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해결 열쇠는 금융제재 해제"

[기고] 재개된 6자회담, 계속되는 북미 공방

6자회담 재개, 그러나 뚜렷한 성과 남기지 못하고 휴회

12월 18일부터 22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는 2단계 5차 6자회담이 열렸다. 이번 회담은 6자회담 의장국인 우다웨이 중국 측 수석대표의 발언대로 ‘9.19공동성명 전면 이행을 위한 구체적 조치와 공동성명 이행의 초기조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6자회담은 가시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했고, 다음 회의일정도 잡지 못한 채 휴회되었다.

이번 6자회담이 눈에 보이는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핵심 걸림돌은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의 북한계좌 동결 해제’ 문제였다. BDA 문제가 터진 이후 ‘선 금융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북한과 ‘선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하는 미국의 팽팽한 대립이 중국의 중재로 6자회담이 재개되었지만, BDA 문제에 대한 북미간 평행선은 유지되었다. 즉 북한이 BDA 문제 해결(금융제재 해소)를 6자회담 논의의 전제로 삼는 반면, 미국은 9.19공동성명 이행 문제와 BDA 문제는 별개 문제라는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이번 6자회담은 그 어떤 가시적 성과를 내오지 못한 것이다.

왜 여전히 BDA가 문제가 되는가?

BDA 문제는 이번 6자회담의 핵심 이슈가 될 수밖에 없었다. 2005년 제 4차 6자회담에서 북의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9․19공동성명’이 합의되었지만, 미국은 성명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북이 마카오에 있는 BDA를 통해 위조달러지폐를 유통시키고 마약 등 불법 국제거래대금을 세탁한 혐의가 있다”며 BDA 북 계좌에 있는 2천400만 달러를 동결시켰다. 미국은 금융제재조치라는 대북압박정책을 통해 ‘9․19공동성명’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것이다.

북한은 반발했으나 미국은 ‘불법활동에 대한 정당한 법집행’ 논리로 나왔다. BDA 문제를 풀기 위한 북한의 대화요청(위폐문제 해결을 위한 합동협의기구 설치)마저도 ‘불법행위는 협상대상이 아니다’란 논리로 번번이 거절하였다. 이에 북한은 미국의 이런 태도를 북미관계정상화를 뒤엎는 행위라고 판단하고 2006년 7월 미사일 실험 발사에 이어 10월 핵실험이라는 강공책을 밀고 나갔다.

북한은 핵보유국이란 지위 획득을 통해 북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점함과 동시에 미국의 대북공격에 대한 군사적 억지력 확보라는 이중의 전략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 이로써 2006년 3차 북핵위기가 터졌으며, ‘선 6자회담 복귀’를 주장하는 미국과 ‘선 금융제재 해제’를 주장하는 북한간의 대립은 계속 격화되었다.

이런 대립 와중에 10월 중국 탕자쉬안의 중재로 한미 양국은 6자회담 재개에 합의하였다. ‘선 금융제재 해제냐 - 선 6자회담 복귀냐’를 둘러싼 북미간의 팽팽한 대립 속에서, ‘6자회담 재개과 함께 BDA 문제를 논하는 별도의 북미실무협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양국이 타협․절충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타협에도 불구하고 BDA 문제는 쟁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즉 북의 핵실험에 대한 유엔의 제재결의 이행작업이 별다른 성과없이 지지부진한 상태 - 대북제재위원회는 상임이사국들의 이견으로 기본 운영지침도 마련못한 상태이며, 제재이행방안 보고서를 제출한 나라는 전체 192개 회원국 중 45개국에 불과함 - 에서, 대북제재의 핵심은 미국의 대북제재이며, 그 중심에 BDA문제가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대북제재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협상(대화)가 재개되었다는 2단계 5차 회담의 특징이 BDA 문제를 둘러싼 북미간 대립을 불러온 것이다.

BDA를 둘러싼 북미간 입장 차이, 그러나 협상은 이후 하기로 약속

6자회담 재개합의를 통해 북미양국은 타협점을 찾았지만, 북한은 BDA 문제 해결을 6자회담에서 다뤄질 논의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웠다. 반면 미국은 BDA 문제는 북핵 문제와는 다른 별개의 법적 문제라는 입장을 계속 고수하였다. 이는 회담 진행 중이나 회담 후에도 북미 간 책임공방의 주요 이슈가 되었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BDA 문제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BDA에 동결된 자금은 북한에게 적은 자금이 아닐뿐더러, 금융제재와 6자회담은 별개의 문제라는 미국의 논리는 대북 적대정책을 계속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는 12월 22일 김계관 북측대표가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신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며, “미국은 제제 해제에 대한 행동적 조치 없이 우리의 핵시설 가동중단, 검증을 요구했다” 비난한 데서도 드러난다.

