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이유 위에 공백을 덮지 말라

[기획연재](3) 여성살해의 다양한 맥락들 : 성노동자에 대한 폭력과 살해

[편집자주] ‘여성살해(Femicide)’가 전 세계 곳곳에서 시시각각 여러 형태로 자행되고 있다. 남아선호에 근거한 여아 살해나 여성 성기절제에서부터 명예 살인, 염산 테러, 가정 폭력이나 성폭력을 통한 살해, 지참금 살해, 전쟁 상황에서의 여성 집단 살해, 이주 여성 살해, 성 노동자 살해, 그리고 폭력적 상황에서의 여성 자살까지 수많은 여성 살해들이 벌어지고 있으며 가부장체제의 영향 속에서 남성 뿐 아니라 여성 역시 여성 살해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또한 여성 살해는 가부장체제의 유지를 위한 남성 중심적이고 성별 이분법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인 구조 속에서 벌어지기 때문에 수많은 레즈비언들이나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폭력과 살해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와 <참세상>은 2013년 공동 행동의 날을 통해 전 지구적인 여성살해에 맞서는 것과 동시에 한국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자행되고 있는 여성살해의 맥락과 의미들을 함께 분석하고, 의제화하기 위해 <여성살해에 관한 기획 연재>를 진행한다.

(원래 계획되었던 '한국의 여성살해 현황' 중 '가정폭력과 친밀관계에서의 살해'와 '이주여성에 대한 폭력과 살해' 기사가 필진 분들의 사정으로 게재가 어렵게 되어 부득이하게 '한국의 여성살해 현황'을 '여성살해의 다양한 맥락들'로 변경하여 추가로 네 편의 기사를 이어서 연재합니다.)



우리는 한국 사회 성매매의 현실을 알지 못한다. 현행법상 성매매가 불법인 탓에 성산업의 지형에 대한 실제적인 조사와 분석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성노동자에 대한 복지정책이 ‘성매매 근절’, ‘탈성매매’에 집중되어 있기에 이들이 어떤 환경에서 또 어떤 처우 속에서 일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 자료나 실태파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우리는 성노동자의 죽음에 익숙하다. 잊을만 하면 어딘가에서 그녀들의 죽음이 들려 온다. 성매매가 비가시적이고 음성적인 현상으로 인식되기에 이와 관련하여 알 수 있는 정보가 극히 제한적이며 통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에 보도되는 성노동자 살해 사건은 연평균 2-3회에 달한다. 언론과 통계로 미처 잡히지 못하는 성노동자의 죽음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화류계에서 아가씨가 손님에 의해, 업주에 의해 살해당하는 사건은 '그 바닥의 공공연한 비밀이자 풍문'인 지 오래다.

우리는 한때 모두를 경악하고 분노케 했던 몇 건의 연쇄살인사건을 기억한다. 가해자들의 타깃은 주로 노인이나 여성이었고, 피해 여성 중 상당수는 성노동자였다. 그러나 이 사실은 가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사이코패스'라는 주장의 근거로 소비되었으며, 가해자의 불운했던 연애사와 치정의 문제로 극화되어 '그들의 연쇄살인은 자신을 무시한 여자들에 대한 오래된 열등감과 분노로 인한 것'이라는 식으로 희화되었다. 유영철 사건과 강호순 사건을 위시한 연쇄살인사건들은 그렇게 '특정하고 잔악무도한 개인이 벌이는 극소수의 일'이라는 양 축소되었다. 무엇보다도, '어째서 성노동자가 그들의 주 타깃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문제제기 하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들, 특히 '(직업으로서 성노동을 하지 않는) 평범한 여성의 죽음', 그리고 '성노동자의 죽음'을 사람들이 각각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그 두 죽음이 얼마나 이분법적이고 서로에게 배타적인 방식으로 구성되는지를 생각해 보라. 대개 전자의 죽음은 사회의 공분을 자극하고, 이 공분 안팎으로는 '여권 향상'과 '여성 보호'의 문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안전망을 짜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할지에 대한 소란스러운 담화와 각계각층의 입장들이 전개된다. 하지만 성노동자의 죽음은 어떠한가? 우리는 어째서 질문조차 않은 채 '몸 파는 일을 했으니 죽을 만도 하다'며 그녀들의 죽음을 수긍하는가?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하지만 '부도덕하고 문란한 여성에 대한 단죄'라며 그녀들의 죽음을 긍정하고 각자의 혐오를 정당화하는 생각은 과연 소수만의 것인가? 성노동자는 여성이 아닌가?

성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지극히 이중적이다. 사람들은 여타의 죽음보다 성노동자의 죽음에 유난히 무딘 경향이 있다. 성노동자들이 맞닥뜨리게 되는 열악한 상황과 상시적인 폭력과 살해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인과의 알고리즘에 묶일 수밖에 없음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연결점에 이상하리만치 무관심하다. 각종 미디어에선 '극단적인 폭력에 시달리는 가련하고 비극적인 여성'으로서의 성노동자의 이미지를 매번 선정적으로 재생산하고 있지만, 성노동자의 열악한 상황과 현실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제기하는 이들은 터무니없이 적다.

그녀들이 '왜'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지, 어째서 이 상황이 왜 반복되는지에 대한 질문이 부재하는 한, 문제의 해결은 요원할 것이다. 따라서 그녀들의 죽음을 '여성살해', 그 중에서도 특히 '성노동자 살해'로 범주화한 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노동자 살해의 범주화

어째서 성노동자들이 자꾸만 살해당하는지, 그 인과를 명확히 규명하기란 지난한 일이다. 대부분의 성노동자 살해 사건은 가해자의 구체적인 살해 이유가 제시되지 않은 채 보도된다. 사회의 공분을 자극하지 않는 폭력일수록 본질은 잊혀지고 사건은 호도된다. 주류적이고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유지재생산에 기여하지 못하는 폭로는 발화되는 순간 목소리를 잃는다. 죽음은 존재하나 죽음의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명백히 존재하는 죽음의 이유에 태연히 덧씌워진 공백이야말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녀들의 죽음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가 성노동자의 현실을 정확히 시사하고 있다. 괄호 안으로 이유가 갇히고 은폐된 죽음들은 시야의 바깥에서 몇 번이고 반복된다. 이 연쇄를 끊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이 공백을 걷어내고 그녀들의 죽음을 직시할 책임이 있다.

