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방지법‘ 그리고 ‘성노동자’

[2005참세상이슈](2) - 성매매방지법 재정 1년과 ‘성노동자’ 논쟁

2005년 여성운동을 뜨겁게 만들었던 이슈 중 하나는 ‘성매매’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이는 여성운동 내부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성매매를 노동으로 볼 수 있는가’,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를 폐절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열띤 논쟁이 일었다.

  평택 집결지 모습

2004년 9월, ‘성매매방지법’ 시행 그리고 ‘생존권’의 요구

2004년 9월 23일부터 ‘성매매방지법’이 시행되면서 집결지를 중심으로 정부의 대대적인 성매매 행위에 대한 단속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다음날인 24일부터 성매매 여성들은 미아리 집결지에서의 집회를 시작으로 생존권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생존권’을 요구하며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로 나서자 언론들과 정부, 정치권 등은 “업주가 시켜서 하는 것이다”며 그녀들의 목소리를 묵살했다.

여성단체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법을 통한 성매매 근절과 국민적 인식의 변화를 만들어가려고 했던 여성단체들의 그간 노력으로 탄생한 ‘성매매방지법’을 성매매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반대하고 나왔으니 그녀들의 목소리에 어떻게 귀를 기울이고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이었다. 성매매 여성들은 ‘한터여종사자연맹’을 만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4월, 성매매 종사자들과 여성단체들의 첫 공식대화 그리고 ‘전국성노동자연대’ 결성

올 4월, 서울여성영화제에서는 ‘아시아 지역 성매매 현실과 비디오 액티비즘’이라는 주제로 국제포럼을 열렸다. 이 자리는 성매매 종사자들과 여성단체들과의 첫 공식적인 대화의 자리로 마련되었다. 국제포럼에서 고정갑희 여/성이론 편집주간은 “성매매를 도덕적 타락으로 보는 사회적 시선을 넘어, 성매매가 하루 아침에 사라질 것이 아니라면 현재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붙여 줄 긍정적인 언어가 필요하다”며 “성매매 종사 여성들이 피해여성이 아니라 스스로 저항하고 방어하는 주체로 설 수 있어야 할 것이다”고 주장하고 성매매가 ‘성노동’으로 인식되어야 함을 제시했다.

  6월 29일, '전국성노동자연대' 출범식

자신을 ‘성노동자’로 규정하는 성매매 여성들은 이 시기부터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시작했으며 그녀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여성단체를 비롯한 사회단체들도 나서기 시작했다. ‘성노동자 운동’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결성되면서 논쟁은 다방면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주류여성운동단체들은 ‘성노동자 운동’에 대해 “가부장적 문화와 억압이 여전히 강하게 자리 잡은 한국에서 성매매를 둘러싼 보수 계층과 언론의 왜곡이 심한 지금 성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다는 것은 위험하다”고 입장을 밝히며 ‘성매매방지법’의 강력한 집행을 요구했다.

‘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은 성매매로 여성들이 진입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회, 경제적 모순의 복잡함만큼 다양한 부분에서 이어졌다. 6월 29일, 성매매 여성들이 ‘전국성노동자연대’를 공식 출범시키면서 이는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전국성노동자연대는 10대 규약을 발표하면서 “성노동자는 시민이며 주권자이고, 성노동자는 노동자이며 비정규직이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여성들의 행진, 금지주의와 비범죄주의

이 시기 함께 진행되고 있던 ‘2005릴레이여성행진’에서도 ‘성노동자’를 둘러싼 논쟁은 이어진다. 성매매의 비범죄주의를 주장하며 ‘성노동자 운동’의 지지를 표명했던 사회진보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등은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을 구성하고 ‘세계여성행진’에 함께 했으며,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주류여성운동은 ‘성노동자 운동’에 대한 입장 차이를 밝히며 따로 행사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2005릴레이여성행진’의 상징인 퀼트가 따로 따로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을 중심으로 진행된 여성행진 행사

