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십계명과 국기에 대한 맹세 수정문

[집중이슈 : 맹세야, 경례야 안녕](12) - 청소년인권활동가 아치 님

시나이 산에서 모세는 하느님께서 손수 돌 판에 쓰신 증거 판 두 개를 받는다. 성서에 따르면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고, 그 판에 새겨진 글자도 손수 새기신 것이라 한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히브리인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춤추고 경배하는 우상숭배에 격노하여, 감히 하느님께서 직접 만드신 증거 판을 내던져 깨뜨린다.

이 얼마나 불경한 짓인가? 그런데도 신은 모세에게 벌을 내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모세의 형 아론이 모세에게 “이 백성이 얼마나 악에 젖어 있는지 당신도 잘 알지 않는가?”라고 말한 대로, 히브리인들은 신의 진리를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을까?

그런데 신이 자신의 노동을 통하여 스스로 돌 판을 깎고, 그 판에 손수 글자를 새겼다는 히브리 성서의 주장은 납득할 만하다. 히브리인들은 지금껏 이집트의 노예로 자신들의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살아왔고, 히브리라는 말 자체도 사막을 떠돌며 날품을 팔아 살아가는 ‘먼지투성이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그들은 신 역시 자신들과 똑같이 노동을 하는 존재로 여겼으며, 이레에 하루씩 쉬라는 노동해방의 정언명령을 내리는 절대자로서 신에게 경배를 드렸으리라.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신은 증거 판에 어떤 언어로 사람들이 지켜야 할 계명을 새겨 넣었을까? 천지를 창조할 때 쓰셨던 <“빛이 있어라.” 말씀하시니 빛이 생겨났다.>는 그 거룩하고 황홀한 ‘말씀’이었을까? 아니면 히브리인들이 쓰는 인간의 언어였을까? 신이 말씀(Logos)으로 계명을 주셨다면 이는 인간에게 아무 쓸모없는 일이다. 어찌 하찮은 인간이 절대자의 언어(또는 문자)를 읽고 이해할 수 있겠는가? 만에 하나라도 인간이 신의 언어를 알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신성모독으로, 그는 바로 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아직 자신들의 문자를 갖지 못한 히브리인들에게 신은 전능하게도 미리 그들의 문자를 보여주신 걸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어떻게 인간의 불완전한 언어로 신의 완전한 진리를 담는다는 말인가? 이는 콩으로 메주를 쑤어서도 안 되고, 팥으로 메주를 쑤어서도 안 되는 형용모순(形容矛盾)의 사태다.

따라서 모세가 들고 내려온 두 개의 증거 판은 사실, 존재의 다른 이름인 ‘무(無)’이다. 언어가 존재와 일치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신에게만 가능하거나 실낙원 이전의 아담에게만 허락된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언어로 진리를 가두려는 모든 시도는 헛되고도 헛되다. 그렇기에 그는 돌 판을 깬 것이기도 하고 깨지 않은 것이기도 하기에, 아무런 징벌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모세는 다시 시나이 산에 올라 신의 말씀을 돌 판에 옮겨 십계명을 손수 기록한다.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하게 알아들은 신의 말씀을 불완전한 인간의 문자로 새긴 것이리라. 아마 ‘십계명 수정문’으로 불러도 되리라. 당연히 율법을 완성하려 한 예수는 십계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 아예 맹세를 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 마태오복음 5:34

그러나 신보다 더 위대한 대한민국은 ‘국민’에게 국기(국가)에 대한 맹세를 강요한다.

행정자치부 의전 팀 정현규 팀장은 ‘국기에 대한 맹세’ 존폐 논란이 일자 “다시 한 번 국민의 뜻을 물어보자”며 여론조사를 벌였고, 75.0%의 ‘국민’이 ‘맹세’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을 보였기에 “폐지한다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뜻을 행정부가 거스르는 것”이라 말한다.