성노동자 살해는 여성살해의 맥락과 더불어, 성매매 안팎을 구성하는 특정한 지형에 의해서, 성매매 과정에서 자행되는 여러 폭력에 의해서, 심지어는 단지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낙인과 혐오에 의해 성노동자가 살해당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이른다. 더불어 성산업 내의 열악하고 착취적인 노동조건으로 의한 성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사회적 낙인감, 정서적 어려움, 지속적인 폭력, 고리 대금 등의 여러 요인으로 인한 성노동자의 자살 역시 성노동자 살해의 범주에 포함된다. 대표적 사례로 00년의 군산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사, 10년의 경북 포항 성노동자들의 연쇄적 자살 사건을 들 수 있다.

약자 개개인에게 자행되는 사회적 폭력은 무지로 인해 발생한다. 많은 경우 이 무지는 생래적이고 필연적인 사회의 풍토병인 양 여겨지나, 사실은 미처 셀 수 없을 만큼의 촘촘한 맥락과 인과로써 철저하게, 매우 의도적으로 '수행'된다. 이 수행은 중심과 바깥을 겹겹이 구획짓고 분열시킨다. 그리고 중심을 견디지 못하거나 중심에 머무르지 못하는 이들을 끊임없이 저변으로 밀어낸다. 이것이 사회적 소수자가 구성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죽음을 의제화하는 과정에선 이 방식을 짚어내는 작업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 성노동자 살해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선 성노동자들이 성매매의 과정에서 겪게 되는 폭력, 그리고 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편견과 낙인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야말로 성노동자 살해 사건에서 매번 잘려나가는 인과의 연결고리를 재구성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른다'. 지난 2010년 6월 29일 성노동자의 날을 맞아 일본에서 살해당한 한국인 성노동자 여성을 추모하며 진행되었던 <목소리 展> 중 설치작품 '아무도 모른다'

성노동자 살해의 현황과 폭력의 문제

최근 10여년간 언론에 보도된 성노동자 살해 사건은 아래와 같다. 아래의 자료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발간한 2011년 하반기 「여성과 인권」에 실린 도표를 수정보완한 것이다.

2004.9 서울 강북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 살해 시도가 미수에 그침
2005.6 서울 종로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6.4.7 서울 종로구 낙원동 한 여관에서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8.11 서울에서 아버지에 의해 2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9.7.10 서울 서초동 오피스텔 업장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20대 성노동자 여성 살해 시도가 미수에 그침
2009.8 제주시 연동 한 원룸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9.12 대전 유천동 원룸에서 업주와 마담의 감금 및 구타에 의해 2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09.12.4 태백시 황지동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5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0.2 부산 진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0.4 전남 여수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된 채 암매장됨
2010.7.30 서울 청량리집결지 한 업소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0.12.11 전주시 덕진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1.10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1.11.2 부산 해운대구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2.7.4 의정부시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3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2013.3.17 화성시 향남읍 한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40대 성노동자 여성이 살해됨

성노동자들은 여러 조건으로 인해 폭력에 취약한 상황에 놓여 있다. 우선 성노동자들은 성매매 행위자라는 ‘불법적 위치’ 때문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성매매의 과정에서 업주나 구매자로부터 신고 협박, 금품 갈취, 성폭력, 구타, 살해 위협 등의 폭력을 당해도 성노동자들은 단속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경찰에 위험을 호소하지 못한다. 성매매의 불법화, 성노동자 처벌은 성노동자들의 당장의 삶을 실질적으로 열악하게 한다. 단속은 수시로 이루어지고, 단속 과정에서 여러 언어적, 신체적 폭력들이 자행되기도 한다. 단속에 적발되면 전과가 기록되고, 벌금을 물거나 심하게는 징역을 살기까지 한다. 또한 성매매와 성노동을 향한 사회의 깊은 낙인으로 인해 성노동자들이 겪는 친밀한 관계의 단절, 지속적인 자존감 하락의 문제, 단속과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한 상시적인 불안 등의 문제도 성노동자들이 겪는 폭력의 문제에 포괄된다.

이렇듯 열악한 환경과 낙인의 결합으로 인해 폭력은 성산업의 현장에서 만성화되며, 바로 이 폭력들이 극단으로 치닫는 지점에서 성노동자들은 살해당한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 언론보도를 추린 자료에서 알 수 있는 사례는 극히 한정적이므로, 미처 알려지지 못한 죽음들은 보도된 죽음의 횟수를 훨씬 상회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성노동자들은 구매자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구매자에게 짜증을 냈다는 이유로, 구매자가 단속을 두려워해서, 페이를 지급하고 싶지 않아서, 콘돔을 빼고 섹스하자는 구매자의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그것도 아니라면 단지 성노동자라는 이유만으로, 심지어는 성노동을 그만두라는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성노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애인이나 가족으로부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무리한 시도를 하다가, 드물게는 자신의 배우자와 성매매를 했다는 이유로 같은 여성으로부터 살해당한다.