‘빈곤과폭력에저항하는여성행진’은 6월 30일 ‘성노동자 운동, 가능한가’라는 토론회를 열고 ‘성노동 운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사회진보연대 여성부장은 “금지주의는 성노동자의 인권을 보호하지도 못하고 온갖 폭력에 노출시켰다. 포주와 남성 구매자들은 성노동자들이 범죄자라는 신분을 악용하여 그녀에게 폭력과 착취를 휘둘렀으며, 성노동자들은 처벌이 두려워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없었다”며 한국의 ‘성매매방지법’을 비롯한 금지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성노동자들에게는 포주로부터 부당하게 임금을 착취당하지 않을 권리, 남성 구매자의 폭력과 강간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남성 구매자를 처벌할 권리, 평생직업도 아닌 성매매를 자신이 원할 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권리,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인신매매 되지 않을 권리 등이 보장되어야 한다”며 성매매의 비범죄주의를 주장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 한계와 성과에 대한 논쟁

이런 논쟁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이었던 지난 9월 23일 다양한 입장으로 제출되었다. 금지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한국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 기념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호주 및 필리핀, 일본, 유럽 등의 사례를 통해 한국에서의 ‘성매매방지법’의 성과에 대해 평가했다. 이 포럼에서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는 성매매방지법의 성과에 대해 “성매매방지법의 의의는 성매매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며 범죄행위라는 인식의 확산”이라고 평가했다.

  성매매방지법 시행 1주년 기념 시포지엄

성매매방지법의 한계에 대해서는 정미례 대표는 “경찰단속의 일관성과 지속성의 부재와 처벌법을 관장하는 법무부가 성매매 알선 등 범죄와 피해자의 인권보호에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 성구매자의 처벌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정부정책이 지속성과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폐쇄정책을 분명히 세워 지자체와 함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회진보연대, 여성문화이론연구소 등도 토론회를 열었다. 이 들은 ‘성매매방지법 1년 평가와 성노동자운동의 방향과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토론회를 열고 그동안 진행되었던 ‘성노동자 운동’의 성과와 이후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 토론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성매매방지법의 가장 큰 성과는 ‘성노동자 운동’의 출현이다”고 평가하고, “성매매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것이다”며 “성매매 여성에 대한 피해자화는 여성의 주체적 활동을 힘들게 하는 측면이 있으며 이것을 넘어 성매매 여성들이 스스로 운동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조건을 형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자리에서 김경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은 “성매매방지법의 특징은 성매매 여성들이 피해여성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고 금지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남성 구매자, 성매매 알선자, 성매매를 하도록 한 사회구조를 가해자로 불러 낼 수는 있지만 성매매 여성들은 보호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만들 뿐이다”고 주류여성단체를 비롯한 정부가 가지고 있는 금지주의에서 성매매 여성들을 ‘피해여성’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9월 23일 고려대에서 열린 '성매매방지법 1년 평가와 성노동자 운동의 방향' 토론회

국가와 주류여성운동, 그리고 새로움

또한 여성가족부와 주류여성운동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는데, 이에 대해 김경미 씨는 “분명한 것은 여성가족부 및 여성계는 여전히 ‘생존권’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목소리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성매매 방지법이 만들어지고 시행되는 가정을 보면 이제 여성운동은 국가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고 밝히기도 했다.

‘성노동자 운동’, ‘성매매방지법’을 둘러싼 논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논쟁의 과정은 성매매를 둘러싼 논의 뿐 아니라 주류여성운동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여성운동의 필요성 등이 제기되는 과정이었다. 우리가 봐야할 것은 현재 성매매 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빈곤에 놓여있다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입을 떼어본다.

그대들의 입술을 열어라. 그러나 그것들을 단순히 그냥 열지는 말아라. 우린, 다시 말해 너/나는 열려있지도 닫혀 있지도 않다. 우리의 입술에서는 몇 개의 목소리들, 몇 가지의 말하는 방식들이 끊임없이 울려 퍼진다. 어떠한 매듭과 고리도 우리의 소통을 멈출 수 없다. 우리들 사이에 있는 집은 벽이 없다.
-뤼스 이리가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