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일 만에 땅 밟은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 “복직 없이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

노조 양보에도 복직 거부하는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연대 시민들 “진짜 사장 주명건 나와라” 농성 돌입

서울 명동역 인근 세종호텔 앞 도로 10미터 높이 철제 구조물 위, 가로 세로 80cm 공간에서 두 번의 겨울을 보낸 고진수 세종호텔 해고 노동자가 14일 오후 1시 40분경 땅을 밟았다. 지난해 2월 13일 해고자 복직 등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 336일 만이다.

“신발 속 거슬리는 모래알을 넘어 나와 일터를 지키는 위협적인 송곳이 되겠다”라며 고공에 올랐던 고진수 씨와 동료 해고 노동자들은 이제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이 확실한 손톱 밑 가시 같은 불편한 존재로 계속 싸워 나가겠다”면서 이날 고공 농성 해제가 투쟁의 ‘끝’이 아니라고 짚었다. 이들 해고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 연대 시민들은 “함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더 너르고 거센 투쟁을 다짐했다. 한편 이날 오후 열린 7차 교섭에서도 세종호텔 사측은 복직 요구를 거부하며 위로금만 제시했다. 해고 노동자들과 연대 시민들은 “진짜 사장 주명건”의 교섭 참여 등을 요구하며 호텔 로비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336일 만에 땅에 내려오는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 참세상 박도형

14일 오후 1시, 서울 명동역 인근 세종호텔 맞은편 고공농성 현장에는 시민사회 각계와 진보정당, 연대 시민들이 함께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336일 만에 땅을 밟는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을 맞이했다. 지난해 각자의 현장에서 고진수 지부장과 함께 고공에 올라 있었던 박정혜 금속노조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수석부지회장과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도 자리해 고 지부장을 환대했다.

1시 40분경 336일 만에 땅을 밟은 고진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조 세종호텔지부장은 “동지들의 한결같은 연대와 뜨거운 동지애로 고공농성을 무사히 마치고 내려올 수 있었다”며 땅에서 함께 투쟁을 이어온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과 연대 노동자·시민들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고공농성 해제 후 소감을 밝히는 고진수 지부장. 참세상 박도형

고 지부장은 이어서 “코로나를 핑계삼았던 세종호텔 정리해고는 민주노조 파괴를 위한 탄압이었다는 것이 매일 증명되고 있다”면서, 코로나 시기 노조가 고용 유지를 위해 여러 양보안을 사측에 먼저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종호텔은 민주노조 조합원만 12명을 해고했다고 환기했다. 그러면서 “코로나 이후 객실 매출만으로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음에도 “전체 노동자 수는 5분의 1로, 정규직 규모는 10분의 1로” 축소하고, 해고자 복직 요구도 거부하고 있는 세종호텔 사측을 규탄했다.

그는 세종호텔지부 조합원들을 비롯해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지난 겨울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매일 앞장서 탄핵의 광장에 나섰지만, 그 민주주의는 십 년 전에도 공장의 문턱에서 멈춰섰고, 지금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지 반 년이 넘었지만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정규직 할 것 없이 생존의 벼랑 끝에 여전히 내몰려 있다”고도 지적했다.

고진수 지부장은 “비록 고공에서 우리가 요구하는 복직 답을 받아내지는 못했지만, 더 많은 동지들과 노동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 정리해고 철회 투쟁, 교섭 창구 단일화 악법 폐지 투쟁, 모든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함께해 나가면 되겠다는 확신을 얻었다”며 “그래서 고공에서 내려오는 지금 하나도 아쉽거나 슬프지 않다”, “바로 기운을 차려서 투쟁하는 동지들과 함께, 일터로 돌아가기 위한 투쟁을 결코 멈추지 않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고진수 지부장을 기다리고 있는 김란희·허지희 세종호텔 해고노동자(왼쪽부터). 참세상 류민

고진수 지부장과 함께 투쟁을 이어온 김란희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는 이날 땅으로 내려오는 고진수 지부장을 맞이하며 고공농성 해제를 결정한 세종호텔지부의 입장을 밝혔다. 지부는 “고진수, 허지희, 김란희, 민병준, 이치호, 이주형 6인은 지난 4년 여의 투쟁을 통해 이 싸움이 각자 개인의 싸움이 아닌 우리의 싸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멈출 수 없다”면서 “우리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감이 확실한 손톱 밑 가시 같은 불편한 존재로 계속 싸워 나가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또한 “회사로 복귀하는 싸움과 함께 정리해고법 폐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해, “모든 악법에 맞서 싸우는 동지들과 함께하겠다”라며 “고공 투쟁은 오늘 멈추지만 땅에서 고진수 지부장과 힘차게 싸우겠다”, “그 길에 동지들께서도 식지 않는 열정으로 연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마음을 전했다.

