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재벌,언론,검찰의 합작품, ‘X파일’과 삼성

[2005참세상이슈](6)- X파일, 삼성공화국 그리고 구본주

한국 검찰, “나는 삼성장학생입니다요!”

2005년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X파일’의 진실은 결국 독수독과라는 논리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언론과 재벌, 정치권, 검찰의 강고한 연대를 통해 구축된 삼성공화국은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성지로 남아있는 듯하다.

‘삼성장학생’임을 스스로 검증한 검찰은 5개월에 걸친 수사 끝에 이상호 MBC기자를 도청자료를 공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거대한 유착관계의 핵심인 이건희 삼성회장, 홍석현 前주미대사, 이학수 삼성구조본부장에 대해서는 기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노회찬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의 말대로 “재벌 감싸기를 넘어 재벌 앞에 엎드리기”를 선택한 것이다.

  이건희 회장과 이학수 구조본부장 [출처: 삼성그룹 홈페이지]

이상호 MBC기자는 지난 12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X파일의 진실, 이대로 묻일 수 없다’라는 주제로 열린 토론회에서 “테이프의 내용을 들으면 이제까지 구체적이면서 반복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유착관계를 비롯한 불법행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테이프의 진실성과 관련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은 허술한 취재로도 쉽게 할 수 있을 만큼 간단했다. 그럼에도 유능한 검찰인력과 검사들이 왜 수사를 못하는지 안타깝다”고 검찰을 강력히 비판했다.

‘X파일’, 너무나 간단하고 다 아는 얘기

‘X파일’의 요점은 간단하다. ‘X파일’은 독점재벌이 제공하고, 언론이 운반하고, 정치권력이 사용하고, 검찰이 보호하는 장면과 다시 검찰이 눈감고, 정치권력이 요구하고, 언론이 전달하고, 독점재벌이 돈을 만드는 장면을 담고 있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 만한 내용으로, 1997년 한국사회를 지배했던 자본, 정치, 언론, 검찰의 권력을 둘러싼 메커니즘이 실물화 되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X파일’의 보도 이후 드러났던 일들은 삼성공화국, 신자유주의정권, 중앙일보, 검찰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의 지배계급의 단면을 명확히 보여주었다.

논란이 되자 삼성은 대국민 사과문을 낸다. 삼성그룹 임직원 일동이라는 이름으로 제출된 사과문에서는 자신들의 불법행위는 언급하지 않은 채로 “어떠한 경우에도 옳지 못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하여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용인될 수 없으며, 금번 사태의 원인이 된 불법도청과 무책임한 공개 및 유포는 개인의 인권확보와 우리 사회의 민주발전을 위해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며 불법도청으로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이에 대해 김세균 교수는 ‘참세상’과의 인터뷰에서 “X파일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이상 X파일을 국민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민들이 그동안 파악하기 어려웠던 내밀한 진실을 국민의 것으로 만들어서 이를 통해 정치, 경제 전체를 혁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하며, 국가와 자본의 관계에 대해 민중사회가 깊이 있는 인식을 가져가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모르는 척 해야 하는 우울한 국민들

시민사회단체들은 ‘X파일공대위’를 구성하고 삼성본관 앞에서 연일 촛불집회를 열고 일인시위를 진행했다. 그리고 정치권은 특별법과 특검법을 내놓으면서 철저한 수사가 필요함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수사 주체와 테이프 공개 주체 문제를 두고 벌어지는 공방은 ‘X파일’의 전면 공개가 왜곡, 굴절 될 것의 예고였다.

