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종]의 살아가는 이야기
오래도록 문학과 예술을 들여다보며 삶의 의미를 반추하려는 우리시대의 평범한 시민이자 시와 소설, 영화평론 등에도 관심이 있는 문학도. 세상은 마침내 어둠을 뚫고 빛을 향해 전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낙천주의자
잊혀진다는 것에 대하여
미안해하는 그들 얼굴을 보면서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김규종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다. 조금 전까지 다중 한가운데서 시끌벅적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잠깐 사이에 그들로부터 완전 망각되는 일이 더러 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곰곰 되새기는 것보다 어떻게 애초 출발지점으로 돌아갈 것인가가 더 종요로운 일이다.

며칠 전 예닐곱 사람이 점심을 먹으며 새로운 출판계획을 논의하느라 부산스럽게 오후 한나절을 보낸 적이 있다. 나를 태우고 왔던 승용차 주인은 오후 강의로 나보다 먼저 자리를 떴고, 나와 동행하지 않은 사람들은 원래 구성원들을 태우고 떠나버렸다. 부시게 푸른 하늘 아래 덜렁 혼자 남겨졌다.

걸음을 재촉해야 한다. 오후 일정도 그렇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은데다가, 두 주머니가 텅 비어있는 탓이다. 그렇게 되밟기 시작한 길에서 만나는 하오풍경은 새삼스레 아름다운 것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은 작은 공원과 소담한 뜨락은 걸어 다니는 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소중한 가치를 알겠는가.

그런데 일이 생기고 말았다. 북구 청소년회관 분수대가 눈에 들어왔다. 이젠 계절도 바뀌어 분수는 멈췄고, 바닥에 고여 있는 물도 야트막하였다. 거기서 넘실대는 잔물결과 구름장들과 하늘을 들여다보다가 생명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제법 덩치 큰 벌이었다. 녀석은 필사적으로 자맥질을 한다.

너른 호수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과 자그마한 분수대 안에서 힘겹게 날갯짓하는 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 것일까, 생각한다. 주변에서 느티나무 잔가지를 찾아서 벌의 운동방향 쪽으로 던져준다. 그때 바람이, 제법 센 바람이 분다. 나무와 벌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진다. 선택은 둘 중 하나.

구두와 양말을 벗고 물속으로 들어선다. 뜨뜻미지근한 물이 발을 간질인다. 생명은 벌만이 아니었다. 잠자리, 파리, 큼지막한 개미까지 모두 네 마리를 물에서 건져냈다. 파리는 물에 빠진지 오래인 듯, 이내 세상을 버렸고, 개미는 예의 힘찬 걸음걸이를 시작하였다. 참 강력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잠자리는 날개를 말려주어야 했다. 그 사품에 벌이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물론 둥지로 돌아갔을 터. 내가 걱정할 문제는 아니다. 제법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쥐오줌나무 관목 숲으로 데려다주었다. 거기서 오후 햇살과 선선한 바람으로 날개를 말리면 녀석은 어디론가 다시 비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제 나도 길을 떠나야 한다. 우주만물의 주재자가 있어 어디 멀리서 내가 하는 양을 보았다면, 그는 무어라 말했을까, 생각한다. 어린 생명들의 온존을 위한 작은 애씀에 대하여 어떤 표정을 지어보일까. 그와 나와 벌레들의 관계를 찬찬히 생각해보다가 피식 웃었다. 앞으로 남은 긴 여정을 생각한다.

그날 저녁 나절. 나를 두고 떠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누구도 내가 그들과 동승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다. 내가 있든 없든 그들은 주어진 일상에 충실하면서 오후 나절 몇 시간을 지냈던 셈이다. 미안해하는 그들 얼굴을 보면서 따뜻하게 웃어주었다. 다른 생명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더러 사람들에게 완전히 잊혀지는 일도 언제나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다. 그런 일탈과 부주의로 생겨나는 다른 관계들과 만남과 사유의 가능성이 존재하니 말이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원망보다는 희망 쪽으로, 고된 육신보다는 흐뭇한 영혼 쪽을 선택할 것이다. 아무런 후회나 주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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