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부리]의 행.페이야기
박미선, "딴세상을 여기로 가져오는"(Bring elsewhere home) 페미니즘, 여성, 소수자들의 활동을 적극 지지하는 페미니스트 이론가. 이론과 실천으로서 페미니즘과 급진 이론의 혜안들을 '따로 또 함께' 나누는 페미니스트 네트워커. '행.페'는 '행동하는 페미니즘'의 줄임말
저항할수록 더 강해진다
[너부리의 행.패이야기] 단 열흘만이라도 이 현실을 중단시켜보자
너부리 
KTX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은 맑스의 <공산당 선언> 마지막 구절을 실천하고 있다: "잃을 것은 쇠사슬뿐이요, 얻을 것은 전세계다." 한달째 차가운 복도에 침낭을 깔고 하루 세끼 차가운 도시락을 먹으면서도, "이철 사장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우리는 나날이 투사가 되어가고 있다." 농성 한달째 한 평범한, 투쟁 참여자에게서 나온 말이다.

비정규직 여성들로서 이들의 투쟁은 "밥, 꽃, 양"이 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또한, 이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다시금 일러준다. '우리'가 자본의 회유와 협박질과 유혹을 뿌리칠수록 '우리'는 더 강해지며 더 전복적이 된다는 점을.

처음부터 쉽사리 끝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도) 투쟁을 시작한 이들은, 승객들에게 "밥"을 해주는 고된 노동 속에서, "KTX의 꽃"이라는 사탕발림이 오로지 비정규직의 초과착취적 현실을 은폐하기 위한 텅빈 말이라는 점을 온몸으로 경험함시롱, 그리하여 값싸게 사용당한 후 "희생양"되는, 자본한테만 좋은 길을 가기를 결연히 거부하고 있다.

이들의 투쟁과 더불어서 3월 초에 이틀간 있었던 총파업이 한달간 계속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혁명적 몸짓이자,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길로 연결될 파국이었으리라. 그렇지만 우리는 투쟁이 몰고올 어떤 파국에 두려워 떨며 뒷걸음질치고 비겁하게 타협할 뿐이다.

"이제 나는 사용자의 눈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로서 나의 경험과 나의 눈을 통해서 세상을 보고 싸워 나갈 것"이라고 말하는 어느 KTX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의지가 집단화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리하여 지금 여기의 초과착취적 현실이 마비되고 중단되어 어둠이 찾아오며 그 어둠뒤에 어떤 일이 올지도 모르면서 그 어둠을 (KTX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처럼 결연하게) 맞이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비겁하고 우리는 두려워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한줌의 것을 위하여, 우리를 종속하는 현실에 알아서 먼저 투항하며, 그 한줌을 지키고자 더 많은 것을 내어주고 알아서 잃어뻐리며, 급기야는 그 한줌마저도 빼앗긴다. 우리는 비관주의자이며 겁쟁이고 비겁하다.

75년 YH 여성노조가 결성되고 79년 8월 무단폐업에 항의하는 200명의 YH 여성 노동자들의 무참한 희생과 김경숙씨의 죽음이 유신체제를 종식시키는 결정적로 촉발제가 되었다. (고김경숙씨는 한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민노당 1호 명예당원으로 추서되었다. 그리고 당시 YH 노조 지부장이었던 최순영씨는 민노당 비례대표 의원이 되었다)

세월이 한참 지난 지금,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폭력진압 대신 들어선 것은 싸늘한 집단적 외면과 무능력한 연대 의사뿐이다. 그렇지만, KTX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은 (여성)노동자 투쟁의 새로운 역사를 맹글어낼 것이다. 이들의 투쟁에서 나는, 이 억압적 현실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이에 겁나게 타협하고 순응함시롱 그 종속을 강화하는 나같은 이들은 볼 수 없는 어떤 어둠의 저편으로 주저함없이 뛰어드는 어떤 강렬한 낙관주의를 본다.

'우리는 끝장날지도 모르지만, 이 모든 파국뒤에도 세상이, 삶이 계속될 것이라는,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이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으며,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뿐이다!'라는 강렬한 낙관주의.

대립을 하더라도, 그 대립이 어떤 파국을 불러올까바, 알아서 양보하고 알아서 물러서려는 우왕좌왕 우물쭈물 머뭇머뭇에는 이런 강렬한 낙관주의란 없다. 이런 작태에 깊숙이 뿌리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비겁함, 즉 '세상이 원래 그렇지'하는 비관주의와 그 너머를 상상하지 못할 뿐더러 '그 너머'라는 게 있어서도 안된다고 굳게 믿는, 그런 비겁함뿐이지 않을까.

우리가 비겁하게 거부하지 못하는 이 세계는 무엇일까.

KTX 비정규직 여성들의 투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쩔쩔맴시롱 비겁하게 매달리는 이 세상은, 이 세상은 팔 것이라곤 몸 밖에 없고 종속될 자유밖에 없으며 잃을 것이라곤 쇠사슬밖에 없다고.

KTX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의 투쟁 속에 있는 혁명적 불씨를 들불로 번지게 할 방법들은 무엇일까? 우리의 일하는 손을 집단적으로 중단하는 것을 막는 것은 무엇일까?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곧 국회 본회의에 비정규법안이 상정될 것이며, FTA 협상 움직임은 가속될 것이다.

우리의 모든 비겁함, 협상이니 절충이니 하는 것들을, 우리의 일하는 손을 계속 움직이게 하는 그 모든 것들, 우리의 순치된 욕망을 집어던지고, 단 열흘만이라도 어지럽게 달리는 이 현실을 중단시켜보자. 우리의 집단적 중단이 불러올 어떤 어둠, 어떤 결과들에 두려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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