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오래도록 문학과 예술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려는 우리시대의 평범한 시민이자 시와 소설, 영화평론 등에도 관심이 있는 문학도. 세상은 마침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전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낙천주의자
"집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 끝낼 때"
이사에 대하여
김규종 
언젠가 철들고 돌이켜보니 부모님은 참으로 자주 이사하셨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나이 서른 되기 전에 이미 열여섯 번 집을 옮겼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한집에서 길어봐야 2년 남짓 살았을 뿐이다. 제집 없이 다섯 식솔들 거느리고 이사해야 했던 아버지나, 그런 무능한 (?) 아버지를 따라다녀야 했던 어머니의 고충은 어땠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나 또한 무슨 역마살인지 이사를 밥 먹듯 했다는 사실이다. 서른 이후 지금까지 모두 열여섯 번 이사를 한 것이다. 그러니까 한집에서 잘해야 일년 조금 넘게 산 셈이다. 어릴 때 부모님 따라 고향 떠나와 낯선 서울바닥을 전전하다가, 그분들 자리 잡힐 무렵 외국을 떠돌았다. 그리고 아무 연고 없는 대구바닥을 다시 이리저리 돌아다닌 것이다.

열하루 전 이사를 하면서 여러 생각이 흉중에 복잡하였다. 그러면서 남모르게 한 가지 다짐을 두었는데, 그것은 적어도 십년은 이집에서 살자는 것이었다. 20년 가까이 묵은 오래된 아파트를 이 궁리 저 궁리하여 구한 나는 집수리 공부에 열심이었다. 외관이야 낡고 허름하다 해도 종요로운 대목은 집안이라 생각한 때문이었다. 보름 넘게 걸리는 대공사였다.

이집에 들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우연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언젠가 이 아파트 근처에 주차했다가 고개 들어 살펴보니 건물 사이에 산죽이 심겨있고, 야트막한 야산이 지척에 있는 것이 아닌가. 차량소음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만족할만한 수준의 청정한 대기와 고요함. 도심 근방에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번사로 아파트는 잊히고 말았다.

세월은 빠르게 흘러 1년이 지났다. 임대 아파트 13층에 살았던 나는 공군 전투기들과 왕복 팔차선 도로를 둘리는 차량들의 소음과 부근 반야월 공단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연에 지쳐가고 있었다. 물론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금호강 습지와 각종 철새들의 활강은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나는 점점 떠나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느 날 다시 우연한 사건이 찾아들었다.

꼭대기 층에 올라간 승강기를 기다리다가 광고전단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빈 시간이면 습관적으로 무엇인가를 읽는 버릇이 있는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어느 신축아파트 선전물이었다. 그리 비싸지 않은데다가, 모기지론을 통한 은행대출 설명까지 상세하게 나와 있었다. 모기지론에 대해서는 들었으되 나와는 무관한 것이라 여겨왔더랬다.

재미난 일은 바로 그 시점부터 내가 산수계산과 아파트 가격조회에 돌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몇 군데 아파트를 돌아다니다가 일년 전에 가봤던 아파트가 불현듯 생각난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연말에 계약을 마치고 1월 중순에 이사하려 했으나, 예전주인이 이사날짜를 3월 초로 바꿔달라고 간청하였다.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그리하여 오늘로 이사한지 열이틀이 지난 것이다. 정면 베란다로 야산이 눈에 들어오고, 공부방 창문으로는 한들거리는 대나무들과 만개한 매화와 벚꽃, 개나리들이 나를 반긴다. 야산 중턱에서 밭일 하는 중년여성들의 바지런한 손놀림도 더러 눈에 들어온다. 아침이면 산새들과 까마귀 그리고 까치들의 우짖는 소리에 눈을 뜬다. 사방은 고즈넉하고 갈앉아 있다.

우연한 계기로 이사한 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집 혹은 거주공간에 대한 사고방식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나이 들어 가지고 싶은, 아니 반드시 소유해야 하는 첫 번째 대상으로 간주되는 집. 그런 집을 투자 내지는 투기목적으로 몇 채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 말로는 민족과 국가를 내세우면서 부동산투기에 열을 올리는 소위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그 내조자들.

아침저녁으로 바뀌는 정부의 부동산정책과 그것을 비웃는 전국의 투기꾼들과 사이비 애국자들의 끝없는 전쟁. 소유에서 임대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사고방식의 변화, 사악한 투기꾼들과 엉터리 정책입안자들의 단죄, 사이비 애국자들의 근절, 부도덕한 건설업자들과 그들에게 편승하여 대규모 광고이익을 추구하는 언론사들. 뭐,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른 것이다.

앞으로 20년 동안 나는 매달 65만 원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니까 월 65만 원 장기임대 아파트에 거주하는 셈이다. 그 기간이 끝나고 상당한 금액을 상환하면 얼마 전에 이사한 아파트는 내 소유가 된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월 19만 원 임대아파트에서 꽤나 비싼 임대아파트로 이사했노라고. 거주 조건을 위한 선택에 아직은 만족하고 있노라고 말이다.

어쨌든 집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소모적이고 논쟁적인 논란은 끝낼 때도 되었다. 오늘 8.31 부동산 후속대책이 발표되었다고 한다. 효과적인 부동산대책과 함께 주거공간에 대한 우리의 기본적인 자세와 입장이 변모되기를 바란다. 선진국 진입은 구두선이 아니라, 의식과 제도, 그리고 그것의 실행이 보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경우에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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