성노동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 - 낙인이 폭력을 구성한다

성노동자를 향한 다양한 폭력의 기저에는 성노동을 향한 낙인과 편견이 깊게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성노동자 낙인의 문제는 한 사회의 성관념, 즉 성정체성, 성도덕, 성별 권력관계 등의 다양한 지점과 연결되어 있다. 여성이 돈을 받고 섹스를 하면 '아무에게나 몸을 맡기며 소중하고 신성한 성을 더럽힌다', '(남들은 땀 흘려 성실하게 일하면서 돈을 버는데) 성기를 대주고 편하게 돈을 번다', '남자들을 뜯어먹을 생각이나 한다', '허영에 가득 차 있다', '가정을 위협하고 파괴한다', '성병을 옮기고 다닌다'는 등의 비난을 받는다. 낙인과 편견이 야기하는 성노동자 혐오는 성노동자를 향한 직간접적인 폭력으로 외화되며, 그녀들과 그녀들의 노동을 향한 적대적인 시선은 성노동자가 살해되었을 때 문제를 축소하고 은폐하는 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성매매의 과정에서 성노동자가 수행하는 일련의 행위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역시 궁극적으로 폭력의 문제와 이어진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체제 안에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생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라면 누구든 노동자라 할 수 있고, 성노동자도 이 범주에서 별개가 아니다. 그러나 성을 매개로 한 서비스의 거래가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 한, 성매매의 실제적 양상은 인신매매적일 수밖에 없다. 이는 성노동자의 노동을 흔히 '몸을 판다'고 표현하는 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성적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노동을 한다는 자각이 성노동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구매자는 정해진 시간만큼 이 여성의 몸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지불한 일정 시간만큼 성노동자의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녀들이 예상하지 못한 성적 요구를 강요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 과정에서 성노동자는 몸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잃게 된다.

성매매를 둘러싼 국가와 사회의 법(法) 감정 또한 성노동자를 향한 낙인과 폭력의 문제에 연관된다. 국가는 언제나 성매매를 '필요악' 내지는 '절대악'으로 인식해 왔다. 전자의 인식은 '합법화' 정책으로, 후자의 인식은 '근절/금지' 정책으로 실현되었다. 성매매란 현상과 성노동자란 존재가 '통제하거나 폐절시켜야 할 골칫거리'라는 인식은 여러 국가의 성매매 관련 정책에서 여과 없이 드러난다. 무엇보다도 성매매를 '악'으로 적대시하는 법제들은, 그것이 합법화이든 불법화이든, 사람들이 성매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 그리고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를 유지시키는 성 엄숙주의와 도덕주의와 깊이 유착되어 작동한다. 낙인과 타자화로 얼룩진 법망 아래에서 성노동자들이 국민으로서의 주권과 시민권을 여타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온전히 누리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비범죄화를 실현한 뉴질랜드와 호주의 몇몇 주를 제외하면, 성노동자들은 언제나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특별관리의 대상이거나 처벌의 대상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국 역시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성매매를 근절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성매매 자체에 여성에 대한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는 생각이 깃들어 있는데, 이 주장의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서라도, 앞서 언급한 구도에서 성매매특별법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성매매와 성노동에 대한 법의 인식과 그 실천의 방식이 어떠한가의 여부는 사람들의 심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드러나는가. 대다수가 동의하는 '성매매는 옳지 못하며 자발적 성노동자들은 범죄자'라는 주장의 상당수는 '법이 그렇기 때문'이라는 조야한 근거에 기반한다. 성매매특별법의 취지가 '성노동자는 사회구조의 피해자'라는 인식에 기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실제는 '성매매로 인한 피해사실을 증명하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는' 자발-강제 이분법의 방식으로 작동되었다. 이는 일련의 문제의식들을 사회적 안전망 확충 등의 담론으로 발전시키지 않은 채 '피해자' 혹은 '범죄자'라는 한정된 위치에 성노동자를 고착시키는 결과로 나타났으며, 이 과정에서 여전히 성노동자들은 자신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인정받지 못한 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게 되었다.

  "성노동자의 권리는 인권이다!" 세계 성노동자의 날에서 행진 중인 성노동자들

여성주의적 실천으로서의 '성노동자 살해' 의제 확장

흔히 많은 사람들은 성매매에서 벌어지는 폭력들이 마치 성매매의 본질적인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성매매의 문제는 모두의 문제다. 각 사회에 현존하는 어떤 의제와 정체성도 성매매의 문제를 비껴가지 못한다. 성매매의 현장이야말로 당대의 지배 권력과 그로 인한 억압, 폭력, 차별의 지형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가장 명확한 지표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에서, 사회가 여성을 어떻게 인지하고 억압하는지의 극단적인 형태가 성거래를 통해서 나타난다는 점을 분명히 짚어야 한다.

오랫동안 남성중심사회를 운영, 유지시켜 온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집단 사이에서 '교환'되는 위치에 놓여 왔다. 여성의 욕망은 오직 남성권력 유지와 재생산에만 복무하도록 재단되었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전유하는 주체가 오직 남성이어야만 한다는 가부장적 사고는 여성이 스스로의 몸의 권리를 함부로 발화하거나 실현할 수 없게 하였으며, 오직 결혼, 혹은 그것을 전제한 연애 등의 성적 거래만을 승인해 왔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자본주의의 긴밀한 결합으로 구성되고 유지되는 이 사회는 모든 여성이 창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창녀'는 여성을 지배하고 단죄하기 위해 구성된 위치이자 낙인 그 자체다. 그래서 이 체제는 교묘한 방식으로 여성들에게 자기검열을 요구하고, '창녀'로 보이지 말 것을 명령한다. 자신이 지닌 순결함과 정숙함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일련의 행위를 수행적으로 반복하게 하고, 이 수행에 불성실하거나 비껴나 있는 여성들을 서로 비난하고 배척하게 한다. 오랜 시간 여성들은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상에 들어맞기를 강요당했고, 생존 수단으로써의 자기억압을 내면화해 왔다. 이러한 기제들이 어떻게 여성의 삶과 권리를 실질적으로 제한하고 옥죄어 왔는가를 폭로하고 투쟁하는 과정이 바로 여성운동의 역사였고, 이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성노동자 살해는 성노동의 당사자에게만 한정되는 특정한 사건이 아니다. '여성들이 신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기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한다'는 흔한 말들, 성적 자유를 주장하고 실천하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문란하다', '더럽다'는 비난들, 독점적-배타적-이성애적 관계를 수행하지 않는 여성들에게 던져지는 따가운 시선들, 이 모든 것들이 성노동자 억압의 양상과 얼마나 밀접히 맞닿아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 연속적인 폭력의 사슬을 끊기 위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와 젠더-섹슈얼리티 위계 구도가 성노동 안팎의 문제에서 어떤 방식으로 극대화되는지를 질문하고, 이를 보다 정교하게 담론화하는 실천으로써 '성노동자 살해' 문제를 여성 공동의 의제로 확장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성노동자의 모든 죽음 앞에서, 겹겹이 덧씌워진 공백을 걷어내고 죽음의 이유를 물어야 한다. 성노동자의 사회적 죽음은 곧 사회가 여성에게 어떠한 여성성을 요구해 왔으며, 이를 이탈한 여성을 어떠한 방식으로 단죄해 왔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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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 , 성매매 , NGA ,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 여성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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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사 ('성노동자권리모임 지지' 활동가)의 다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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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몽