핵심은 'X파일‘의 공개는 국민의 알 권리를 넘어 정치권과 언론, 검찰 그리고 재벌의 유착관계 속에 역사적 피해자일 수 밖에 없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확인할 권리‘였다. 그러나 결국 검찰은 독수독과라는 논리에 기대 공식적으로 단 한 글자도 공개하지 않았다. 재벌과 유착한 검찰에 의해 또 한 번 국민의 권리는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구본주 2주기 퍼포먼스

삼성공화국에서 정체성을 빼앗겼던 조각가 구본주

이 시기 삼성과 한 예술가의 싸움도 시작되었다. 민중의 삶을 조각하던 故구본주 씨다. 예술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는 ‘삼성화재’에 맞서 죽어서도 힘든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삼성공화국에 예술가는 없다”고 외치는 故구본주 씨의 함성은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예술가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기 위한 싸움으로 번졌으며 결국 작은 승리를 거두게 된다.

‘故구본주소송(삼성화재)해결을위한예술인대책위원회(구본주대책위)’에 함께 했던 임인자 변방연극제 사무국장은 “거대한 자본이 어떻게 예술가를 예술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수 없게 하는지 이번 사건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구본주대책위는 “2005년 7월부터 시작된 구본주대책위의 싸움은 삼성화재가 최선두에 서 있는 자본의 폭력과 정면으로 맞선 것이었다”며 “이 싸움의 기간 동안, 예술가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가 구본주였다”고 전했다.

  삼성바로보기문화제

계란, 삼성공화국을 깬다

삼성의 이러한 행위는 ‘무노조 경영’의 악명의 하나에 불과했다. X파일을 계기로 더욱 부각된 삼성공화국의 횡포에 맞서겠다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거대한 삼성의 산을 무너뜨리기 위한 그들의 직접행동이 이어졌다. 70여 개 노동사회단체들은 조직위원회를 구성하고 ‘삼성바로보기문화제’를 열기에 이른다. 이들은 전국의 삼성공장을 돌아다니면서 삼성의 무노조 정책이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을 죽이고 있는지 알려냈다. 삼성바로보기문화제를 기획한 박진 삼성경기공대위 활동가는 “삼성은 ‘초일류기업’, ‘또 하나의 가족’ 등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있지만 이미 다 들어났듯이 부패기업이며 노동자들을 탄압하는데 일등인 기업이다”며 문화제를 만들게 된 이유를 밝혔다.

삼성바로보기문화제에 함께 한 삼성SDI 부산공장 해고자 송수근 씨는 “노사협의회 위원이었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고 말했다. 삼성의 무노조 경영은 헌법에 보장되어있는 노동자의 기본권을 무참히 파괴하고 있었다. 그는 문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삼성공화국에 당당히 ‘아니다’를 외치는 순간에 대한 감회를 “몇 명의 노동자들의 싸움이 아니라 이렇게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모여서 싸운다면 우리는 삼성공화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밝혀지려다 사라지는 것들


5개월에 가까운 검찰 수사가 마무리 되고 결국 삼성의 승리로 ‘X파일’ 사태는 마무리되는 듯 보인다. 언제나 그렇듯이 대중의 머리 속에서 지워지기를 기다리며 삼성은 ‘또 하나의 가족’을 외치고 있다. 노회찬 의원은 검찰의 수사를 피해간 이건희 삼성회장을 주식회사 검찰의 다이아몬드 회원으로 비유했다. 노회찬 의원은 “주식회사 검찰의 다이아몬드 회원은 출국금지 면제되고 검찰 소환도 면제된다. 이건희 회장이 이에 속한다. 또 골드회원은 비공개로 조사하고 조사한 내용은 전부 다 진실로 인정되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에는 이학수, 김인주, 이회성 같은 사람이 있다”며 검찰의 수사결과를 비판했다.

그렇다. 자본의 세상 대한민국의 주식회사 검찰을 모시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먹고, 일하고, 살기 위해 필요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권리를 요구하다가도 연행되고 구속되고, 100만원도 안되는 월급 주면서 수 십 억 씩 손배가압류를 맞아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산다. 하지만 이건희를 비롯한 재벌들은 수천 억원 씩 해먹고 온갖 비리를 저질러도 쉽게 잘도 피해간다.

2006년 또 무엇이 밝혀지려다 사라질지 감히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