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알은 양이요 하늘을 닮았고 모난 판은 음으로 땅을 뜻한다는 바둑은 왜 가로-세로 각각 19줄일까요? 오랜 시간 많은 사람들이 여러 판을 두다보니 가장 맞춤한 형태로 되어서 그럴까요, 아니면 어느 정도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일까요? 19×19=361로 1년 365일을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바둑판의 숫자는 단순히 경험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기보다는 애초부터 의식적으로 설계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한의학은 어떨까요? 약물이나 처방은 단지 경험의 산물일 뿐이요, 경맥이나 경혈도 기공을 수련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것일까요?
고대왕조들은 천문을 관측하고 역법을 만들며 토지를 측량하고 도량형을 정하는 데에 사활을 걸었는데 야만에서 벗어나야 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집단과의 경쟁에서도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4000년 전쯤에 황하 강 유역의 치수에 성공하여 하 왕조를 열게 되었다는 우왕의 이야기는 이런 사실의 일부이며 이러한 관측이나 계산, 측량이나 기록에는 수학이 필수적인 수단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가뭄이나 홍수, 지진이나 해일 등 자연 현상의 내재적인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역사적인 한계로 ‘천체의 운행에 근거하여 인사(人事)의 길흉을 추측한다’는 천인상응(天人相應)의 세계관은 뿌리 깊은 미신의 터전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한의학에서는 일찍이 “귀신을 들먹이는 사람과는 의학을 논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상대적으로 변수가 적은 인체에서는 주술적인 행위와 의학적인 치료의 결과적인 차이가 쉽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끈이론을 이끈 어느 물리학자가 “어떻게 원리를 알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수학이 이끄는 대로 따랐을 뿐이다”고 답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음양오행, 오장육부, 십이경맥, 삼백육십경혈 등 한의학 개념과도 떼래야 뗄 수 없는 수(數)는 현대의 물리학만이 아니라 고대의 한의학 이론을 세우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구구단 외우던 기억, 나시지요? 원래 낯선 일은 다 어려운 법이지만 그래도 외우기 쉬운 몇몇 단이 있었지요? 홀수, 짝수 왔다 갔다 하는 홀수 단보다는 짝수, 짝수로 건너가는 짝수 단이 더 쉬웠겠지요. 2단과 5단을 외우는 것이 특히 수월했는데 왜 그럴까요? 2와 5가 10의 약수이기 때문이겠지요. 2나 5로 나누면 에누리가 없이 떨어지기 때문에 계산하기가 편한 까닭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기수(基數)가 10이 아니고 12였다면 구구단이 아니라 십일십일단과 씨름해야 했겠지만 2, 3, 4, 6이 모두 12의 약수이기 때문에 외우기 쉬운 경우도 두 배나 늘어납니다. 2밖에 크지 않지만 (1과 자신을 제외한) 약수가 두 배나 많은 12진법을 기수로 쓴다면 그만큼 다양한 셈을 빠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낚싯대를 두 배 많이 가진 낚시꾼처럼 말입니다.
수학적으로도 유리하고, 시계나 달력 등 일상에서 쓰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2진법이 아니라 10진법을 일반적으로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손가락이 다섯 개, 양쪽 합해서 열 개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이가 처음 수를 익힐 때 자신의 손가락을 이용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요? 꼼지락거리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신비스럽기도 합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면서 닫히고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에서 열립니다. 고대인들이 수를 발견하고 셈을 할 때도 손가락이 결정적인 도구로 쓰였으며 그 수가 열이라는 사실, 그것이 10진법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를 상징으로 하여 한의학 체계의 한 축을 이루는 오행(五行)이 사행이나 육행이 아니라 꼭 오행인 이유도 고대인들이 천문과 지리를 연구할 때 10을 기수(基數)로 썼기 때문이며, 음양 둘로 십을 나누면 오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행 관념은, 존재란 관계를 맺음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으며 또 존재란 운동(변화)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관계식입니다. 목은 화, 화는 토, 토는 금, 금은 수, 수는 목을 낳는다는 상생관계를 표현합니다. 또 수는 토, 토는 목, 목은 금, 금은 화, 화는 수에 의해서 죽는다는 상극관계를 표현합니다. 시간이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장마철로 나뉘고, 공간이 동서남북과 중앙으로 갈리는 것이 다 관계 속에서의 변화인데 그 규율이 오행이라는 것입니다.
오행 이론은 사물의 존재 원인이 사물 자체에 있으며 상생(相生)과 상극(相剋)의 대립을 통해서 변화한다는 유물론적이면서도 변증법적인 세계관의 표현임에는 확실합니다. 다만 그 규율이 5인가라는 점은 증명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나의 손목, 발목에서 다섯 개의 손가락, 발가락으로 나뉘고 인삼의 잎이나 무궁화 꽃잎도 다섯 장씩이지만 모든 생명체의 여러 기관을 따져보면 오히려 예외적인 경우일 것입니다.
10진법이나 12진법과 같은 수의 체계가 한의학에도 도입됨으로써 인체의 각 장기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장과 육부가 되고, 경락도 12경맥, 360경혈이 되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한의학은 이론과 체계를 갖춘 하나의 학문이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끼워 맞추기를 해야 했습니다. 12경맥을 설정하고 이와 짝할 6장6부를 만들어 내야만 했으니 장부라고 하기에는 실체가 없는 심포(心包)와 삼초(三焦)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축구를 하려면 축구공이 필요하고 옷도 바늘이나 베틀이나 방직기로 짜듯이 과학은 과학적인 도구를 전제로 합니다. 진화론조차도 화석원료를 쓰는 근대적인 교통수단이 없었다면 다윈이 한평생 각지를 탐방하여 여러 표본들을 비교대조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혈압계나 혈당측정기, MRI나 내시경이 없었던 한의학은 오늘날에 평가한다면 한계이면서도 유산이기도 한 자신의 방법을 갖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근대과학적인 도구를 갖지 못한 한계 속에서 한의학은 신비로움을 벗고서도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을까요? 자본이 연구하는 이론만이, 자본이 결정하는 기준만이 유일한 ‘의학’이 된 오늘날, ‘다른 의학’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과학적인 발견조차도 누구의 소유권이며 어느 회사의 특허권이 되는 사회에서 인간과 자연, 모두를 위한 의학은 가능할까요? 선원이 흑인노예들이었던 배를 타고 다닌 다윈이 노예제도를 반대했다는 사실이 그의 이론만큼이나 아름다워 보입니다.
* 참고
<<신비로운 수의 역사>>, 조르쥬 이프라 지음, 김병욱 옮김, 예하 출판
<<음양오행설의 연구>>, 양계초, 풍우란 외 지음, 김홍경 편역, 신지서원
- 사진
-
서울 우울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비문명의 역습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미디어택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녹색스트라이크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99%의 경제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워커스 상담소
- 연정의 르포
- 여성, 노동의 기록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