고공농성 해제 기자회견에 함께한 시민사회 각계, 연대 시민들. 참세상 류민

비상계엄 이후 펼쳐진 광장에서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투쟁과 관계 맺게 된 ‘연대 시민’들도 함께 자리했다.

광장의 악사 멜로디언 동지로 자신을 소개한 ‘해나’ 씨는 “고진수 동지가 매일같이 고공에서 울리는 사이렌”은 코로나를 핑계로 정리해고된 사람들이 4년째 길 위에 있다는 메시지였다”면서 “4월 4일 탄핵 선고 이후로도 여전히 우리는 이곳에 남아 있고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일상은 비상임을 고공 해제는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날 고공농성의 해제는 “절대 (투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하고, “더 이상 노동자가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 세상을” 향해 끝까지 함께 연대하고 싸워가겠다고 밝혔다.

동덕여대 재학생 김재이 씨는 지난 한 해 동안에만 다섯 곳의 고공 농성을 지켜보고 그 중 세 번의 고공 농성의 시작과 끝자리에 함께했다면서 “이 자리에서 정부를 향해 묻고 싶다”, “대체 노동자가 왜 노동을 안 하고 저 고공으로 올라가야 하는가”, “왜 이들은 고공에 올라야만 정치인이 이야기를 들으러 오고 말뿐인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는가”라고 참담한 마음을 전했다. 그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노동자 박정혜·소현숙 동지가 굳세게 싸워 받아낸 대통령실의 문제 해결 약속이 오늘로 136일째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옵티칼 동지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고도 환기하며 “그렇기에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동지들께 당부하고 싶다”, “우리 절대 무뎌지지 말자”, “고진수 동지가 이제 우리와 같은 높이의 지상에 서 있다는 사실에 무뎌지지 말자”, “절대 무뎌지지 말고 우리의 싸우는 모든 동지들이 현장으로 복귀하는 그날까지 함께 하자”고 힘 주어 이야기했다.

종교계에서도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의 투쟁에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영등포산업선교회 손은정 목사는 “고공에서의 336일은 세종호텔 노동자를 해고한 실소유주 주명건의 비인간적인 야만성을 드러내는 시간”인 동시에 “차별과 혐오, 폭력적인 우리 사회 문제를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하고 그 힘은 오직 연대에 있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환기하고, “오늘 고공 투쟁은 마무리하지만 세종호텔 복직 투쟁이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있다”고 짚었다.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여호수아 수녀도 “고진수 지부장과 동료들이 처한 현실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과 무책임함을 그대로 보여준다”면서 “부당한 해고 이전의 자리로 돌아갈 권리와 노동자로서의 존엄과 생존권을 외치는 이들의 요구에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했던 세종 호텔의 반사회적인 행태에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고진수 지부장과 동료들이 반드시 복직되어 자신의 일터로 돌아갈 때까지 여성 수도자로서의 돌보는 마음과 정신으로 끝까지 연대할 것”이라 다짐을 밝혔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정부의 책임을 강하게 물었다. 그는 한국옵티칼하이테크 해고 노동자 박정혜 씨가 600일간 고공농성을 벌이고, 고진수 지부장이 300일 넘게 고공농성을 이어와도 여전히 해고 노동자들이 일터로 돌아가지 못한 현실을 짚고는 “(세종호텔 실소유주) 주명건을 못 만나고, 옵티칼 자본을 못 만나는 것이 이재명 정부의 본질이자 김영훈 노동부 장관의 본 모습”이라고 개탄했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함민희 노동사회과학연구소 사무국장도 코로나19로 인한 경영악화를 정리해고 명분으로 내세웠던 “회사는 매출을 회복했고 심지어 더 올랐다”라며 그런데도 세종호텔은 복직를 거부하고 “정규직을 쫓아낸 그 자리에는 더 값싸고 열악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가와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일갈했다. 함 사무국장은 이같은 현실에서 “우리 노동자가 투쟁을 멈출 수 있겠는가”라고 묻고는 “복직없이 투쟁은 끝나지 않는다”는 구호와 함께, 투쟁 의지를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336일 동안 고립무원에서 뜻을 굽히지 않고 싸워주신 고진수 동지”와 세종호텔 조합원, 연대 동지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한편, “민주노총이 노동조합이 세종호텔 조합원들을 고공농성이라는 극한 상황까지 내몰고 그 결과로 복직을 쟁취하지 못했다라는 부족함을 더 깊이 무겁게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며 “세종호텔 조합원 동지들이 반드시 세종호텔 자본의 탐욕과 악랄함을 꺾고 현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리고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로 변화될 수 있도록 만들어 가겠다”고 밝혔다.

