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로, 두 아이를 키우며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가 있으며, 학부모의 입장에서 교육 문제 전반에 날카롭고 따끔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교육의 주체로 빠질 수 없는, 학부모의힘을 보여준다.
자녀들에게 조커 카드를 허락하라!
[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아이를 친구처럼 생각하니 정리되는 일 많아져
김정명신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

자녀의 초등학교입학을 벅찬 감정으로 맞이할 새내기 학부모들에게 나는 16년차 학부모로서 격려와 박수를 보내고 싶다. 오래전 내가 새내기 학부모였을 때, 한국사회의 교육정책과 제도에 실망하고 분노해서 교육운동 일도 했지만 내적 갈등도 많이 겪었다.

아이를 내 소유물로 착각하고 내 뜻대로 조종하고 싶은데 뜻대로 안될 때 솔직히 그런 행동을 하는 나 자신에 무척 실망했었다. 그렇게 사랑을 핑계로 아이 인권 침해를 서슴치 않으며 아이나 나나 망가져간다고 느꼈을 때, 나는 궁여지책을 마련했다.

내 아이를 내 자식이 아닌 내 친구로 바꾸어 놓고 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권유는 하되 강요는 안한다.’ 아이를 친구처럼 생각하니 복잡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산뜻하게 정리되는 일이 많았다. 내 불안과는 달리 그렇다고 그 애가 공부를 못하거나 버릇이 없게 된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자녀양육의 끝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며 부모가 변하면 아이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실감했다.

3월, 신학기를 맞은 이후, 매일 오후가 되면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여행가방처럼 바퀴가 달린 책가방을 돌돌 굴리며 아파트로 들어선다. 학교 교문마다 신입생을 환영하는 플랭카드가 나붙어있다.

집 부근 초등학교 바로 앞에 위치한 이웃 고등학교에는 지난겨울 내내 '서울대 18명 합격'이라는 플랭카드가 걸려있었다. 서울 강남 복판에 그런 내용의 플랭카드가 걸리다니 초등학교 입학식 광경과 겹치며 '학교가 위기는 위기'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우리 교육 현실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바로 입시가 시작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많다. 서울시 교육청도 논술, 서술식으로 시험문제 유형을 바꿀 예정이라 하고,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시작하고, 대학들도 논술 본고사를 점차 강화하는 추세라서 새내기 학부모로서 기대와 희망은 점차 고3 학부모와 같은 배를 탄 심정으로 대학입시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바뀌게 된다.

얼마 전 한 사설학원이 개최한 대입 설명회에 5천5백 명이 몰렸다고 하고, 지난 가을 설명회에는 1만2천 명이 몰려들었다 하니 새내기 초등학생을 입학시킨 학부모들 가운데는 이러한 뉴스만 듣고도 조바심이 생기고 어떻게 해야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지 고민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새내기 학부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사회에서 좋은 대학은 인생의 성공을 보장하는 중요한 카드중 하나이다. 그러나 아이가 행복하게 살 권리, 원하는 것을 할 권리, 웃고 살 권리가 있으며 동시에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권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얼마 전 동네 초등학생들과 함께 수지모건스턴이 지은 ‘조커-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문학과 지성사 발행)라는 동화책을 읽었다. 그 줄거리는 새로 부임한 노년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원하지 않는 것을 하지 않을 권리’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아 조커 카드를 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노교사는 신선한 아이디어와 수업방식, 질문을 고안해내어 학생들에게 교과서에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을 주는데 학생들은 수업이 재미있어서 학교가지 않을 권리를 행사할 조커 카드를 쓰는 일이 점차 줄어들고 자신의 욕구에 따라 카드를 쓰면서 인생은 인내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동시에 모든 것은 때가 있으니 그것을 즐길 줄도 알아야하고 그 결과 자신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와 힘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주변의 부모들을 만나보면 아이는 학원 다니느라 만사를 귀찮아하고 지친 표정이 역력한데 엄마는 아직도 학원을 탐문하고 다닌다. 날이 갈수록 입시경쟁이 치열해지며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미래의 행복을 위해 일류대학 합격이라는 단 하나의 카드만 사용할 것을 주장하고 강요하며 아이를 복종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부모들이 ‘없는’ 살림에 사교육에 아이를 처넣으려고 할 때, 아이들의 가져야할 천부적 인권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한번쯤 생각해 볼일이다. 부모도 오래전 학생이었을 때를 돌이켜보며 자녀들에게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보고 자녀들에게 조커카드를 허락하는 것으로 새 학기, 새내기 학부모 노릇을 시작해볼 것을 제안한다. 적어도 우리네 부모들은 자식들과의 관계에서 상처를 덜 주고 덜 받고, 부모자식으로 서로 성장하고 소통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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