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로, 두 아이를 키우며 교육운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나도 아이와 통하고 싶다'가 있으며, 학부모의 입장에서 교육 문제 전반에 날카롭고 따끔한 진단과 처방을 내놓는다. 교육의 주체로 빠질 수 없는, 학부모의힘을 보여준다.
애들 밥, 국가가 빚을 내서라도 책임져라
[김정명신의 학부모의힘] 불량급식, 재벌기업의 한 단면
김정명신(함께교육) 
오늘 아침에 강남 엄마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당연히 수도권 최대 규모라는 식중독 사태가 화제였다. CJ푸드시스템이 위탁급식을 맡은 아이의 학교급식이 갑자기 중단되어서 엄마들이 부랴부랴 보온도시락을 사서 점심밥을 싸주느라 아침에 생난리였다는 것이다.

전국에 91개 학교, 9만 명에 대한 급식이 중단된다니 앞으로 직장다니는 엄마들은 특히 바빠질 것이다. CJ푸드시스템이 위탁운영하는 인근 개포동 모 여고 엄마들은 지난번에도 식중독사고 때문에 4개월 동안 점심도시락을 싸주었는데 최근 급식을 재개한지 며칠되지 않아 또 이런 일이 생겼다며 허탈해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지난 5월 22일, 충북의 모 초등학교의 급식 건 때문에 글을 썼는데 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급식을 주제로 글을 쓰고 있으니, 급식과 관련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식중독이란 불씨를 가슴에 안고 사는 심정이다.

현재 중고등학생들은 이른 등교로 아침은 거르기 일쑤인 데다 방과후부터 밤늦게까지 학원가를 전전하느라 저녁마저 부실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점심식사는 매우 중요하다. 식탁공동체가 점차 사라져가는 지금, 학생들이 친구들과 모여앉아 그 나마 패스트푸드가 아닌 밥과 국과 나물을 먹는 하루중 유일한 식사 기회이고, 공부 부담에서 잠시 벗어난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믿고 맡겼던 급식이 지금껏 저질 식재료, 위생 관리의 사각지대였다는 사실은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문제가 있으므로 해결책도 있는데 칼자루를 쥔 사람들은 돈을 핑계로 해결할 의사를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식중독이라는 인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학교 급식은 이유를 막론하고 직영, 우수농산물, 무상으로 이루어져야한다. 직영급식은 학교가 자체적인 예결산에 따라 영양사와 조리원을 고용하고, 단위학교 영양사가 구성한 급식식단에 따라 식자재를 구매하고 급식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때 정부는 전기료, 수도료, 양곡대금을 인하해서 경비를 절감토록 지원한다.

그러나 위탁급식은 외부업체에 이 모든 과정을 맡기는 것인데, 회사가 대단위로 식단을 구성하고 구매, 배급하는데 이때 영양사는 서무회계 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 현재 서울시 초등학교의 직영급식율은 100%인데 반해 중학교는 1.4%, 고등학교는 5% 수준이다. 이는 중학교의 전국 평균 직영급식률이 70%를 넘고, 고등학교들이 50%를 넘는 것에 비해 현격히 떨어지는 수치이다. 이에 비해 제주도는 100% 직영급식이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는가?

서울이 다른 지역에 비해 식중독이 특히 더 심한 이유는 서울시 교육청이 급식을 100% 빠른시간 안에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돈 안 드는 위탁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교육당국은 재정부족을 이유로 각 중고등학교마다 급식시설에 필요한 경비(8000만 원에서 1억 원까지)가 없다며 업자 측에 시설을 내맡겼다. 업자 측은 시설을 투자한 대신 3년동안 이윤과 시설비투자분을 챙겨서 나가거나 재계약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런 구조속에서 업자 측에서는 투자한 돈의 회수를 위해 인건비도 줄이고, 식재료비도 줄여서 부실급식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중고등학교의 대부분이 그런 실정이니 학교급식 식중독사고는 명백한 인재이다.

한편 급식업체 선정은 학교운영위원회를 통해 결정하게 되어있는데 급식업체 선정시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시식을 해보지만 결정 과정에서는 아무래도 대기업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나도 2~3년 전 학교운영위원을 하면서 급식업체 선정에 참여했는데 주변 학교를 맡은 위탁업체중 좀 낫다는 중소업체가 있었지만 대다수의 학부모가 표결 마지막 순간에는 ‘그래도 대기업’ 이라며 대기업 소속 업체의 손을 들어주었다.

학부모들의 무조건적 신뢰를 받는 대기업들이 학부모들의 신뢰를 무참히 깨뜨려버린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재벌기업은 차제에 급식사업에서 손을 떼는 것을 고려해 보아야한다. 재벌기업에 속한 급식업체들 역시 먹거리보다 돈벌이를 더욱 중시했기 때문이다.

순진한 학부모들은 재벌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인 학교급식에 손을 댔으면 이름값에 걸맞게 이익의 사회환원 차원에서 아무래도 좀 낫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지만, 대기업일수록 더욱 효율화된 시장 방식으로 위탁급식을 진행하여 학부모들의 기대를 배반해왔다. 그러다 결국초유의 식중독사고까지 일어났는데, 이처럼 불량급식 사태는 우리 재벌기업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요즘 먹거리에 대한 불안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가정의 식단은 선택이지만 적어도 우리 사회의 건전한 미래를 위해서 학교의 식단을 친환경 유기농산물로 바꿔야한다. 학교급식은 회사가 구성한 메뉴에 따라 재료가 이미 잘게 썰어져 포장되어 배달되므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든, 기피하는 음식이든 획일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한편 모든 식재료가 잘게 썰어져 배달되므로 국산인지, 중국산인지, 유전자조작 콩인지 아닌지, 수입 돼지고기인지 아닌지도 전혀 알지 못한다.

학부모가 번갈아 새벽에 급식 검수 당번을 나가더라도 오직 난감함만 앞선다. 지난번 서울시민은 10만 명이 급식지원 조례제정을 위한 서명을 하였으나, 현재 WTO와 상충된다고 하여 대법원에서 패소결정이 나 교착상태이다. 만약 현재의 급식을 친환경 ․ 유기 농산물로 바꾸면 급식 한끼당 500원 정도가 더 소요되고 1,540,000명(유․초․중․고 전체) 학생이 180일(연 급식일)을 먹으면 연 1,300억 원이 더 소요된다고 한다. 이를 서울시, 지자체, 학부모가 1/3 정도를 분담하면 연간 450억 정도가 더 들 것이다. 불량급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한 번 시행해 볼 가치가 있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지켜 본 바에 따르면 정부는 급식에 관한 한 다른 사안처럼 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끝까지 모르는 척 하는 것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다 자칫 급식사고가 생기면 대책을 마련한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결국엔 유야무야하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학교마다 아이들이 배아프다며 식중독 핑계를 대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비하라는 학교 측의 태도이다. 학부모들의 급식에 대한 꾸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교육당국은 이런 식으로 무관심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불량급식은 재발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한폭탄의 뇌관은 제거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교육비 감소를 위한 방과후 교육을 위해 채권발행도 서슴치 않는다고 선언했다. 정부가 빚을 내서라도 사교육 프로그램을 학교로 끌어들이고 있는데, 이젠 빚을 내서라도 국가가 책임지고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김정명신 님은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대표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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