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민]의 푸른 산맥처럼
푸른 산맥처럼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굳세게 서 있고자 합니다. 오색의 나무와 맑은 물의 골짜기가 모여 산맥이 되듯 우리의 이웃과 함께 푸른 산맥이 되고 싶습니다. 맑고 깊으며 유장한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인들, 인종 청소와 인권 학대에 항거하는 침묵의 불침번
[김연민의 푸른산맥처럼] 검은 옷의 여인들
김연민 
2006년 겨울, 곡명은 이제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오리건 주립대학의 학생회관에는 만돌린의 경쾌한 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비록 짧은 점심시간 동안 학생과 교직원, 그리고 나처럼 지나가던 나그네가 각자 편한 자세로 겨울이 끝나가는 자락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음악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학생회관 입구에 차분하게 검은 옷을 입은 여인들이 한 줄로 도열해서 숙연한 분위기를 풍겼다.

음악회가 끝나고 연주자가 객석의 사람들과 포옹도 하고 악수도 한 뒤, 드럼, 북, 만돌린, 마이크, 스피커를 다 정리하여 가는데도 입구의 검은 옷을 입은 여인들은 요지 부동이다. 비로소 그들을 찬찬히 보았다. 7~8명의 여인이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꼿꼿한 자세로 도열해 있다. 다가가 보니 앞에 팻말이 하나 있었고 단아한 얼굴의 여인은 나에게 전단을 건네 주었다.

글의 내용은 비장하였으나 신선하였다.

“우리는 모든 곳에서의 전쟁과 탄압의 희생자에 대한 침묵의 연대를 위해 서 있습니다. '검은 옷의 여인들'은 전 세계의 전쟁, 전쟁의 수단으로의 강간, 및 인종 청소와 인권에 대한 학대에 항거하기 위한 침묵의 불침번을 위해 서 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말이 전쟁과 증오가 부른 비극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침묵합니다. 우리는 가장 좋은 뜻으로 말했어도,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와 가까이에서 폭발하는 폭음에 의해 지워지거나 들리지 않게 되는 공허한 말의 불협화음을 더하기를 거부합니다.

우리의 침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이 서 있을 여인을 초대합니다. 그들 자신만이 아니라 강제 수용소에서 강간, 고문, 살해된 여인과 사라져 버린 여인, 사랑하는 사람이 실종되거나 살해된, 그들의 집이 파괴된 여인을 되돌아 보기를 청합니다. 우리는 전쟁의 희생자, 인간, 자연 및 삶의 바탕을 파괴한 데 대한 슬픔의 상징으로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

.... 우리는 흐느끼기 때문에 검은 옷을 입었습니다. 우리는 수사학이 점점 진리를 조작하기에, 전쟁의 희생자, 폭력의 증식, 및 인간, 자연, 삶의 바탕에 대한 파괴에 대한 슬픔을 표현할 적절한 말이 없기 때문에 침묵하고자 합니다. (www.womeninblack.org)”

비록 삶 전체가 자본에 포섭당하고 전쟁을 숭배하는 매파가 헤게모니를 장악한 미국사회지만 그래도 여성 반전 평화운동이 전쟁을 반대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침략전쟁의 결과에는 관심조차 없을 듯한 사람들이 모여 음악을 즐겼지만 그래도 일말의 양심을 지닌 여인들은 반전 평화의 불씨를 지피기 위해 도열하고 있었다. 비록 수는 적었지만 침묵이 지닌 힘은 음악만큼이나 강렬하였다. 반전평화운동으로 검은 옷을 입고 침묵을 택한 것은 다른 어떤 방식보다 강력한 저항 수단이자 숙고 끝에 내린 투쟁 방법처럼 보였다.

전 세계의 평화와 인권을 위해서는 반전평화세력의 대오가 강해져야 하며 이들 대오는 나라 간의 연대를 통해 전쟁의 광기를 모성의 평화로 잠재워야 한다. 따라서 미국에 의해 긴장이 높아지며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 한순간에 무너져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는 한반도에서, 한국 여성운동도 기꺼이 '침묵의 연대'에 동참해야 할 것처럼 보였다. 겨울의 끝자락에서 만난 침묵의 메시지가 무겁게 나를 흔들었다.
김연민 님은 울산대 교수로, 참세상 고정칼럼 '김연민의 푸른산맥처럼'에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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