50년 넘게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시달려오고 ‘제네바합의’나 ‘9․19공동성명’이 미국에 의해 파기되는 과정을 봐왔던 북한의 입장에서 선 금융제재 해제는 9․19 공동선언 이행에 대한 미국의 의지를 확인하는 시험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통해 이전보다 협상에서 유리한 지위를 확보했다고 판단하는 북한으로서는 BDA문제는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금융제재 해제를 논의와 합의의 출발점으로 삼는 북한의 입장을 수용하는 것은 북한에 대한 굴복이 된다. 미국은 줄곧 BDA는 ‘불법행동에 대한 법적 이슈’라는 논리 아래 북한의 주장을 무시해왔다. 또 6자회담 진행 중에도 ‘유엔의 대북제재결의는 이행되는 것’(메코맥 국무부 대변인)이고 강조하면서, 대화재개에도 불구하고 ‘제재’ 무기를 거둬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측 대표인 힐 차관보 역시 6자회담 진행 중 “북한이 두 가지를 뒤섞고 있어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이런 양국의 입장 차이는 이번 6자회담에서 서로 다른 해법으로 드러났다. 미국이 ‘북한이 핵 폐기 조치를 수용할 경우 BDA 문제에 대한 단계적․탄력적 조치(합법계좌 해체 등)를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면, 북한의 경우 ‘BDA 동결 계좌를 해제하면 영변원자로 가동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입국 허용보장’ 등 일부조치를 수용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회담 전 쟁점이었던 ‘선 금융제재 해제냐, 선 6자회담 복귀냐’란 북미 간 쟁점이 6자회담에서는 ‘선 금융제재 해제냐, 선 핵폐기냐’로 변동되면서, 6자회담의 성패를 가를 핵심 쟁점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북미 양국은 실무협의를 끝내면서 2007년 1월 중 다시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하는 것으로 협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는 금융제재 문제에 대한 북미간 타결을 위한 일정한 동력을 확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실무협의 대표로 오광철 조선무역은행 총재를 보내면서전문적․실무적 협상자세를 보인 점이라든지, 미국대표인 글레이저 재무부 차관보가 “이번 협의가 실무적이고 유용했다”고 평가한 것에서도 이는 드러난다.

6자회담이 BDA 문제로 파행을 겪었지만, 이를 논의할 북미간 협의 메카니즘을 만드는 과정에 놓여있어 BDA 협상이 완전 결렬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미국이 합법계좌와 불법계좌를 구분하고, 합법계좌에 한해 동결을 해제하는 기술적 논의가 이뤄졌을 수 있음이 미국언론에 보도된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북핵 폐기와 상응조치를 둘러싼 이견 드러나

이번 6자회담의 핵심은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 시점에서, ‘북핵 폐기와 체제 안전보장 및 경제적 지원을 어떤 내용과 과정을 거쳐 할 것인가’를 둘러싼 합의도출, 특히 초기단계 이행 조치에 대한 합의 가능성 여부였다.

여기선 두 가지가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우선, 앞서 살펴본 BDA 문제였다. 두 번째는 북이 핵 활동을 중단(폐기)했을 경우,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보장조치에 대한 서로 다른 계산이다. 미국은 핵 폐기를 위한 4단계 과정(동결-신고-검증-폐기)과 이에 따른 상응조치 내용을 북측에 제시했는데, ‘동결 단계’에서는 ‘서면화된 체제안전 보장과 종전협정 서명 등 안전보장’ 조치를 제공하며, ‘신고 단계’에서 ‘인도적․경제적 지원을 제공할 수 있다’는 안을 제출했다 한다. 북한은 이런 미국의 제안에 대해 BDA 등 제재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핵포기 논의는 있을 수 없다며 입장표명을 유보하였다.

단 북한은 BDA 문제 외에 현존 핵계획 포기(신고 및 검증) 단계에서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즉 ‘핵 포기를 향한 조선의 초기 행동조치에 대한 미국의 상응조치는 알맹이가 빠져있다’는 재일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의 보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이 제출한 상응조치는 북한이 보기에 모호하거나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 미국이 파격적 제안은 아니지만 공식협상에서 구체적인 상응조치를 제시함으로써 전례 없는 협상의지를 강하게 보이고, 중국이 사안별 워킹그룹 가동을 제안하며, 남한이 단계별 패키지 방식 등을 제출하는 등, 다양한 안이 제출되었지만, 결국 BDA 문제와 핵동결(폐기)에 따른 북미 양국의 서로 다른 계산법이 대립하면서 합의 도출에 실패하였다.

6자회담에 대한 엇갈린 전망, 그러나 6자회담 틀은 깨지기 힘들어

6자회담이 합의도출 없이 휴회되자 6자회담의 의미와 전망에 대해 각국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회담 재개와 진전을 위한 토대를 닦았다’는 중국 쪽의 평가나 “차기회담에서 실질적 진전을 이루기 위한 정지작업을 하는 일종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는 한국 천영우 수석대표의 발언은 낙관적 평가에 속한다.

