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안내사여, 임신하지 마라

[통역안내사 집중취재](5) - 산재보험 받으면 손해 보는 노동자

계약직 관광통역안내사 집중취재 기사를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부득이 취재원의 이름을 밝히지 않은 점 양해를 구합니다. - 편집자 주


관광통역안내사 K씨는 업무 중 재해를 당했다. 산재보험 등 4대 보험을 적용받지만, K씨는 산재 신청을 하지 않았다.

‘산재를 신청할 경우 손해를 본다’는 회사 담당자의 압력 아닌 상냥한 안내(?) 때문이다.

K씨는 일본 수학여행객과 함께 장거리 여행에 나섰다. 대형버스에서 앞을 보지 않고, 고객들을 바라보며 마이크를 들고 안내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는 순간 K씨가 탄 버스도 앞차와 충돌을 하였다. K씨는 쓰러졌다.

목과 허리 등을 다쳐 입원을 했다. 산재를 신청을 하려고 하자, 산재를 신청하는 것보다 버스대절회사의 교통사고로 인한 보험을 받는 게 유리하다는 안내를 회사로부터 받았다. 월급이 25만원이니 산재에서 나오는 급여보다는 교통사고 처리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계약직 C씨의 경우는 그나마 어떤 보상도 받지 못하고, 홀로 자신의 통장을 비우며 누워 있어야 했다.

수학여행단의 경우 일정이 끝나도 밤늦게까지 선생들이 평가회의를 한다. 일정이 끝나도 가이드들은 고객이 잠이 들기 전까지 숙소에서 대기를 해야 한다.

새벽 1시에 팀장으로부터 과일을 선생들 평가회의장에 가져다주라는 업무 지시를 받았다. C씨는 고된 업무 뒤에도 새벽이 되도록 잠을 자지 못한 터라 과일을 가져다주고 내려오다가 과로로 숙소 계단에서 쓰러져 굴렀다.

아프다고 호소했지만 병원으로 옮겨지지 않고 숙소에 방치되었던 C씨는 다음 날 병원에 실려 갔다가 서울로 긴급 호송되었다. 그리고 두 달간 누워있어야 했다.

하지만 C씨는 산재신청은커녕 회사로부터 병원비도 지원받지 못했다. 직장상사와 동료 3명이 ‘1만5천원’을 위로금으로 보낸 게 고작이었다.

C씨는 “누워있으면서 내가 사람인가, 물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관광통역안내사로 일하고 있는 사람은 5천에서 9천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부분이 여성이다. 업무의 특성상 서서 일해야 하고, 걷는 일이 많아 무릎 연골이 닳아진다고 한다.

임신 중 하혈을 하는 등 유산을 하는 경우가 많다. 부인과 질환도 심하다고 호소한다. 하지만 사회통념상 자유직종으로 취급되고, 산재보험이 적용되어도 직업병과 연관성을 찾지 못하여 개인의 고통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던 W씨는 “임신 중에도 일을 할 수 밖에 없었고, 하혈을 하고 유산을 하였다. 난소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임신을 할 경우 직장에서 받는 압력으로 마음대로 출산 전후 휴가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L씨의 경우 93년에 여행사에 정규직으로 입사를 하였다. 2000년 결혼을 하여 임신을 하자 태아를 위해 절대안정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회사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휴가를 요구하자 사직서를 내고 계약직으로 옮기라는 요구를 받았다.

둘째 아이를 가진 뒤에는 아예 계약직이 아닌 파트(아르바이트)타임으로 일을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당시 남편이 실직 상태라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L씨는 임신 8개월 때까지 인천에서 출퇴근을 하며 근무를 하였다. 계약직이나마 지키기 위해서라고 한다.

L씨는 “정부가 출산을 장려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특히 관광통역안내사 등 고객을 상대로 한 서비스 직종 여성의 경우는 출산 후보다 출산 전 휴가가 중요하다. 배가 나오기 시작하면 일을 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직업의 특성상 출산 전 휴가를 확대해야 한다. 또한 임신을 이유로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은 데 차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광통역안내사의 경우 정규직보다 계약직이나 파트타임 형식의 비정규직이 늘어가고 있다. 또한 자유소득업자로 분류되어 기본적인 근로기준법도 적용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21일 계약직 관광통역안내사를 ‘자유소득업자’라고 볼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은 그 뜻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관광통역안내사들이 그 동안 인권과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었는데, 이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