에 나가 황톳물로 도도하게 흐르는 물길 바라보면 흐뭇하다. 여기저기 백로며 오리들 떠도는 모습도 한가로워 운치가 더하다. 물론 녀석들이야 혼탁해진 물로 먹잇감 구하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그 녀석들 사정이고.

어젯밤 동네 포도를 걷다가 세 마리 벌레에게 생명을 부여했다. 길을 잃고 헤매던 귀뚜라미가 자동차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어서 다른 길로 인도했다. 살이 통통하게 오른 메뚜기는 정처 없이 야간산책 하고 있길래 조심스레 풀밭으로 날려보냈다. 얼마 더 가노라니 다리 많은 그리마가 무단횡단 하며 이리저리 방황하길래 확실히 길 안내를 해주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옛날 친구들. 한 친구는 국민학교 5학년 때 같은 반이었다. 이름이 김영대였던 것 같다. 그 때는 모두 가난했지만 영대 집은 그 정도가 훨씬 심했다. 밥으로 끼니 잇기도 힘들어 더러는 콩을 튀겨서 밥 대신 먹는 경우도 있었으니 말이다. 짜장면 한 그릇에 30원 할 때 우리는 영대에게 10원을 주고 콩 몇줌 사먹곤 했다. 그이가 중학교에 진학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른 친구는 중학교 1학년 때 만난 이름마저 망각된 이다. 1학년 2학기 땐가 담임 선생이 그이가 더 이상 학교에 나올 수 없게 됐노라고 조회시간에 알리는 것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다방면에 재능 있던 친구였는데,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비를 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그 땐 국민학교만 의무교육이었다. 나는 어린 생각에 '담임 선생님이 학비 내면 안 되나' 하고 생각하였다. 어쨌든 그 친구도 소식 끊긴 후 행방이 묘연하다.

가난으로 인하여 학업에 곤란을 겪거나, 아예 도중하차 하는 경우를 보면서 나는 세상의 불공평에 주먹을 내지르곤 했다. 정말로 잘 사는 친구들도 여럿 있었으니까. 어쨌든 평등한 세상과 인간해방에 대한 열망은 그 때부터 내 머리에 깊이 각인되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세상은 그 때도 없었고, 지금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앞으로도 끝내 오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평등세상을 꿈꾼다.

힘없이 거리로 내몰린 어린 벌레들을 보면서, 그와 같은 처지의 우리 인간살이를 떠올려 본 것이다. 어떤 절대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나와 벌레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멀겠는가. 하여 언제나 생각한다. '먹고사니즘'에 흠뻑 젖어 있는 우리 현주소와 거기서 더 멀리 나아가 자기와 제 식구만 생각하는 우리 시대의 몰염치와 거친 탐욕의 추악한 양상들에 대하여. 경제 제일주의가 초래하는 인간미덕의 완전한 파괴현상들에 대하여.

재벌은 정치권력에 줄을 대서 경제권력의 가족적 영속화를 꾀하고, 정치권력은 재벌과 결탁하여 정치생명을 끝까지 연장하려 들고, 검찰은 재벌에게 돈을 받고 그들 재산을 끝까지 지켜주는 충견이 되고, 언론은 재벌에게 돈 받고 그것의 충실한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지 않은가! 어쩌다가 대한민국 꼴이 이 지경이란 말인가? 재벌민국, 정치민국, 검찰민국, 언론민국!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 쥘락펴락하는 경제 제일공화국의 우울한 단면을 보면서 옛일을 생각한다. 나의 가난했던 벗들이여, 잘 지내시는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대들은 건강하고 평안들 하시게나! 언젠가는 반드시 도래할 인간평등 세상을 꿈꾸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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