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의 정치학" vs "차이의 정치학"

[맑스코뮤날레](2-1부) - 맑스와 함께/너머(박영균, 이진경)

  사회를 맡은 김경수 강원대 교수

2부의 첫 번째 섹션은 김경수 강원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2회 맑스코뮤날레 행사의 전체주제 토론회를 통틀어 가장 많은 참석자들이 참여한 이 자리는, 이른바 전통맑스주의와 포스트담론의 쟁점에 대한 많은 관심을 반영하는 듯 했다.

박영균, “차이의 실천을 넘어 적대의 실천으로”

2부 '맑스와 함께/너머'의 첫 발제자는 박영균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연구원이었다. 박영균은 “차이의 존재론이 보편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던지며 발제를 시작했다. “차이의 존재론은 차이들을 단순한 구별들로 환원하고 구별과 ‘대립’을 구분하지 않아서 차이들을 강제하는 질서가 지닌 위계를 파악할 수 없다”고 지적한 그는 “이것이 과학의 해체로 이어지고 운동의 중심성과 위계성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결국은 차이 그 자체로의 환원이 아니냐는 것이 제 질문”이라고 밝혔다.

박영균은 이어 “맑스는 ‘차이’가 아니라 ‘모순의 변증법’을 통해 사회 역사적 운동을 개념화하고 범주화한다. 맑스는 차이의 복권, 차이의 확장, 차이를 통한 생산이 아니라 적대적 운동의 중심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주체 형성의 물질적 조건들과 주체 형성의 가능성을 찾는다”고 얘기하고 “‘차이의 생산성’을 이야기하면 자본의 한계를 극한적으로 사유할 수 없으며 자본에 대한 윤리적 비판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포스트적 담론은 자본에 대항하는 권력으로의 배치와 계열화를 거부하기 때문에 자본에 대항하는 권력을 사고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포스트적 담론은 코뮨을 지금 당장 미래의 시간이 아닌 미래를 현재화하는 현재적 실천으로 바꾸어 놓고, 경제결정론적이고 파국론적인 자세를 넘어서 총체적인 주체 혁신을 제기한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그 또한 대중들의 역능성에 근거한 일상의 태도 변경과 문화적 양식으로 정치를 해소하는 것이라면 자본의 거시권력에 포획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박영균

끝으로 “주체 형성의 문제는 자본의 모순에 근거하면서도 자본의 ‘밖’을 생산하는 문제며, 따라서 주체형성론도 조직운동- ‘당’운동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당 조직론’과 직접적으로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진경, “차이를 적대로 만드는 특수한 조건에 대한 투쟁으로”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발제에 앞서 “‘차이’에 대한 대단히 많은 오해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그 오해만 풀린다면 간극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간접적으로 박영균의 주장에 대해 언급했다.

이진경 교수는 ‘차이의 존재론적 일차성’을 강조한다. ‘맑스주의에서 차이와 적대의 문제’라는 자신의 글을 통해 “차이는 그 자체로 실존하며 심지어 동일성 이전에 실존한다”고 말한다. “대립이나 동일성이나 차이에 관한한 동일한 효과를 갖는데, 다만 동일성은 무수한 차이를 하나로 묶는데 반해 대립은 둘로 묶고 그것에 반대되는 성향을 부여한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강조돼야 할 것은 차이는 특정한 대립 개념이, 또는 대립 관계가 그것을 포섭하는 조건에서만 대립이 된다는 점”이라고 말하고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차이가 대립으로 변환되는 조건을 아는 것이고, 그러한 조건에서 어떠한 양상의 대립이 되는 것을 아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척도 권력 돼선 안돼”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

이진경은 프롤레타리아트가 ‘반-계급(counter - class)'를 구성하는 것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그는 “프롤레타리아트는 비계급이기에 계급적 포섭, 계급적 지배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방식, 새로운 생산의 장을 창출할 수 있고, 이런 비계급으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활동에서 긍정적인 ‘차이의 정치학’을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경은 “ 역사적 경험이 프롤레타리아트를 하나의 ‘계급’으로 변환시키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부르주아지에 대립하는 하나의 새로운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를 발명했다”면서 “프롤레타리아당이 그것이며, 이제 해방을 지향하는 적대 정치학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요는, 본래 프롤레타리아트는 비계급으로 태어났는데 반계급으로 구성되면서 적대의 정치학이 탄생됐고, 그 조건이 역으로 그 안에서 비계급으로부터 벗어나는 다양한 차이를 하나의 척도로 분리하는 권력이 됐다는 비판이다. 이진경은 “차이의 정치학은 차이를 구성적인 것, 변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르주아 척도를 부수는 투쟁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맑스주의 내에서 차이의 정치학이 가능하려면 프롤레타리아트가 자신을 부르주아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척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결론을 내린다.

