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준]의 사회와 의료
한림대 의대 교수라는 직함보다도 민중의료연합의 회원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한국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알리고 의료의 공공성과 민중의료의 관점에서 이를 극복해 나가려고 한다. 청진기를 대듯 차분하고 진지한 고찰 속에서 문제를 진단하고, 메스로 수술하듯 거침없이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 직업은 못 속이는 것 같다.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철회 농성장에서
최용준 ychoi@hallym.ac.kr
국회의사당을 등지고 앞을 내다보면 왼편으로 십여 개의 천막이 늘어서 있다. 정기국회가 열린 지난 10월부터 하나씩 둘씩 늘어난 것이 벌써 이렇게 많아진 셈이다. 의사당 안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여전히 싸움박질에 몰두하고 있는 동안, 그들의 손 안에서 놀아나고 있는 법률들을 고치고 물리고 만들기 위해서 힘썼던 사람들이 국회 문 앞에서 힘겹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단지 천막을 치고 숙식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때로는 주장을 펼치는 크고 작은 집회를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항의의 표시로 단식을 감행하기도 하였다. 그 대열에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철회를 위한 농성단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11월 22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의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상정을 앞두고 <의료 공공성과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연대회의>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은 의료시장개방 투쟁(사실 그 본질은 개방 반대라기보다는 개방을 서곡으로 삼는 의료사유화 반대 투쟁이다)을 완강하게 벌이기 위하여 국회 앞 천막 농성을 결의하였다. 오후 집회에 이은 천막 설치 시도와 경찰의 저지, 그래도 그간 여러 부문과 단체에서 어렵게 하나 둘 쌓아온 농성 투쟁의 성과 덕에 농성 첫 날 밤 늦게 천막 설치에 성공하고 지금까지 농성 26일을 이어오고 있다.

그 사이 보건의료노조를 중심으로 국회 재경위 소속 국회의원들에 대한 지역구 항의 방문과 의견서 전달 등이 이루어졌고, 지난 12월 3일에는 이 싸움에 참여한 단체와 개인들이 모인 가운데 개정안 철회 의지를 다시 한번 드높였다. 이 자리에서는 보건의료노조 윤영규 위원장이 경제자유구역법 개악안을 들고 나온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삭발식을 단행하기도 하였다.

지난 12월 3일 경제특구법 개악안 저지 집회에서 삭발하는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윤영규 위원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싸움의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하반기 들어 운동 진영은 물론 시민 단체나 학계의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사유화의 물꼬를 터줄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는 허용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한참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전까지만 하더라도 양당은 정부의 개정안 통과에 합의한 상태였다. 민주노동당이 국회 밖의 운동 진영과 연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원내에서 문제 제기를 하고 있으나, 여전히 국회 안 논의에서는 종속변수의 지위 이상을 점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이 문제를 그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지 않고, 저지 내지 지연을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은 앞으로 싸움을 위해서도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과거, 우리 보건의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법률들의 제개정이 거의 대부분 임시국회에서 처리되었다는 점은 경제자유구역법 개정안 처리 역시 지연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비효율적”인 싸움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실제로 우리 손을 떠난 일을 가지고 농성 투쟁을 한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일까? 물론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투쟁도 운동도 사람이,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이 싸움은 바로 문제를 깨닫고 싸움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제도 오늘도 현재의 투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이 싸움에서 보다 뚜렷한 흔적을 남길 방안을 궁리하고 있다. 그 흔적은 다음 싸움에 마침내 승리할 투쟁의 밑거름이, 희망의 근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의료연대회의
* 민중의료연합 부경지부 소식지 <꽃을 던지고 싶다>에 수록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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