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자가 없는 세상

[집중이슈 : 맹세야, 경례야 안녕](11) - 밀양 밀성고 교사 이계삼 님

언제부터인지는 정확치 않지만, 아마 군 제대 뒤로부터 저는 국기 경례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참 역설적인데, 군대에 있으면서 ‘양심’이란 것에 대한 자의식이 생긴 것이지요. 그리고, 교직에 들어서고 나서도 다른 일은 어찌어찌해서 참고 넘겼지만 국기 경례만큼은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김선일이라는 젊은이가 참혹한 죽음을 당하고, 전용철, 하중근 아저씨, 그리고 홍덕표 할아버지가 백주대낮에 우리가 낸 세금으로 옷과 장비와 도시락을 대 준 바로 그 공권력에 의해 맞아 죽은 뒤로부터는 납세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국기 경례만큼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리는 이런 옹고집을 그러니까 한 용렬한 소시민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해도 될 겁니다.

만약, 어떤 의식 들머리에 국기 경례가 아니라, 제가 존경하는 권정생 선생이나 사상가 이반 일리치 선생이나 그 누구라도, 그분들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서 가슴에 손을 얹고 무슨 무슨 맹세의 다짐을 하게 한다 해도 저는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께 제가 바치는 존경은 극히 내밀한 양심의 영역입니다. 누구도 제게 그걸 공중이 모인 자리에서 공식화된 표준을 들이대며 의식의 한 일부로 제도화하여 강요할 권리는 없는 것입니다.

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한 존재에게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의 위엄에 대한 감각입니다. 자신이 존엄하다고 믿을 때, 자신보다 더 크고 높은 것에 대한 감각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세상이 그렇지 못합니다. 어릴 때부터 죽을 때까지 잘 모르거나, 확신하지 않는 일에 대해, 혹은 심지어 자기 양심에 반하는 일에 대해서까지도 수없는 맹세와 충성을 강요당합니다(사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시키는 종교 교육도 교육적으로 온당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교육 속에서 아동은 끊임없이 무언가에 대해 반성(하는 것처럼) 해야 하고, 무언가를 사랑(하는 것처럼) 해야 하고 연민(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반성과 사랑과 연민을 ‘언어’로써 표현해야 합니다. 학교 교육이 아이들의 삶에 끼치는 근원적인 해악이라면, 바로 이런 부분입니다.

그러나, 여기까지도 봐줄 만합니다. 실은 인간의 교육 자체에 이런 폭력적인 요소가 내재해 있었으니까요. 문제는 ‘국가’라는, 우리의 경우 ‘공화국’이라는 헌법상의 이념과는 아무 상관없이 친일의 주구들과 그 자식들이 만들고 이끌어 온, 이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충성을 아주 이른 나이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강요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 충성을 바칠 한 대상으로 국가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저는 국가에 대한 충성을 부정하지만(물론 이건 제 양심의 영역이니깐 그 이유를 대라고 강요하진 말아주세요), 모두가 저와 같을 수 없기 때문에(세상 사람 모두가 저 같다면 그곳은 이미 지옥이겠지요),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찌됐건 국가에 대한 충성은 훈련되거나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귀납되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국가의 실체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충분히 제공받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자신이 속한 국가의 부끄러운 과거까지, 현재 범하고 있는 혼란과 과오까지 포함됩니다. 한 개인이 교섭하는 가장 큰 삶의 테두리인 국가에 대한 자기 판단은 그 공동체의 존립과 건강에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 대한민국은 전혀 그렇지 못했지요. 국기 경례와 국기에 대한 맹세의 역사가 상징적으로 드러내듯 그것은 맹목적인 충성과 단결의 의식 뒤에 자신들의 피 묻은 손을 감추어야 했던 지배자의 저급한 책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요즘 젊은 애들이 애국심이 없다고, 너무 ‘자기’ 밖에 몰라서 큰일이라고 개탄하는 어른들이 적지 않을 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 나라에 애국자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애국자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분들이 말하는 애국심의 정체도 되게 궁금합니다. 진정한 애국자라면, 이를테면 이라크 파병이 있을 때 국익이니 어쩌니 하면서 파병을 떠들 게 아니라, 그렇게 파병을 해서라도 국익을 수호하고 싶으면 자신이 직접 파병되든지, 혹은 (자신의 일부라고 믿고 있는) 제 자식을 보내면 될 일입니다.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고 늘상 말하는 분들이 아니던가요. 또, 실제로 역사 속 수많은 이들이 그런 방식으로 국가에 대한 자신의 충성심을 표현하지 않았던가요.

저는 아이들이 자기가 존엄한 존재임을 알고, 양심의 소중함을 아는 존재로 자라났을 때 그 공동체가 살만한 곳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제발일랑 애국심을 강요하진 말아주세요. 유치원 꼬맹이 시절부터 애국심을 드러내서 표현하고 맹세하게끔 이끌지 말아주세요. 이런 분들께 읽어 드리라고 얼마 전 돌아가신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님이 생전에 남긴 아름다운 시가 있답니다. 이 시를 같이 음미하면서 두서없는 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애국자가 없는 세상

이 세상 그 어느 나라에도
애국 애족자가 없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해
동족을 위해
총을 메고 전쟁터로 가지 않을테고
대포도 안 만들테고
탱크도 안 만들테고
핵무기도 안 만들테고

국방의 의무란 것도
군대훈련소 같은 데도 없을테고
그래서
어머니들은 자식을 전쟁으로
잃지 않아도 될테고

젊은이들은
꽃을 사랑하고
연인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무지개를 사랑하고

이 세상 모든 젊은이들이
결코 애국자가 안 되면
더 많은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살 것이고

세상은 아름답고
따사로워질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계삼 님은 밀양 밀성고 교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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