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출범한 WTO는 초기에는 다자간 무역 협력의 중심으로 주목받았으나, 협상 부진과 분쟁 해결 절차의 약화로 기능이 크게 제한되고 있다. 자유 무역 협정(FTA)의 확산과 미국의 보호주의 강화는 WTO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최혜국대우(MFN) 조항 등 핵심 원칙의 효력을 감소시켰다. 국제 무역, 에너지 전환, 디지털 혁명 등 글로벌 과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력의 필요성은 여전히 높지만, WTO는 지정학적 불안정 속에서 점차 소외되고 있다.
새해 첫날 뉴올리언스에서 발생한 트럭 테러로 최소 15명이 사망하며, 이슬람 국가의 영향을 받은 외로운 늑대 공격이 미국을 위협하고 있음을 다시금 보여줬다. 용의자인 참전용사 샴수딘 자바르는 이슬람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으며, 이는 급진적 온라인 선전이 개인을 급진화시키는 강력한 도구임을 입증한다. 이슬람 국가는 영토를 잃었음에도 온라인을 통해 폭력과 분열을 조장하며 서방 국가에 대한 위협을 지속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는 발언과 경제적·군사적 압박으로 캐나다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트뤼도 총리와 자유당 정부는 트럼프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며 캐나다의 취약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캐나다는 경제적·외교적 조치를 통해 주권과 정체성을 지키고 국제적 존중을 확보해야 할 시점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숙련 이민 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실리콘밸리 보수주의자들과 MAGA 지지자들 간의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엘론 머스크와 비벡 라마스와미는 기술 분야 인재 유치를 지지하지만, MAGA는 미국 노동자를 위협한다고 주장하며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분열은 트럼프의 이민 정책 실행 과정에서 연합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예고한다.
기술 억만장자들이 트럼프의 세금 감면과 규제 완화를 지지하며 암호화폐와 AI를 통해 노동자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로저 맥나미는 실리콘밸리의 제품들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권한을 부여하지 않고, 감시와 조작을 대가로 편리함을 제공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기술과의 관계를 재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AI와 암호화폐의 발전은 자원의 과도한 소비와 환경 문제를 일으키고 있으며, 대중은 이를 통제할 힘을 잃고 있다고 경고했다.
EPA는 하수 슬러지 비료에 포함된 PFAS(영구 화학물질)가 암과 선천적 결함 등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20년 전부터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홍보해왔다. 메인 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주와 연방 정부는 농장 비료로 사용되는 하수 슬러지의 PFAS 검사를 의무화하지 않았고, EPA는 대중 보호에 부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PFAS 문제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대응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규제가 후퇴할 가능성이 높아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험이 없으며, 이는 백인 우월주의의 역사와 건강보험 산업의 막대한 수익 구조에서 기인한다. 영리 보험사들은 막대한 이윤을 얻으며 의료 접근을 제한하고, 정치적 로비를 통해 제도 개혁을 가로막고 있다. 캐나다처럼 전국민 의료보험을 도입하면 가계 파산을 줄이고 비용 절감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산업계와 억만장자들의 반대가 큰 걸림돌이다.
2024년은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가 붕괴하고 기존 정치 체제가 흔들리는 가운데 극우 세력이 부상한 한 해였다. 영국, 미국, 독일 등 주요 국가에서 기존 주류 정당은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고, 정치적 불확실성은 전례 없이 심화되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 독립 지지와 같은 특정 아이디어가 희망의 신호로 나타나며, 새로운 비전을 통해 재건의 가능성을 모색할 여지가 남아 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임기는 경제적, 정치적 제약 속에서 야심 찬 변화를 추구했으나, 인권과 에너지 정책에서 일부 성과를 거둔 반면 노동자와 중산층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며 신자유주의적 방향 전환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정책은 냉전 완화와 글로벌 평등을 지향했지만, 국내에서의 긴축과 규제 완화, 노동계급을 강화하는 데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많은 유권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카터의 임기는 노동자 계층의 민주당 이탈과 공화당 부상을 촉진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정치적 전환의 시발점이 되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임기 중 캠프 데이비드 협정 체결 등 평화 조성과 인권 증진에 앞장섰으며, 퇴임 후에도 카터 센터를 통해 39개국에서 선거를 모니터링하고 기니흡충병 퇴치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그는 개인 외교를 통해 북한, 리비아,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등에서 중재 역할을 했으며, 국제적 평화와 민주주의 증진에 헌신했다. 카터의 인권 중심 외교 철학은 현대 외교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업적은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