언제부터 정부가 ‘국민’의 의견수렴에 목을 맸는지는 몰라도, 이는 한 마디로 엉터리다. 입법부는 ‘대한민국 국기법(國旗法)’ 본법의 법률에서는 빼되 신중한 과정을 거쳐 시행령에 넣을지 여부를 결정할 것을 정부에 당부한 바 있다. 그런데도 단 한 번의 토론회나 공청회도 없이 맹세문을 그대로 시행령에 처넣었다가 문제가 되자, 신중하게(?) 세 가지 맹세 수정문 예시안을 던져놓고 여론몰이를 한 것뿐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가 논란이 된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공론화하는 공론의 장이 선행되었어야만 한다. 공론화 없이는 수십여 년을 ‘국민’으로 호명되어온 사람들에게 자신을 ‘국민’으로 키워온 ‘맹세’가 무엇이 그리 큰 문제이겠는가? 시청자도, 시민도, 노동자도, 여성도, 청소년도 없이 오직 ‘궁민(窮民)’만 있는 나라…. ‘국민 여동생, 배우, 가요, 은행’이 판을 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 소중한 ‘국민학교’를 왜 초등학교로 바꾸었는가? 정부는 기껏 ‘국민학교’라는 껍데기는 벗어버리고도, ‘국민’을 만드는 ‘맹세’라는 고갱이는 끝내 버리지 않겠다는 것인가?

히브리인들이 목숨을 걸고 이집트의 억압에서 탈출했다고 하더라도, 광야에서 그들은 곧 우상숭배를 벌여 모세의 진노를 사고 만다. 그렇다면 이는 히브리인들의 추악한 종족적 특성을 말하는 걸까? 아니면 자유를 담지 할 수 없는 인간 본성의 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이 배신(背信)이 아닌 배교(背敎)를 한 이유는 바로 예언자로서 모세와 제사장으로서 아론이 신의 진리를 독점하였기 때문이다. 스스로 진리와 교통할 수 있는 민중의 귀와 혀를 막아 맹세를 강요하고, 모세와 아론은 진리를 형식 속에 가두어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치할 수 있는 통치성을 지닌 히브리인들을 통치의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광야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 되기 위해서는 탈출이 중요한 게 아니라, 단지 해방만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그들의 몸에 문신된 낡은 상징질서를 스스로 비판할 수 있을 때만이 진리 또는 변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지배 이데올로기의 언어로 꾸며진 상징 질서를 뒤집어쓴 먼지투성이 ‘국민’이 독재의 억압에서 탈출했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의 광야에서 ‘국민’은 여전히 ‘국기에 대한 맹세’라는 우상숭배를 벌이고 만다. 이는 국가가 국가주의의 이름으로 진리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과 소수자의 통치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단지 주어진 해방뿐만이 아니라,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할 수 있을 때만이 올곧은 변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행정자치부는 6일 “<국기에 대한 맹세문 검토위원회>가 국기에 대한 맹세문 수정안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고 밝혔다. 수정문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그러나 ‘자유롭고 정의로운’ 같은 문구를 집어넣는다고 해도 이는 말장난, 언어의 유희일 뿐이다. 자유와 정의 개념을 국가가 규정하고 독점한다면, 이는 결코 진리가 아니라 폭력이라는 것을 미국의 충성 맹세에서 보지 못했는가? 정말로 미국이 맹세에서 지껄여지듯이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와 정의를 가진 국가’인가?

또, ‘충성’의 사전적 의미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한 개인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을 어떻게 강요된 ‘맹세’의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가? 혹시 행정자치부의 관리들은 가족 간의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아침마다 자녀들에게 ‘효의 맹세’를, 배우자에게는 ‘사랑의 맹세’를 선창하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차라리 이런 맹세문은 어떤가?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너(국가)를 용서하지 않겠다!” - 달의 요정 세일러 문
덧붙이는 말

아치 님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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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하면 한다고?

    노동자의 생존권보다 이윤 창출을 우선시하는 사용자는 악덕업주다!
    매장 매출액 감소 원인이 악덕업주의 비정규직 해고임에도 손배운운하다니!
    만약 감언이설로 현실을 모면하려한다면 그 책임까지 악덕업주가 져야한다.
    집회를 하지 않으면 교섭을 하겠다는 발상도 틀린 것이다.
    교섭을 하기 전에 비정규직 해고를 먼져 취소하는게 당연한 순서다.
    결자해지라는게 바로 이런 경우를 말하는 걸 왜 악덕업주는 모를까?

  • nan

    달의 요정 세일러문에 한표!

    국민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요 ?.
    되려 국가를 위해 맹세를 하라 하다니
    일본과 미국 과 한국만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한다고 합니다.

    이젠 좀 그만할때 되지 않았나요 ?..흠 ..
    답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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