“동일성 없이 실천이 가능할 수 있을까?”
vs “언제나 동일성에 반하는 투쟁 있어왔다”


이진경 교수의 발제가 끝나자 플로어에서 질문들이 쏟아졌다. 먼저 박영균 연구원이 이진경 교수의 주장에 대해 논평했다. 박영균은 “이진경 선생의 글을 좌파운동하는 모든 사람이 꼭 봤으면 좋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한 뒤, “척도의 권력에 대한 투쟁,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연 동일성이란 것을 벗어날 수 있을까 회의스럽다”고 밝혔다.

“동일하려고 하는 것은 모든 집단, 모든 개인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무엇이 아닌가. 동일하려는 의지 없이 실천적 행위들이 만들어 질 수 있을까 의문스럽다”고 말을 이은 박영균은 “지금의 좌파운동 전체의 문제를 동일성에 의한 폭력과 배제로 보는 것에 회의적”이라고 전했다.

이진경 교수는 이에 대해 “차이가 일차적이라고 얘기 하지만 현실적인 대립과 적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며 “ 중요한 것은 차이를 적대로, 대립으로 만드는 그 발생의 조건 본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발전의 조건은 곧 소멸의 조건이 되므로, 차이를 적대로 환원시키는 것이 갖는 문제를 밝혀내야 한다”는 입장을 거듭 전했다.

이진경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모든 사람과 움직임은 동일성의 권력에 반하는 활동으로 시작하는 것”이라며 “탈주, 동일성의 메커니즘과 다른 종류의 것을 만드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적이 있는가” 반문했다.

“맑스는 동일성의 철학자도, 차이의 철학자도 아니다”

한 학생은 “맑스가 동일성의 철학자지만, 동일성이 무조건 차이를 억압하는지, 아니면 해방을 위한, 해방의 동일성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이어 사회를 맡은 김경수 교수도 “화폐를 척도의 철학이라고 보고 척도 권력 비판 투쟁 얘기하시는데 모든 동일성이 그렇다는 것인가” 질문하면서 “궁극적 동일성과 잠정적으로 생겨난 동일성이 같은가? 동일성 자체를 척도의 권력으로 폐기해버리는 것보다는 동일성을 구분하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은가” 이진경 교수에게 물었다.

이진경은 “맑스가 동일성의 철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고, “그렇다고 맑스를 차이의 철학자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맑스에게는 두 가지 요소가 다 있다고 생각하고 제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제까지 맑스에게서 찾으려하지 않았던 차이의 철학 부분을 찾아봤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김경수 교수에 질문에 대해 “잠정적, 궁극적이라는 개념을 구분해서 잘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며 “자칫 철학적으로는 모든 개념을 폐기하거나 무한히 연기하는 것이 되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 코뮤니즘도 마찬가지다. 궁극과 잠정의 구분이 공산주의를 무한 연기시켜버렸다”고 주장하고 “ 모든 문제의식을 무효화시켜버릴 위험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진경 교수는 “동일성에 반하는 동일성이라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라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기존의 권력을 대신하는 권력이 때로는 더 나빠질 수도 있는 사태로 귀착될 가능성 대단히 크다”라면서 “그렇다면 거기에 진정 해방이란 말을 쓸 수 있을까 회의적”이라고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이진경 교수에게 질문과 논평이 쏟아졌지만 내용상 중복되는 것이 많아서 실질적으로 논쟁이 이루어지지는 못했다. 토론 후반부로 가면서 질문은 “차이의 정치와 적대의 정치가 실천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로 모아졌다. 이진경은 “둘의 결합이 비록 난망하더라도 꿈구지 않고서 맑스가 희망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냐”면서 “차이의 정치학은 언제 어디서나 대단히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영균 연구원은 “동일성의 두 가지 측면, 실천을 만들고 또 다르게 가둔다는 현실, 이 딜레마를 받아 안고 시작해야 한다”면서 “부족했지만 이런 만남들, 토론을 통해 새로운 것을 시작했으면 좋겠다”는 말로 토론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