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기획연재를 마치며

[기획연재] 비정규직 사회헌장(20)

비없에서는 모두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권리를 모두 18개 조항으로 압축하여 기획연재를 했습니다. 그 18개의 조항은 그저 문자로 쓰여있을 뿐이지만 그 안에는 많은 이들의 치열한 투쟁과 눈물과 고통과 삶이 녹아있습니다. 우리가 ‘사회헌장’을 통해서 그 눈물과 고통의 기억들을 다시 살리고자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권리의 부재가 당연하게 여겨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도 그 권리없음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본의 이윤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권리는 자본의 이윤을 침해하는 것이므로 언제라도 제한할 수 있는 것, 때로는 당연히 제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모든 노동자는 안정되게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 일하는 이들은 일회용품이 아니고 사람이며, 일을 통해서 생존을 영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이야기합니다. “모든 노동자는 우리가 쓰고 싶을 때 쓰고, 버리고 싶을 때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유연화 논리입니다.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유연화가 허용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지는 나라에서 ‘해고를 제한하자’는 말은 대단히 급진적인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런가요? 기업이 노동자를 고용하여 이윤을 얻고자 한다면 당연히 그 노동자들의 삶과 생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은 너무나 많은 이들이 수용해버린 논리,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는 ‘유연화가 필요하다’는 그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모든 노동자들은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 속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해고하고 계약해지하고, 혹은 재계약을 하지 않는 행위의 문제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내가 원래 2년 계약했으니, 나는 2년 후에 나가야지’라는 그 인식을 ‘상시적으로 필요한 일에 2년 계약을 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라는 것으로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단지 ‘안정적으로 일할 권리’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조건에 대해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합니다. 일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많은 이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일에 대한 결정권한을 모두 빼앗기고 소위 ‘비핵심적인 업무’, 혹은 ‘부수적인 일’이라고 취급받으면서 일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일’을 하는 모든 이들이 주눅들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있습니다. 모든 노동자는 ‘생활할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저임금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이 비합리의 장벽을 깨야 합니다.

그런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이런 차별과 권리박탈이 여러 가지 이유로 정당화됩니다. 때로는 인적속성, 즉 여성이니까, 장애인이니까, 노인이니까 비정규직이어도 되고, 그러니까 임금이 작아도 된다는 식으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는 일에 대한 평가, 즉 중요한 일인가 아닌가 등으로 정당화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일자리가 없어서 경쟁이 치열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조금만 기다리면 정규직이 될 것이니까 하는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권리를 박탈합니다. 하지만 그 주장의 이면에는 각종 차별과 혐오가 깔려있고, 그것을 다시 들춰보면 이런 차별을 조장함으로써 거대한 이윤을 획득하는 대기업들이 보입니다.

지난 10여년의 세월동안 투쟁해왔던 이들은 이 당연한 권리들이 원래 우리의 것임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많은 이들이 나서지는 않고 있습니다. 권리는 누가 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나서도록 하려면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 ‘정상적’인 것이 아니라 ‘부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자신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우리는 ‘사회헌장’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사회헌장’운동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사회헌장이 그럴듯한 문구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이 헌장이 투쟁하는 이들에 의해 고쳐쓰여지고, 더 많은 이들이 더 많은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더 많은 조항들이 생겨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권리영역이 더욱 넓어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공장에서, 편의점에서, 대형마트에서, 공공기관에서,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이 있는 곳 그 어디든지에서 부당함을 인식하기 시작하고 그에 맞서 싸우고자 하는 이들이 더 많이 생겨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물결에 여러분도 함께 해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위한 사회헌장

오늘 우리는 더 이상 침해될 수 없는 노동자의 권리를 선언한다.

더 많은 착취를 위해 노동자의 권리를 없애려는 자본의 욕망을 부추기는 비정규직 체제로 인해 모든 노동자는 불행하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차별과 고용불안으로 고통받는 노동자, 해고되어서 이전의 관계로부터 강제로 단절되어버린 노동자, 일자리를 구하면서 불안정한 노동을 반복하는 노동자,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빼앗겨버린 이주노동자, 그리고 영세한 자본구조 때문에 안정적인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영세사업장 노동자, 이 모든 불안정 노동자들의 삶은 점차로 힘들어진다. 정규직이라고 하더라도 불안정한 노동이 확산되는 현실에서는 계속 해고위협과 노동조건의 하락 압박,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경쟁으로 인해서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힘들다.

경쟁으로 관계는 파괴되고, 차별로 노동자의 자부심은 무너지며,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으로 인간 존엄성이 훼손된다. 이런 현실을 변화시키려고 나서는 순간 계약해지라는 이름으로 해고되고 생존의 위협에 시달린다. 노동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경쟁하거나 침묵한다. 이런 침묵 속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무너져갔다.

