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하중근 추모 '시 낭송'도 소환장 발부대상?

민족문학작가회의, "송경동 시인에 대한 소환 명령 철회하라"

'민족문학작가회의'가 29일, '포항건설일용노동자 하중근 씨 공권력타살 및 송경동 시인 소환 규탄 문학인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송경동 시인/참세상 자료사진
송경동 시인은 지난 8월 4일 포항에서 열린 '하중근 열사 살인규탄 결의대회'에 참석해, 주최측인 민주노총의 요청을 받고 고 하중근 조합원에게 바치는 추도시를 낭송한 바 있다. 그런데 경찰이 이 '시 낭송'을 이유로 '폭력시위 선동의 혐의가 있다'며 송경동 시인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는 어이없는 사태가 벌어졌다.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지난 7월 16일 공권력의 집단 폭력으로 하중근 씨가 투병 끝에 사망하고, 임산부까지 폭행을 당해 아이를 유산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는데도 책임당사자인 경찰과 정부, 포스코는 아무런 사태수습을 위한 노력도 없이 사태를 왜곡 축소하려고만 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반성과 사과는 커녕 송경동 시인에게까지 소환장을 발부한 경찰의 작태에 깊은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시인 정희성, 민영, 도종환, 김형수, 김해자, 이승철, 이정록 등과 문학평론가 염무웅, 구중서, 소설가 김춘복, 이인휘, 전성태 등 200여 문학인들이 의견을 모아 사태해결을 요구하고 나서게 된 것.

이들 문학인들은 성명서에서 "우리는 양방의 폭력적 대립이라는 겉보기보다는 아우성에 숨은 그들의 애원을 보려 한다. 저항적 폭력이 정당하냐 안하냐의 가늠에 앞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과 그들처럼 살아가는 850만 비정규 노동자들, 그들의 비관과 꿈을 더 깊이 헤아려보려 한다"면서 "또한 항의집회에서 시낭송을 했다는 이유로 소환명령을 내린 경찰의 행태를 보며, 공권력의 소양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문학인들은 또 "송경동 시인에 대한 소환 명령은 당장 철회되어야 하며, 그에게 이를 이유로 신변의 위해를 가한다면 우리 작가들은 그가 섰던 현장에서 다시 쓴 격문과 시를 읽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서명 문학인들의 요구는 △고 하중근 님의 사인을 경찰의 자의적 발표가 아닌 공정한 전문가와 시민사회단체 입회하에 숨김없이 밝힐 것 △포스코 사태의 본질인 다단계하도급과 비정규노동자 확산, 차별 문제를 해결할 것 △노동탄압 방식인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구속자 남발 등을 최소화할 것 △원청 책임자인 포스코가 노조와 직접 대화할 것 △송경동 시인에게 발부한 소환명령을 즉각 철회할 것 등이다.

[송경동]새로운 세계를 건설하라

- 故 하중근 동지 영전에 바침

그간 우리는
전국팔도를 떠돌며
너희의 집을 만들어주었다
너희들의 더럽혀진 영혼을 버릴 하수구를 만들어주었고
학교와 공장과 교회를 만들어주었다

너희는 우리가 만들어준 배관을 타고 앉아서야
먹고 싸고 따뜻할 수 있었다
너희는 우리가 연결해준 전선을 통해서야
말하고 듣고 소통할 수 있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결코 무너지지 않을
세상의 모든 천장과 벽과
계단과 다리를 놓아주었다
아무말없이, 불평도 없이

하지만 너희는 그런 우리에게
착취와 모멸만을 주었다
불법다단계 하청인생
일용할 양식조차 구하지 못하던
일용공의 날들
우리의 밥은 늘 흙먼지 쇳가루 땡볕에 섞여졌고
우리들의 국은 늘 새벽진흙탕이거나 공업용 기름끼였다

우리는 사회적으로도 늘 개차반
쓰미끼리 인생이었다
나중에 나중에 줘도 되는 근로기준법의 마지막 사각지대
못나고 공부 못하면 저렇게 되는 불량표지판
말 안 듣고 버릇없는 것들이 가는 인생 종착역
죽지 못해 사는 인생이 우리의 자리였다

그런 우리의 요구는 소박했다
옷 갈아입을 곳이라도 있다면
점심시간 몸 누일 곳이라도 있다면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쉴 수 있다면
일한 돈 떼이지 않을 약속이라도 받을 수 있다면
원청사용자들과 이야기라도 해볼 수 있다면
너희의 노예로 더 열심히 일하고
충성하겠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너희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못배우고 더러운 노가다들이 감히
신성한 우리 자본의 왕국 포스코를 점거하다니
밀어버려, 끌어내, 목줄을 짤라 버려
58명 구속에 가담자 전원 사법처리
그리고 시범케이스로
하중근 동지의 머리를 깨부셔놓았다

그래서 우리도 이젠 다르게 생각한다
전면전을 선포한 너희에게 맞서
우리가 그간 해왔던 건설과는
전혀 다른 건설을 꿈꾼다
더 이상 너희의 재생산에 봉사하는 건설이 아니라
일하지 않는 너희의 비정상적인 비만을 위한 건설이 아니라
진정한 사회의 주인으로 우리가 서는
새로운 세계를 설계한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가 너희의 하청이 아니라
우리가 너희의 원청이 되는 투쟁이다
우리의 노동에 빌붙어 과실만을 따먹는
너희 인간거머리들, 인간기생충들을 박멸하는 투쟁
진정한 사회의 주인
건설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명백히 하는 투쟁이다

비켜라
비키지 않으면
이 망치로 너희들의 썩고 굳은 머리를 깨부술 것이다
물러서라
물러서지 않으면
이 그라인더로 너희의 이름을
역사의 페이지에서 영원히 지워버리고 말 것이다
사죄하라
사죄하지 않으면
우리 가슴에 박힌 대못을 빼내
너희의 정수리를 뚫어놓을 것이다
이 성스런 건설노동자의 투쟁 앞에
돌이켜라. 썩은 시대여
항복하라. 낡은 시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