    인용한 도표를 보면 "여관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원룸에서 성구매자에 의해" "오피스텔에서 구매자에 의해" '업소에서 성구매자에 의해"라고 계속되어 있습니다. 성노동자 살해의 핵심은 그들의 노동이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이주노동자들 중에서 여성노동자들이 가장 많은 국적이 필리핀입니다. 필리핀 여성 노동자들 중에서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와 가사노동자를 비교하면 후자가 폭력과 성폭력에 훨씬 더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식모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적인 공간에서의 노동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 41남

    밀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성매매는 성노동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지만,
    성판매자가 위험에 처한 현실이라면 구제 받아 마땅하다는 의견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본 전제가 다름에도 결론부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은 존재한다고 생각되며,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성판매자들이 받는 곱지 않은 시선은 있다고 생각하며, 또, 그로 인한 사회적 폭력 또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이면에는 우리 사회의 무책임한 이중성이 깔려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고생해서 쓰셨을 텐데, 그래도 몇가지 남겨봅니다.
    다소 불편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런 의견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해 주십시오.

    먼저, 성판매자의 살해 사례를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읽기로, 그 근거가 너무 빈약합니다.
    유관기관에서 성판매자와 비교할수 있을만한 그 외 대상군들의 살인,기타 범죄의 발생건수와 비율을 자료로 구해 올려주셨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이런 일 하니 당연히 발생빈도가 높지 않겠어요?'라고 들리거든요. 그러다보니,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얼마나 더 많이? ' 뭐 이런 의문들이 더 강하게 생깁니다.

    그리고 일몽님의 댓글을 읽고보니, 장소가 더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니, 정작 논점이 흐트려지는 것 같습니다.

  • 41남

    다음으로, 밀사님께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체제 안에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생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라면 누구든 노동자라 할 수 있고, 성노동자도 이 범주에서 별개가 아니다." 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왜곡된 편견이 있으시거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노가 있으신 것 같으십니다.

    저 글에 의하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먹고 살기 위해 돈 받고 하는 일이면 뭐든 ' 정당 ' 한 노동으로 인정받아 마땅하다로 들립니다만, 제가 제대로 이해를 한 것이라면 다시 이어가 보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용역과 임금만 있어서는 안되고, 다른 건 차치하고서라도 정당성이 존재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정당성이라함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큰 문제가 없다고 볼수도 있으나,

    타인에게 해를 끼친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밀사님이 말씀하신 이 사회가 성판매자들에게 행사하는 폭력들처럼,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으나 실제로 해를 끼치고 있는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 41남

    사실 저처럼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주제 넘게 자본주의학을 논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단지 노동으로 인정받기 위한 ' 정당성 ' 과 성매매의 관련된 바를 이야기해 보고자 함이며,

    지금 처한 성판매자의 위험에 있어, 그 ' 정당성 ' 또한 문제의 중요한 근원 중에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매매와 도박을 비교해 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사설 도박장에는 도박장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박장에는 단기적으로나마 돈을 따는사람도 있고, 잃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도박장의 딜러, 하우스장 등의 관련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비용을 지불 받습니다.


    불법이라고 하나, 도박을 하고 싶어서, 모인 사람들의 진행자 역할을 수행하는 댓가를 지불 받습니다.
    (하우스장은 노동자인가 아닌가는 논점이 아니니 생각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누구에게 피해를 주고 있습니까?
    돈을 잃고 가는 사람들? 돈을 딜러가 땄습니까?
    딜러는 분명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존재는 아니라고 봄이 옳을 것입니다. 사실 도박장에서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고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게이머들도 리스크와 기회비용을 주고 받는 것입니다. 드물게는 게임 자체를 즐기는 비용을 지불하는 게이머도 있습니다.

    그런데, 밀사님은 도박장 딜러를 혹시 노동자로 인정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신가요?
    그게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도박을 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도박장 딜러를 노동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사람은 아마 없지 싶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 봐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노동 내지는 직업이 가져야만 하는,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의 '정당성', 또 다른 하나는 실체적 거래 측면에서의 '정당성' 입니다.

  • 41남

    사회적 책임 측면에서의 정당성이라함은,

    도박이 이 사회에 이바지하는 바가 무엇인가? 의 문제일 것입니다.

    당연히 해악이 더 크며, 그 해악은 게이머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종국에는 가정을 파괴하고, 결국 가정이 붕괴되면, 이 사회의 존립기반이 흔들립니다.

    그렇지만, 이 문제는 성매매에 적용할 시에, 도박 보다는 가정에 영향을 덜 끼친다고 주장할 수도 있고, 또한 가정에 폐해를 끼치는 원인이라는 것이, 바로 밀사님이 말씀하신, 남성지배구조가 양산한 이 사회라는 결과물로써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타파하는 것이 본질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으니, 제 생각이야 어떻든, 성매매의 사회적 폐해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지만, 기왕지사 말은 나온 바, 과연 성매매가 노동으로 인정 받을 만한, 어떤 사회적 책임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밀사님의 의견을 말해 주실수 있으실런지요?

  • 41남

    다음으로, 실체적 거래 측면에서의 '정당성'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사실은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앞에, 주절주절 거린 것 같습니다.

