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역 경비에 의한 폭력과 성희롱, 인권유린 심각

여성 집중 사업장에서의 폭력적 탄압과 인권유린 현장 증언대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이 증언대에서 기자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사업장에서의 용역 경비에 의한 폭력 증언대가 4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렸다. 이는 최근 보건의료노조 세종병원지부,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서비스연맹 레이크사이드CC노동조합, 한원CC노동조합, 성원개발익산CC노동조합, 학습지산업노조 대교지부,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 등 주로 여성 노동자들로 이뤄진 곳에서 경찰과 용역 경비의 폭력이 급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번 증언 발표는 민주노총과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12개 시민사회단체가 주관하고, 윤은진(세종병원), 최은미(기륭전자), 장보금(레이크사이드), 이홍림(대교) 씨가 증언에 나섰다. 이들 사업장에서의 용역 경비 폭력 장면이 담긴 영상물을 상영할 때는 참석한 조합원들과 취재진들의 안타까움이 섞인 탄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세종병원, 17시간에 걸쳐 조합원에게 폭력 행사

  윤은진(보건의료노조 세종병원지부) 조합원
국내 최고의 심장질환 전문 병원인 부천 세종병원에서의 탄압은 상상을 초월한다. 부부 관계인 박영관 세종병원 이사장과 정란희 대표이사는 교섭을 거부한 채 모든 대화를 김동기 경영지원본부장에게 일임하고 있는데, 김동기 경영지원본부장은 1999년에 대전성모병원, 2003년에는 중부도시가스의 노동조합을 와해시킨 전력이 있는 '노조파괴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이 동원한 용역 경비들은 매일같이 조합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지난 3월 13일에는 무려 17시간 동안 병원 로비에서 소화기와 물대포, 염화칼슘을 뿌려가며 30여 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여성 조합원들의 가슴과 음부 가격이나 욕설과 음담패설, 각종 추행과 희롱도 자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증언에 나선 윤은진 조합원은 "병원 측에 '왜 용역깡패를 동원하냐'고 물었더니 '너희들 관리하기 힘들어서 그런다'고 대답한다"며 "용역깡패들이 점심식사하는 모습까지 비디오카메라로 찍으며 감시하고 조롱한다"고 폭로했다. 윤은진 조합원은 3월 14일에 있었던 소화기와 물대포를 동원한 폭력 사태에서 소화기를 정면으로 맞고 실신했었으나 세종병원 응급실에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아 인근에 있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사실이 있다.

윤은진 조합원은 "용역깡패들이 너무 두렵고 매일 따라다니며 촬영하고 조롱하는 것에 우울증이 왔는지 잠을 자지 못하고 밤새 울었다"면서 울먹였다. 전 지부장이었던 김상숙 지부장이 세종병원의 노조탄압에 항의하며 단식농성을 벌이다가 그 후유증과 스트레스로 암을 얻어 유명을 달리한 일을 언급하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여성 노동자가 용역깡패에 의해 죽게 될 것"

  최은미(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조합원
기륭전자에서의 상황도 그에 못지 않았다. 최은미 조합원은 "언제나 늘 일상적인 용역의 폭력에 사달리고 있다"면서 "화장실에 가도,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셔도 그림자처럼 용역이 따라다니면서 '빨리 들어가라'고 협박해 항상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기륭전자는 여성 노동자가 많고 특히 4,50대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용역들이 일상적이로 씨XX이라고 욕을 하고 '너한테 냄새난다'고 조롱하며, 한겨울에 회사에서 잠을 잘때 에어컨을 틀고 한밤중에 사이렌 소리로 위협하는 통에 놀란 조합원이 119에 실려갔다. 이게 살인미수가 아니면 뭔가"라고 분노했다.

기륭전자는 CCTV 20여 대를 동원해 조합원들을 일상적으로 감시하고 있으며 조합원들을 감금하거나 출입을 통제하고, 용역 경비를 고용해 폭행하는 등의 탄압으로 오랫동안 노동계의 지탄이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에도 여성 조합원들을 철문 안으로 끌어들여 감금하고 집단 폭행을 가하며 강제로 웃옷을 벗기는 등의 성폭력까지 저질러 왔다. 높은 수압의 물대포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나, 경찰이 이를 묵인하는 것 등도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탄압 양상이다.