비정규직 체제 안에서 우리가 노동자의 권리를 선언하는 것은 이윤보다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복원하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일하는 이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선언함으로써, 큰 힘을 갖고 있지만 침묵과 순응으로 비정규직 체제를 용인해왔던 우리의 비겁을 벗어버리고자 한다. 자신만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나서며 정작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는 이들을 우리는 믿지 않는다. 노동자의 권리는 스스로의 투쟁으로만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의 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길을 연 전태일 열사의 정신과, 죽음의 길 끝에서도 비정규직 철폐의 의지를 놓지 않았던 비정규직 열사들의 의지를 따르겠다는 선언이다.

오늘 우리가 선언하는 안정된 노동의 권리, 자신의 노동조건을 스스로 지키고 만들어나갈 권리,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유지하고 공동체의 삶을 누릴 권리는 노동자 모두의 권리이며 함부로 침해당할 수 없는 권리이다. 비록 비정규직 체제로 인해 갈라지고 때로는 반목하기도 하지만 모든 노동자는 권리를 향한 도정에서 단결하고 연대할 수 있음을 안다. 일하는 모든 이들이 연대할 수 있다면,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의 발걸음은 단지 일부 노동자들이 정규직이 되는 데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노동자들이 권리가 존중되고, 모든 이들이 평등하게 노동하며, 자율적인 노동과 타인과의 협력을 만드는 세상으로 나아갈 것이다.

1. 안정된 고용은 노동자의 권리이다. 해고에 대한 두려움이 삶을 파괴한다. 계속 일하기를 원한다면 누구라도 계약해지 당하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한다.

2. 차별은 노동자의 존엄을 파괴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직무나 고용형태, 성별과 국적, 연령을 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되며, 특정한 성과 연령을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아서도 안 된다.

3.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이유로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일의 자율성을 빼앗아 시키는 대로만 하게 하거나, 보조업무만 하게 하거나 다른 이들의 일을 함부로 떠넘겨서도 안 된다.

4. 진짜 사용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 노동자를 고용해서 이윤을 얻으려는 자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하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이들은 사용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

5. 권리를 찾고자 하는 이들 모두가 노동자들이다. 특수고용노동자, 문화예술노동자, 가사노동자, 실업자와 구직자, 해고자 모두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단결하고 투쟁할 권리가 있다.

6. 누구나 생활할만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다. 최저임금이 생활할만한 임금으로 인상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은 최저임금을 넘어서는 임금을 받아야 한다.

7. 노동시간에 대한 권리가 있어야 한다. 적정한 휴가와 휴식시간을 누리고, 원하는 시간에 일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회사가 원하는 시간에 맞춰서 살 수는 없다.

8. 노동자는 죽지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권리가 있다. 유해하고 위험한 업무는 안전장치를 해야지 비정규직을 투입하면 안 된다.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언제라도 작업을 중지할 수 있어야 한다.

9. 건강을 위협할 정도의 장시간 노동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죽음을 부르는 야간노동과 24시간 노동, 강제잔업과 특근은 없어져야 한다.

10. 공간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는 업무에 필요한 공간이 있어야 하고, 쉴 공간도 있어야 하며 밥 먹을 공간도 있어야 한다. 그 공간에서 노조 활동도 할 수 있어야 한다.

11. 호칭은 그 노동자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이름을 부르거나 반말을 하거나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된다.

12. 노동자는 노동권에 대해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자신의 업무와 고용과 관련한 각종 정보를 제공받고 노동통제구조에 개입하고 바꿀 권리가 있다.

13. 근로기준법과 사회보험은 노동자 모두에게 적용되는 권리이다. 근로기준법이나 사회보험 적용에 제한을 두어서는 안 된다. 실업을 당했을 때 실업부조도 제공되어야 한다.

14. 일자리를 구하고자 할 때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받을 권리가 있다. 민간파견업체에 돈을 내지 않고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고용안정센터 등 공적인 고용서비스를 확충해야 한다.

15. 고의가 아닌 모든 손실비용은 사용자가 책임져야 한다. 과적벌금, 손해비용을 노동자들에게 함부로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납제도도 없어져야 한다.

16. 노동자는 풍요로운 문화생활을 누릴 권리가 있다.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17. 비정규직도 스스로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동조건의 향상을 요구하고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고 교섭하는 모든 권한은 비정규직 노동자 스스로에게 있다.

18. 노동자들은 위계와 경쟁을 거부하고,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과 단결하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정치적으로 나설 권리가 있다. 이것은 어떤 이유로도 제한되거나 형사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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