    밀사님은 성판매자가 처한 위험의 핵으로, 사실상 '우리 사회의 지배구조에 의해 억압된 여성'을 말씀하신 듯 한데, 제가 이해를 제대로 한 것인가요?

    제가 이해를 제대로 했다면, 물론 그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게 근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밀사님의 글 중에

    ' 성적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노동을 한다는 자각이 성노동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구매자는 정해진 시간만큼 이 여성의 몸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지불한 일정 시간만큼 성노동자의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녀들이 예상하지 못한 성적 요구를 강요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 과정에서 성노동자는 몸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잃게 된다.'

    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부분이 바로 성매매의 실체가 없음을 밀사님 스스로 이야기 하는 부분입니다.

    실체가 없는데 돈이 오고 갑니다.

    사기는 아니지만, 거래대상물이 허상이라는 측면에서 사기와 같습니다.

    이 점이 바로 성매매의 심각한, 실체적 거래 측면에서의 '정당성 '을 잃은 부당거래로 보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실체가 없는 거래를 노동으로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점, 바꿔말해, 과연 거래대상 목적물을 구체화할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단언컨데,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41남

    바로 그것이 성매매를 금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 성 ' 이라는 것이, 알고 봤더니, 판매자나 구매자나 사고 팔수가 없었던 물건 이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사족을 덧붙이자면, '사랑'과 '성'이 따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망상에 불과합니다.

    사랑 없는 sex는 언제나 공허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매매할 권리라는 것도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복추구권의 하나여야 할 것인데,
    공허한 행복이라는 것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지요. 공허한 행복을 다른 말로 하면 '불행'입니다.

    솔직히 이것이 본질 중에 최고의 본질인데,

    아니다 나는 성만 살 수 있다는 망상에 사로 잡힌 사람들도 너무 많을 것 같아서,

    이런 사랑학개론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는 좀 사족으로 치부하도록 하겠습니다.

  • 41남

    이제 도박으로 돌아와서 합법적 도박장인 카지노를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카지노에 가면, 과연 거래의 실체가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한번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없다입니다.

    물론 카지노에서의 거래의 실체란 돈을 의미합니다. 비용도 돈이지만,취하려는 목적물도 돈인 셈이죠.
    하지만, 만약 처음부터 돈을 잃을 생각으로 시간이나 때우고자 간다면, 실체는 당연히 존재합니다.

    카지노에 가서 돈을 따러 가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카지노는 애초에 하면 할수록 돈을 잃게 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물론 걔 중 따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물론 그 사람도 오래하면 반드시 잃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카지노 측에서는 언제나 따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비밀은 확률 때문입니다만, 그것을 이야기 하고자 함은 아닙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돈을 반드시 잃도록 되어 있는 곳에, 돈을 따겠다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입니까?

    게이머들이 따겠다는 돈의 실체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까요?

    카지노를 합법적으로 만들어 둔 이유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돈을 따도록 해주기 위해서는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판매자인 카지노에서는, 구매자인 게이머들에게, '돈'이라는 목적물을 팔 생각이 애초에 없는데, 구매자인 게이머들은, '돈' 이라는 목적물을 파는 곳이야 라는 생각으로 갑니다.

    일종의 망상입니다.

  • 41남

    그리고 카지노 측에서는 이야기 합니다.

    " 카지노는 노는 곳이지, 돈을 딸 수 있는 곳은 아니었어, 난 돈 파는 곳이라고 한 적 없으니, 와서 돈을 못 땄다고 깽판 부리면 안돼! "

    라고 항변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성매매의 현장입니다.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밀사님이 생각하시는 성매매의 거래목적물인 '성'의 실체는 어떻게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까?

    밀사님은 글에서 ' 구매자는 정해진 시간만큼 이 여성의 몸을 산 것이라고 생각한다 ' 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밀사님이 말씀하신 성판매자가 제공한다는 그 '성적 서비스'의 실체는 뭐라고 이야기 해야 합니까?

    사실 ' 남성은 성을 산다면, 여성의 몸을 산다고 생각한다 '는 생각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가지는 또 다른 편견입니다.
    물론 소수의 남성들이 그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수는 있다해도, 하지만, 대부분의 남성들은 사랑할 때 나누는 sex를 연상하곤 그것을 목적물로 생각하여 성을 사러 갑니다.

    사랑할 때 나누는 sex라는 것은, 결국은 사랑이 포함된, 그런 교감이 포함된 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성은 사고 팔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단언컨데, 어떤 남자도 그냥 단지, 소위 말해 ' 한번 싸로 간다 '고 생각하면서 가는 남자는 없을 것입니다.

    밀사님이 이야기 하시는 '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샀다고 생각한다 '는 부분은, 표면적으로 보이는 현상이고, 그 이면에는 어떻게서든 교감을 얻어가보고자 하는 몸부림일 경우도 포함 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런 걸 얻어 갈수 있다는 것은 망상입니다. 불가능하죠.

    애초에 그런 건 팔지도 않는 곳에 가서, 그런 걸 찾은 성구매자의 잘못도 있습니다.

  • 41남

    남성들이 사고자하는, 성매매의 실체인 ' 성 '이 ' 몸 ' 이지, 어째서 ' 교감 ' 이냐? 고상한 척 하지마라! 라고 이야기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중요한 건, 그것이 ' 몸 ' 이건 ' 교감 ' 이건,

    최소한 성판매자가 파는 ' 성 '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설령 성판매자가, 성구매자가 사려는 것이 '몸'인지,'교감'인지 인지할수 있다고 해도,
    어차피 그것을 판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매매의 실체입니다.

    애초에 거래가 불능인 거래는 거래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는 그로 인해, 위험에 노출되기 까지 합니다.

    모두를 속이고, 위험에 빠뜨리는 실체없는 거래인 성매매를 합법화 할수 없는 당위성이였습니다.

