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베스의 뼈아픈 개헌실패, 무엇때문인가

[기고] ‘대통령 연임제한철폐’가 문제는 아니었다

21세기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핵심적 조치들을 담은 베네수엘라 개헌안이 2일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부결되었다. 차베스 대통령이 "육상경기의 결승점에서 육안으로 승부를 확신하기 어려워 사진 판독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다"고 할 만큼 박빙의 결과였다. 350개 조항의 헌법중에 69개를 손질하는 이번 개헌 국민투표는 차베스 대통령이 내놓은 33개 조항과 의회가 제출한 11개 조항에 대한 찬반을 물은 A블록에서 반대가 50.7%로 찬성 49.3% 보다 불과 1.4% 포인트 많았으며, 의회가 개헌안을 심의하면서 추가한 23개 조항으로 이뤄진 B블록에서는 반대가 51.0%로 찬성의 48.9% 보다 2.1% 포인트 많은 것으로 집계됐다.

혹자들은 이번 개헌안 국민투표 부결이 차베스의 소위 ‘연임제한철폐’에 대한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불만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이 근거없음을 드러내는 결과는 바로 A블록과 B블록의 찬반결과가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만약 베네수엘라 민중들이 차베스의 ‘연임제한철폐’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면, 그 내용이 들어있는 A블록은 반대하고 B블록은 찬성했을 것이다. 왜냐면 ‘연임제한철폐’외의 다른 내용들은 대부분 베네수엘라 민중들의 삶을 질을 높이고 21세기 사회주의를 진전시키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에도 나와있다시피 A블록과 B블록의 찬반 차이는 사실상 무시해도 좋을 정도로 차이가 없다. 오히려 B블록의 반대비율이 더 높다. 이것은 개헌안 국민투표 부결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혁명 세력 내부 개량세력의 이탈과 사보타지

이번 개헌 국민투표가 부결된 가장 큰 이유는 저조한 투표율이다. 지난 2006년 12월의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율은 75%에 달했다. 하지만 거의 1년 뒤 개헌투표에서는 투표율이 56%로 하락했다. 기권자들의 상당수가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차베스를 지지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투표율이 하락한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투표율이 하락한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혁명 세력 내부의 개량세력들의 이탈 및 사보타지이다. 외신에도 나왔듯이 차베스 진영 내에서 개량적 사민주의 정당인 포데모스(Podemos)가 차베스 반대세력에 붙었다. 이들은 개헌안에서도 특히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를 대신해 민중 스스로의 자치권력을 강화하는 부분에 크게 반발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치기 싫었던 것이다. 실제로 개헌 국민투표 전에 포데모스의 수크레 주(州) 책임자 라몬 마르티네즈는 “지역의 자치권을 지켜내겠다” 면서 주지사와 시장들을 반대파로 적극 조직했다. 지방정부 및 지방의회에 있는 이들 개량세력들은 개헌안에 소극적이면서 전혀 움직이지 않거나 실제로 반대진영에 붙어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차베스의 혁명 동지이기도 했던 바두엘의 배신은 뼈아팠다. 결정적인 순간에 미제국주의와 국내 반대파 세력에 붙어서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필자는 2006년 12월경에 베네수엘라의 사정을 잘 아는 국내 외교관으로부터 바두엘에 대한 좋지 않은 얘기를 들었다. 그 때만해도 설마 했었는데 실제로 1년 뒤에 혁명을 배신하고 반대파에 붙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랐다. 미제국주의가 베네수엘라 혁명세력 내의 기회주의자들에게 철저하게 추파를 던지고 관리를 하는 노력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프레시안>이나 <참세상> 기사에서도 언급했듯이 미제국주의는 개헌을 부결시키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수언론의 악의적 선동

그러나 투표율이 저조한 것을 단순히 기회주의 세력의 이탈과 사보타지만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이들이 투표참가율 20%를 움직일 정도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도 항상 차베스에게 비난을 퍼부어왔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요소가 아니다. 차베스도 최근 투표율이 저조한 부분이 결정적 요인이라고 언급하면서 원인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대해 언급했다.

필자가 한정된 상황에서 추측하기에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이전에 비해 개헌 국민투표 참여를 촉구하는 대중사업이 기세있게 진행되지 못했을 가능성이다. 여러 번의 국민투표와 계속된 대중사업 속에서 활동가들이 피로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이번 개헌의 의미가 매우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2006년 12월의 대통령 선거만큼 대중들에게 절실한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또한, 계속된 우파와의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상황을 안이하게 보았을 수도 있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은 단기간에 급속도로 사회주의를 전진시키기 위해 다소 무리한 개헌안을 제출하게 되면서 대중들이 정서적으로 부담을 느꼈을 가능성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보수언론들의 악의적 선동이 대중들에게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보수언론들은 사회주의로 바뀌면 집도 빼앗기고 자식들도 빼앗긴다는 막가파식 선동을 서슴치 않았다. 차베스도 "내가 내놓은 제안들이 너무 과도했다는 사실을 이해하며 인정한다"고 밝히고 "국민투표를 통해 베네수엘라 민주주의가 성숙해 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 필자는 두 가지 가능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혁명이라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과정인지를 느낄 수 있다. 베네수엘라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혁명과정에서도 이러한 어려움이 닥치니 말이다. 그래서 혁명을 예술에 비유하는지도 모르겠다.

올해 안에 베네수엘라연합사회당(PSUV) 건설을 통해 주체역량을 준비하고 개헌을 통해 제도적 정비를 한 후, 2008년부터 새로운 동력으로 21세기 사회주의 건설에 박차를 가하려고 했던 차베스의 계획이 틀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에서는 일정부분 우파들이 성공을 한 것이다.

그러나, 혁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시라도 멈춘다면 그것은 혁명이 아니다. 대통령 선거를 포함해 지난 9년 동안 치러진 각종 선거에서 절대적 신임을 보내는 지지층의 변함이 성원에 힙입어 압승했던 차베스 대통령은 다소 의기 소침한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지금 이순간(por ahora)은 하는 수 없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영어의 'for now'에 해당하는 이 말은 차베스 대통령이 지난 1992년 쿠데타에 실패했을 때도 사용했던 말로 베네수엘라에서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즉, 2008년에 새로운 개헌시도를 할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차베스 대통령의 임기가 2013년 1월까지 5년이나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직 정권말기의 권력누수 현상이 올 상황도 아니다.

반면 우파들은 이번에 반대파의 새로운 리더로 급부상한 바두엘을 중심으로 반차베스 전선을 더욱 강화해서 내년에 다시 한번 전투를 준비할 것이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들의 권리인 ‘제헌의회’ 소집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에 바두엘은 개헌 저지가 진정한 승리가 아니면 향후에 ‘제헌의회’ 소집을 요구하는 투쟁을 언급하기도 했다. 우파들은 ‘제헌의회’ 소집을 통해 차베스 정권을 해체하고 모든 것을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기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베네수엘라의 개헌 부결은 사회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차베스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는 볼리비아의 에보 모랄레스와 에콰도르의 라파엘 코레아에게도 일정부분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이 크다. 특히 최근에 제헌의회를 통해 신헌법을 통과시킨 모랄레스는 거의 내전수준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번의 실패를 교훈삼아 베네수엘라의 혁명이 더욱 전진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덧붙이는 말

임승수 님은 민주노동당 당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