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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작 : 민중언론 참세상
북에 쌀 백 가마니를 보낸다는 계획을 밝혔다.
백 소장이 북의 어머니를 그리며 쓴 어린 시절 이야기 <부심이의 엄마생각>(노나메기, 2005) 판매금이 지난 3년 동안 모이고 모여 쌀 백 가마니가 된 셈.
길만 열리면 직접 개성까지 쌀을 가지고 가고 싶다는 백 소장은,
"여러분들이 이렇게 새뜸(소식)을 전하면 간다 못 간다 말이 있겠죠. 제발 못 간다는 말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안타까운 어조에도 강한 의지를 담았다.
우리는 오늘 저 북쪽에 쌀을 좀 보내기로 했습니다.
많이는 못 보내고 한 백가마를 보내고자 합니다.
돈은 저희들이 지난 삼년동안 노동자들에게 특강을 할 적마다 <부심이의 엄마생각>이란 책을 거의 어거지로 팔아 한 푼도 안 쓰고 모아두었던 것이 있었거든요.
그것을 탈탈 털었습니다. 어머니에 관한 책값이니 어머니한테 되돌려 드리는 셈입니다.
저는 쌀이 떨어지는 아픔을 눈물 나게 겪어본 사람입니다.
또 집안에 쌀이 떨어진다는 것은 결코 가난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댓살 적 저녁밥은 아니 지으시고 맹물만 끓이시기에 밥 좀하라고 앙앙 울었더니 어머니 말씀이었습니다.
“부심아(백기완의 어릴 적 덧이름), 이참은 우리만 밥을 못하는 것이 아니구나. 밥 못하는 집이 많아. 이러한 때 제 배지만 부르고 제등만 따스고자 하면 너 키가 안 커. 너 어서 어른이 되고 싶질 않어. 그러니 배고픈 것쯤은 참아야 돼.”
‘뭐, 제 배지만 부르고자 하면 키가 안 큰다고.’
겁이 더럭 나 윗목에서 쿨쩍이는데 어머니께서도 나를 안고 우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안타깝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우리 쌀독에 남은 좁쌀 한 옴큼을 박박 마저 긁어 갖고는 이웃으로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우리 집에선 밥은 없고 다만 콩국 한 사발과 상추쌈으로 끼니를 때웠더랬지요. 어찌나 속이 쓰리던지….
그때가 떠오르자마자 그저 울컥. 그래서 이렇게 나선 것입니다.
쌀 백 가마, 우리 팍내(부부)로 보면 백년을 먹을 낟알이요, 우리 연구소로 보면 한해 예산에 맞먹습니다만 요깐 푼돈으로 저 북쪽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안맴(미안)하고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이러질 않고선 배길 수가 없었습니다.
이웃의 일맘(인정)은 그 어떤 깨우침보다도 더 맑고 그 어떤 목숨보다 더 세다는 말이 있질 않습니까.
그런데 이웃이 아닌 것들의 쌀이 어찌 인정이겠습니까. 아니라고 여겨지고 무엇보다 먼저 우리겨레 안에서 인정이 일기를 바라는 뜻에서 우리는 이 쌀 백가마를 손수 메고, 지고, 이고 개성터거리까지만 갖다 주고자 합니다.
길만 열리면 이삼일 안에 가져가고 싶으니 이 눈물 겨운 발길을 막지 말기를 바랍니다.
2008년 5월 19일
통일문제연구소 대표 백기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