  • 41남

    제가 성매매나 카지노나 같은 맥락이라는 예를 들었다고, 뜬금없이, 그럼 성매매도 합법화하면 되겠네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까봐 ;

    사실은 돈을 잃게 되어 있는 구조라는 측면에서 카지노나 똑 같은 사설 도박장은 불법입니다. 그런데,카지노는 합법적입니다.
    다만 카지노는 예외적 합법적 사업장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예외적으로 공창제도를 주장하시는 분도 계시니, 행여 도박=카지노=합법이라는 오류는 범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핵심은 도박 = 불법 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도박장 중에 굳이 카지노를 예로 든 것은, 가장 시스템을 설명하기 용이하여서 일뿐입니다.


    카지노가 합법적인 사업이라고, 도박이 합당하다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 41남

    밀사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성을 파는 사람을 성노동자로 인정하자는 말은, 결론적으로 성매매의 합법화를 주장하시는 것으로 들립니다.

    여러가지 궁금한 점이 많이 있으나,

    밀사님이 말씀하시는

    1) 성판매자가 제공한다는 성적 서비스의 정의와 실체는 무엇입니까?

    2) 파는 '성'과 사는 '성'의 괴리는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3) 합법화를 주장하신다면, 제도권에 들어와야 할 것인데, 공정거래법에 의거한, 성매매표준약관을 만들어 공표해 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 성매매를 합법화 하자고 주장만 하지 말고, '성매매 표준약관'을 어떻게든 만들어 보신다면, 주장에 신뢰감이 실리지 않을까요? 또한 그 법적효력은 없더라도, 소비자들의 헛된 망상은 조금은 더 떨쳐버리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그렇게만 된다면, 위험에 노출되는 빈도도 조금은 더 줄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표준약관은 소비자입장이 더 많이 반영되어야 된다는 점인데, 사고 팔려는 각 측의 '성' 이 너무 달라서, 어떻게 해결하실 수 있으실지 자못 궁금합니다.)

  • 일몽

    41남님의 글을 읽고 다시 한 번 이 글을 읽어봤습니다. 따옴표 안의 글은 밀사님의 글이고 그 다음에 간략히 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성매매의 과정에서 성노동자가 수행하는 일련의 행위가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 역시 궁극적으로 폭력의 문제와 이어진다."

    성노동자가 하는 일이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폭력과 연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의 사회적 인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이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사람들 머리속에 확고하게 뿌리내리면 그들이 하는 일이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체제 안에서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고 생계를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 그것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라면 누구든 노동자라 할 수 있고, 성노동자도 이 범주에서 별개가 아니다."

    밀사님의 말을 바꿔 보겠습니다. 생산수단을 소유한 자는 비노동자입니다. 따라서 이 사람은 자신의 노동력을 타인(자본가)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동의 생산물을 타인(고객)에게 팝니다. 그렇다면 성노동자에게 자신의 생산수단이 있다면 이 사람의 생산물은 무엇입니까? 역시 성적 서비스입니다. 이 사람은 누구에게 성적 서비스를 판매합니까? 여전히 구매자에게 판매합니다. 생산수단이 있든, 없든, 이 조건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런 식의 주장으로는 성노동자가 왜 노동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을 매개로 한 서비스의 거래가 인신매매와 다를 바 없다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는 한, 성매매의 실제적 양상은 인신매매적일 수밖에 없다."

    제가 보기에 이런 식의 사회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밀사님이 인용한 성노동자에 대한 온갖 낙인과 편견에서도 드러나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결코 인신매매적이지 않습니다.

    "이는 성노동자의 노동을 흔히 '몸을 판다'고 표현하는 바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성적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노동을 한다는 자각이 성노동자에게 있다 하더라도, 구매자는 정해진 시간만큼 이 여성의 몸을 산 것이라고 생각하며 돈을 지불한 일정 시간만큼 성노동자의 몸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의 실현을 기대하기 때문에, 그녀들이 예상하지 못한 성적 요구를 강요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이 과정에서 성노동자는 몸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잃게 된다."

    성적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은 타인에게 성적 봉사를 한다는 뜻 아닌가요? 그리고 성적 봉사라면 타인의 성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닌가요? 서로가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판매자가 구매자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라면, 구매자가 구매한 시간 동안 판매자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가요? 그리고 구매자에게 그럴 권리가 있다면 구매자에게 자신의 욕구란 무엇일까요?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 그런데 서비스란 엎드려서 받는 마사지와 같은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두 사람이 하는 섹스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구매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인간의 욕구는 매우 다양하고, 성적 욕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켜야 하는 노동이 비인간적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닐까요. 바로 그러한 사실 때문에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것 아닐까요.

  • 일몽

    결론적으로 밀사님의 주장을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겠습니다. 밀사님은 성노동자가 하는 일은 성적 서비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것이지, 흔히 사람들의 표현처럼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노동력을 상품으로서 판매하는 자를 노동자라고 한다면, 노동력을 상품으로 구매하는 자는 구매한 시간 동안 타인의 노동력을 자기 것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노동력은 넘겨받을 수 없는 성질의 것입니다. 왜냐하면 노동력은 노동을 실행함으로써 발휘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노동력을 판매한다고 할 때 그 의미는 노동력을 구매하는 자는 구매한 시간 동안 타인의 노동력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노동을 실행하는 자는 여전히 노동자 자신입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의지대로 노동을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자의 의지대로 실행합니다. 이것이 소외된 노동의 본질입니다.

    성노동자는 구매자에게 무엇을 팔았나요? 밀사님은 그것이 일종의 노동력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구매자는 성노동자의 노동력을 살 수 없습니다. 그가 살 수 있는 것은 구매한 시간 동안 무엇의 사용입니다. 그 무엇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밀사님이 뭐라고 주장하든, 구매자는 구매한 시간 동안 그녀의 몸을 사용해서 섹스를 할 수가 있습니다. 만약 여기에서 몸이 없다면 성매매는 가능하지 않으며 따라서 성노동도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밀사님의 생각과는 달리, 성노동자는 일시적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 구매자에게 자신의 몸을 임대, 즉 판매한 것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구매자는 돈을 지불한 것입니다.