 고공농성 해제 직전, 현장에 모인 연대 시민들을 바라보는 고진수 지부장. 참세상 박도형

고진수 지부장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인근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돼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오후 3시 30분 세종호텔 비즈니즈센터에서 열린 사측과의 7차 교섭에 직접 참여해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는 지부의 입장을 재차 밝혔다. 이후에는 녹색병원에 입원해 검진을 받고 건강을 회복할 계획이다.

세종대학교 재단 대양학원이 100%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세종호텔은 지난 2021년 12월, 민주노총 조합원 12명을 정리해고했다. 사측은 코로나 19에 따른 경영위기를 이유로 들었으나, 정리해고 후 1년 만에 흑자 전환을 달성하고도 해고자들을 복직시키지 않았다. 노조는 당시 “정리해고만은 피하고자 고용유지 지원금의 사측 부담금마저 노동조합이 책임지겠다는 안도 제시했지만 세종호텔 측은 이를 제대로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면서 “정리해고의 목적이 민주노조를 뿌리뽑는 것이었기 때문”이라 짚었다.

노동조합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구제신청을 냈으나,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어 행정소송도 제기했으나 대법원은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세종호텔 해고노동자들은 이후 수년간 호텔 앞에서 천막농성을 이어왔고, 광장에서, 또 다른 투쟁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이들과 연대를 나누며 온 힘을 다해 함께 싸워왔으나 세종호텔을 실직적으로 소유·운영하는 대양학원 재단과 세종호텔 사측은 노동조합과의 교섭을 거부하고, 정치권 등의 ‘중재’ 시도에도 응하지 않아 왔다.

지난해 2월 13일 고진수 지부장이 고공 농성에 돌입한 후 같은해 9월, 정리해고 후 3년 9개월여 만에 사측과의 첫 교섭이 이루어졌으나 이후 여섯 차례에 걸친 교섭 내내 사측은 해고자 복직 요구는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노조는 투쟁을 이어온 6명 해고 노동자 전원의 복직을 전제로 순차 복직 등의 양보안을 사측에 제시하며 합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해왔으나, 세종호텔 사측은 해고자 복직에 대한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만을 거듭하고 있다.

7차 교섭 결과에 항의하며 세종호텔 로비 점거 농성에 나선 해고 노동자와 연대 시민들. 참세상 박도형

14일 오후, 고공 농성을 해제한 고진수 지부장이 직접 참여한 7차 교섭에서도 사측의 입장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세종호텔 정리해고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에 따르면 이날 교섭에서 “세종호텔 측은 복직과 관련한 어떠한 안도 갖고 나오지 않았고, 그저 위로금만 얘기할 뿐”이었으며 “심지어 1월 29일로 예정된 8차 교섭 장소로 세종호텔은 안된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해졌다. 

공대위는 “임기가 정해져 있는 오세인 대표는 세종호텔 실소유주 주명건의 허락 없이는 안을 가져올 수 없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이날 오후 5시경부터 세종호텔 로비에서 농성에 돌입, “실 소유주 주명건 대양학원 재단 명예이사장의 교섭 참여”와 세종호텔로 교섭 장소를 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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