최은미 조합원은 "폭력 당시 옆에 있던 경찰들에게 항의했지만 '내 관할이 아니니 112에 신고하라'는 말만 들었다"면서 "이러다 여성 노동자가 용역깡패에 의해 언젠가 죽을지도 모른다.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있는 곳에 용역이 있어선 안된다"

  장보금(서비스연맹 레이크사이드CC노조) 조합원
주주들의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고용 불안으로 노동조합을 지난해 8월 결성한 이래 장기 투쟁중인 레이크사이드CC노동조합도 용역 경비에 의한 폭력이 잦은 곳이다.

증언대에 나온 장보금 조합원은 "지금이 21세기가 맞는가. 정말 가슴이 아프다"면서 용역들의 탄압 사실을 공개했다. 장보금 조합원은 "깊은 산중에 동떨어진 골프장의 특성상 외딴 곳에서 폭력을 당하고 있다"며 "용역깡패들이 클럽하우스 화장실을 조합원들이 이용하지 못하게 막고 있으며 조합원들이 생리적인 고통을 호소하자 '너희 그냥 주차장에서 싸라'는 등 망언을 일삼으며, 여성 조합원들이 지나갈 때마다 '한 마리, 두 마리'라고 조롱한다"고 밝혔다.

여성 조합원들을 향해 'X년', '죽고 싶냐', '아가리 부셔버린다'는 등의 욕설은 물론, 여성 조합원 30명을 150여 명의 용역 경비가 폭행해 놓고 오히려 여성 노동자들에게 폭행당했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을 하기도 해, 많은 조합원들이 스트레스와 대인기피증,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는 증언이었다.

장보금 조합원은 "우리는 정정당당하게 고용안정을 요구했지, 용역깡패들을 상대하려 한 것이 아니다. 사측은 용역만 앞세운 채 얼굴조차 볼 수 없다"고 비판하면서 "노사가 풀어야 할 문제에 용역들의 폭력이 방치된다면 노동자들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노동자가 있는 곳에 용역이 있어선 안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학습지 대교, 만삭의 임산부에게도 물대포 세례

  이홍림(전국학습지산업노조 대교지부) 조합원
지난해 겨울부터 부당한 계약해지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학습지산업노조 대교지부도 최근 공중파 방송에도 보도된 심각한 폭력 사태를 겪었다. 지난 3월 9일 농성 천막을 2백여 명의 용역 경비들이 강제로 철거하면서 빚어진 폭력 사건으로, 당시 용역 경비들이 조합원들은 물론 취재진에게까지 모포를 뒤집어씌우고 폭행해 물의를 빚었었다.

만삭의 몸으로 증언에 나선 이홍림 조합원은 지난 3월 9일 천막 강제 철거 당시에도 임신 8개월의 몸으로 물대포 세례를 받았다. 이홍림 조합원은 "당시 방송차로 피신해 공포에 떨며 상황을 지켜봤는데, 방송사 취재기자들도 모포에 싸여 폭행당했다"고 전했다.

당시 용역 경비들은 여성 조합원들에게도 침을 뱉으며 폭행을 가하고, '나한테 안겨라'는 등 폭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항의하는 학습지노조 위원장과 민주노동당원을 질질 끌고다니며 발로 차고 팔을 꺾는 등 폭행하기도 했다. 이홍림 조합원은 "방송차에서 내려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며 "당시 사복 경찰 50여 명과 경찰버스 7대가 있었지만 수수방관하고 있었다"고 폭로했다.

"정부는 용역과 사용자를 처벌하고, 경찰을 문책하라"

이날 증언과 관련해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여성 노동자들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며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지를 탄압받고 있는 이 동지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는 민주노총 여성 노동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여성, 노동자들의 문제인 만큼, 21세기에 걸맞는 사회가 되도록 목소리를 모으자"고 밝혔다.

김지희 부위원장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대다수가 여성 노동자인 사업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사태는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인권의 현주소가 어디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준다"며 △용역 경비에 의한 불법적인 폭력이 구조화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 △용역 경비의 불법적인 폭력행위를 묵인, 방조하는 경찰은 명백한 직무유기임 △정부는 용역경비와 업체 및 폭력을 사주한 사용자를 처벌하고 직무를 유기한 경찰 관계자를 문책할 것 등을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