    성노동은 다른 노동과 다를 바 없는 노동인데, 몸을 판다는 말은 불쾌하게 들리시나요? 일정한 시간동안 만 구매자에게 자신의 몸을 사용하도록 허락하는 것이 바로 성노동의 본질인데, 그 본질적 정의가 그토록 불쾌하다면 도대체 왜 그토록 성노동을 방어하려고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성노동을 방어하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몸을 파는 것이 왜 문제냐고 주장하셔야 되지 않나요.

  • 일몽

    제가 생각하기에 밀사님이 "몸을 판다"는 표현을 불쾌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그것이 성노동자들에게 모욕적 표현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바로 성노동의 비인간적 속성을 단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예노동이라고 하더라도, 채찍질을 당하며 짐승처럼 고분고분하게 해야 하는 노동이 아닌 이상, 노동에는 자기실현의 계기가 존재합니다. 노동은 생계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제 아무리 단순한 노동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의 역량에 따라 노동의 성취도는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섹스입니다.

    섹스는 여성에게 행복한가요? 섹스에서 행복을 느끼는 여성은 별로 많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 첫째 이유는 남성이 여성의 욕망을 존중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반적 섹스도 여성에게 행복하지 않은데, 상업적 섹스가 그 일을 하는 노동자에게 행복을 주기란 더더욱 어렵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자는 여자보다 힘이 셉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섹스를 하는 동안 남성에게 지배당합니다. 그런데 밀사님은 이처럼 일반적 섹스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상호불일치를 상업적 섹스에서 온당하지 않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구매자는 뭣때문에 돈을 지불하나요? 섹스 파트너가 없어서라고 하신다면 더 이상 할 말 없습니다.

  • 일몽

    제 자신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점이 있어서 다시 정리해보겠습니다. 짧은 글이지만 위에 제가 썼던 글에 대한 보충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제가 밀사님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성노동자가 판매하는 것이 노동자가 판매하는 노동력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서 노동력의 구매자 입장에서 설명하겠습니다.

    구매자가 노동력을 구매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에게 노동을 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백화점은 왜 직원을 채용하나요? 물건을 팔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단지 파는 사람만 존재해서는 안되고 손님이 기분이 좋아서 돈을 쓸 수 있게 미소, 친절, 칭찬과 같은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백화점 직원이 판매하는 것은 상품입니다. 그러나 손님은 직원에게 상품을 구매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직원이 판매하는 상품은 직원의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손님은 백화점에게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고, 이 직원은 백화점에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했기 때문에 판매와 함께, 판매를 위한 서비스노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밀사님의 주장대로, 성노동자는 노동자의 범주에 포함되는 노동자일 뿐이라는 전제가 성립하려면, 바로 이와 같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즉 업주(노동력을 구매한 자)- 성노동자(노동력을 판매한 자), 손님(상품을 구매한 자) - 업주(상품을 판매한 자)

    이 관계는 그렇지 않습니다. 상품은 구매자와 판매자 사이에 오고가는 것이고, 업주는 이 둘의 사이에 기생적으로 개입하는 것입니다. 즉 성노동자는 상품을 팔아서 그 돈을 업주와 나눠갖는 것입니다. 성노동자는 업주측에서 봐도 노동자가 아니며, 손님 측에서 봐도 노동자가 아닙니다. 단지 상품의 소유자이며, 그 상품의 판매자일 뿐입니다.

    이 상품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 상품은 성노동자가 소유하고 있으며, 이 상품은 구매자에 의해서만 상품으로서 실현될 수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돈이 오고간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대가로 무엇이 오고가는지에 대해서는 은밀한 공간에 있는 두 사람만이 알고있을 뿐, 우리는 모릅니다.

    무엇이 오고가는지 공적영역에서 자유롭게 논의될 수 있을 때 성노동이 노동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역시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적 경험에 대해서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성적인 것은 사적인 것, 은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도 자신과의 성적 경험에 대해 타인이 발설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라면 모를까.

  • 41남

    문득 이런 의문이 듭니다.

    혹시 밀사님께서는 성구매자들이 대체적으로 성구매 후 어떤 식으로든 만족도가 매우 높다고 생각하시는 편이신지요?

    대개 보통의 연인관계에서 종종 남성들이 가지는 망상들처럼,
    어쩌면 성판매자들은 또 오히려, 대체적으로 거의 그런 망상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닐까 해서 여쭤보게 되었습니다.

    여태껏 제 주위에 어느 누구도,

    '돈 아깝다'고 하지 않은 이가 없었고,

    일(?!)을 마치고 나올 때는, 예외 없이, 씁쓸하지 않았다고 한 이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 다른 인터뷰를 보니, 밀사님의 생각에는 결혼도 넓은 의미에서 매춘과 다름 없다는 듯 이야기 하신 것 같으셔서 ) 연인이나 부부관계에서는,

    일(?!)을 마치고 나면, 일체감이 매우 강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씁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해지기까지 합니다.

    이런 sex는 강제적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돈이 개입되지 않은, 대개의 이성간의 인간관계에서라면 굳이 연인까지는 아니여도,
    대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리고, 성구매자들이 성매매하러 간다고 할 때, 무의식 중에 연상하게 되는 '성'의 실체는 바로 이러한 행복한 '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밀사님께서는 성매매에서도 이런 현상이 대체적으로 발생한다고 생각하시는 편이신가요?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과, 발생하기도 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는 편이신가요?)

  • 41남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성판매자 측의 의식은 어떠한지 궁금하기 때문이지, 밀사님의 생각을 바꾸고자 함은 아닙니다.

    제 스스로가 성매매가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한 직관에서 시작되었던 의문점들을, 제 스스로 시시비비를 가려보고 싶은 욕망에서 이런 질문을 드려보는 것입니다.
    진실에 대한 욕망인 것이죠.