그러나 미국와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6자회담 회의론․무용론이 나오고 있다. “핵보유국을 선언한 북한의 핵무기 포기를 가까운 장래에 설득하는 어려움 더욱 커졌음”(뉴욕타임즈), “외교적 접근방식의 효용성이 종착점에 도달했을 가능성에 직면”(워싱턴포스트), “국제사회가 결속해 유엔결의를 이행하는 것이 중요”(아베신조 일본 총리) 등이 대표적 예이다.

이런 대비되는 전망은 자신의 주관과 희망도 섞여 있지만, 2단계 5차 6자회담의 성격과 지형을 볼 때 당연하다. 회담이 가시적인 합의를 내오지 못했지만, 그 어떤 참가국도 당분간 6자회담 판을 깰 수 없는 지형이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은 6자회담 재개로 핵실험으로 빚어진 국제적 비난과 고립, 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북한이 고대하던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였다. 또한 금융제재 문제를 미국과 내년 1월 별도로 논의키로 함으로써 금융제재 해제의 기회를 마련했다. 미국으로서도 사실상 유엔 안보리 결의가 유명무실화된 상태에다 북한을 압박할 더 이상의 수단이 없다.

물론 북의 핵시설 공격카드가 있으나 이는 남한과 중국 등의 반대와 이라크와 이란 등 중동지역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쓸 수 있는 카드가 아니다. 특히나 중간선거에서 패배한 부시행정부로서는 북한의 핵보유를 방기한 대북정책이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진 상태라, 6자회담 틀을 깰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6자회담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금물

그러나 6자회담이 이후 실질적 합의와 합의에 대한 이행의 동력을 확보할 것인가에서는 낙관적 전망을 기대하기 힘들다.

우선, BDA 타결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이의 일차적 분기점은 내년 1월에 열릴 BDA 금융협상 결과가 될 것이다. 이는 BDA 자금 중 합법자금 규모를 적시하고 이의 동결을 해제하는 것이 타협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BDA 문제가 타결되더라도 북의 핵동결(폐기)와 미국의 상응조치를 둘러싼 단계설정과 내용을 둘러싼 북미간의 이견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핵 프로그램 동결을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보다 많은 양보를 받아내려는 북한과 최대한 대가를 적게 주면서(또는 주지 않으면서) 북의 핵프로그램 동결을 요구하는 미국 간의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이뤄질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북의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의 동결과 폐기 외에, 북의 핵무기 보유가 핵실험으로 실증된 상황에서, 핵무기 폐기 문제가 기존 쟁점에 덧붙여져 협상을 더욱 지루하고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핵프로그램 뿐 아니라 핵무기 완전 폐기를 겨냥하지만, 북한은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분리하면서 협상에 임할 것이다. 22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김계관 북한 수석대표가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분리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현 단계에서는 현존 핵계획 포기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완전히 철회하고 신뢰가 조성돼 핵위협을 더는 느끼지 않을 때 가서 핵무기 문제는 논의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이 이를 시사한다. 18일 기조연설에서도 김계관 대표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의 최종목표’라고 전제하고 “조건이 성숙되지 않은 현 단계에서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고자 할 경우 핵군축회담 진행요구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즉 북한은 미국의 대북적대 장치 철폐 등 조건 성숙 전까지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버릴 생각이 없으며, 핵무기 폐기와 관련해서 미국에 더 큰 양보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6자회담의 전망을 열어갈 첫 열쇠는 미국의 금융제재 해제

6자회담의 이후 전망을 볼 때, 합의에 이르는 길도 멀고, 합의 이후에도 제네바합의나 9.19공동성명이 그러했듯이 이행동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의 문제도 여전히 남는다. 게다가 북미 양국은 6자회담틀을 유지하면서 각각 시간벌기를 할 수도 있다. 북한은 6자회담 재개를 통해 제재 강화를 중단시키면서 2008년 대선이후 보다 유리한 상대와 협상하는 것을 목표로 할 수 있고, 미국으로서는 6자회담틀을 만들어 놓아 북한의 추가핵실험을 일단 막아놓은 상태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적극적 해결보다 무시정책으로 나가는 한편 그 책임을 북한을 덮어씌우면서, 북핵문제를 빌미로 한 동북아 패권유지정책을 고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재개된 6자회담은 북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3차 북핵 위기를 제재와 대결국면에서 ‘협상국면’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협상과 합의의 앞길이 순탄치 않다는 점에서, 6자회담의 전망을 낙관할 수 없다. 6자회담의 이후 전망을 판가름할 1차 분수령은 2007년 1월에 열릴 북미간 금융실무협상이 될 것이고, 차기 회의의 날짜와 내용은 금융실무협상 결과에 의해 규정될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북핵 문제 해결의 일차적 열쇠는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현재는 금융제재 해제가 관건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덧붙이는 말

장혜경 님은 노동자의힘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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