    뭔가 잘못 된 것 같은데, 뭔지를 모를 때, 제가 아는 방법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 또한 우리는 진리탐구라고 하고, 다른 말로는 자아실현의 과정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성판매자가 처한 위험이 있다면 해소되야 된다는 데는 이견이 없으나, 그 방법에는 이견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성판매자가 처한 위험이 있다면, 그 해결책의 시작점은 우선은 제 1순위로 성매매의 목적물인 '성'의 실체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회 어느 곳이던, '정당성'이 결여된 곳에 위험은 필연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만약 성매매가 정당성을 갖추고 있었다면, 이미 직업화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41남

    밀사님의 어느 인터뷰 글을 오늘에서야 봤었습니다만,

    밀사님이 말씀하시는 성적서비스는 상거래의 목적물 치고는 너무 실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몸으로 하는 감정노동 '? 정도로 굳이 정의내리자면, 정의내려야 한다고 할까요?

    안 선생님의 '새정치' 수준입니다.

    이런 식으로는 구체화할수 없는 것입니다.

    적어도 성판매자 측에서, 무엇을 판매하려는 것인지, 정확히 구체화 해줘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성구매자에게 헛된 망상을 가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라야, 사회적 합의의 과정을 공론해 해 볼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의 모습은 분명 망상의 거래입니다. 이를 숨김으로써, 위험만 더 커져 있습니다.

    성구매자들의 망상이, 성판매자들의 노력으로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 아무리 카지노가 돈 딸수 없는 곳이라고 해도, 카지노에 가는 사람들은 돈을 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 것처럼 )

    하지만 적어도, 이런 노력도 없다면,

    이 사회가, 성판매자들이 스스로의 권익을 '주장할 권리'조차도 주려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 41남

    합법적인 카지노로 발전해 나갈 것인지?

    불법 사설 도박장으로 머물러 있을 것인지?

    첫번째 열쇠는 성판매자 측의 선택에 달려 있는 듯 보입니다.

    물론 밀사님께서는, 모든 도박의 신고제로써의 합법화를 주장하시는 듯 해보이지만, 그것은 아마도 사회적 '책임'의 정당성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합의되지 않는 한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되는 군요.

  • 41남

    말 장난 같이 들리실 지는 모르겠지만,

    성구매자의 입장에서 '돈이 있는 사람' 과 '돈도 있는 사람'의 차이점을 아실 수 있으시겠는지요?

    제가 굳이 성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다만,
    성구매자의 입장에서, '성'에 있어서, 돈이 개입되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순간, 자신은 그저 '돈이 있는 사람'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느끼게 됩니다.

    자존감이 상실되고, 자괴감이 싹트는 순간이죠.( 좀 더러운 기분이죠 )

    나와 돈이 이미 물아일체의 지경에 이르러 있으되, 나는 찾아볼 길이 없게 되어버립니다.

    자존감이 사라진 현장에서의, 기쁨,행복,교감 이런 것을 기대할 수 있을리가 없게 되는 것이지요.

    자존감이 사라진 사람들에게 매너를 바란다는 것은 웃기는 일입니다.

    대개는 공허함에 스스로를 포기할 것이고
    ( 이런 경우를 매너있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더러는 돈의 화신으로 분하여, '니 몸은 내가 산것이야' 라고 할 것입니다.
    ( 이런 경우를 진상이라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물론 드물게는 그런 곳에서도, ' 돈도 있는 사람 '으로써, 돈과 내가 분리되어 자존감을 잃지 않고, 성판매자와 교감을 나누고 가는, 대단한 내공의 소유자가 없지도 않겠지만, 그야말로 드문 경우지요. 카지노에서라면 돈을 딸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와서 게임 자체를 즐기는 플레이어 정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은 굳이 성매매업소에 올 필요성을 못느끼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지도 않을 뿐더러,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워낙 좋아해주는 여자가 많다보니, 굳이 자기 돈 써가면서는, 올 일이 거의 없습니다. )

  • 41남

    이것이 바로 앞서 밝혔듯이, '성' 이라는 것이 애시당초에, 돈으로는 사고팔수가 없다고 했던 근원입니다.

    성을 거래하자니 돈을 받아야 되는데, 정작 돈을 받으면 구매자의 목적달성은 불가능해져버리는 모순된 상황에 봉착합니다.

    결국 성구매자가 애시당초에 연상했던 '성'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것이죠. 자괴감만 남습니다.

    결국 거래 목적물의 실체가 사라져버려, '정당성'이 결여되어 버리는 거죠.

    성구매자들끼리, 나중에, 허풍 섞인 무용담일랑 걷어버리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눠보면, 하나같이, 성매매 후는 공허하고, 씁쓸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백에 아흔아홉은 다시는 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제로도 자발적으로는 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자발적으로 가는 백에 하나는, 진상일 확률이 백에 아흔아홉입니다.

    그렇지만, 망상에 사로잡힌 새내기 성구매자들은 해마다 배출되니, 진상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일 것입니다.

  • 41남

    성매매에서의 '성'의 실체에 대한 정당성이 설령 결여되어 있다고 한들, 성매매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그것이 설령 망상의 거래라 한들, 막을 수 없다면,

    현실을 인정하고,

    성판매자가 팔려는 '성'의 실체를 밝혀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판매자로써의 권리가 있다면, 성판매자로써의 의무도 있기 마련입니다.

    권리 뿐인 권리 없고, 의무 뿐인 의무란 없는 법이지요.

  • 41남

    제가 밀사님의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손님 중에 와서 같이 폰게임만 같이 하다가 간 사람이 있었다고 했는데,

    대략 그런 행동들이 대체적으로, 자존감을 잃어 자괴감에 사로 잡히는 것을 두려워할 때 나타나는 특징들 중에 하나입니다.

    애써 태연한 척, 쿨한 척들 하게 되어 있죠.

    저는 성판매자들이 보호받아야 된다면, 이러한 성구매자들 역시 보호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가서는 안될 사람들이 간 것입니다.

    그 사람은 그래봤자, 돌아가서는 결국 자괴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성관계의 유무와 상관 없이, 이미 거래는 이루어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한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찾지 못하겠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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