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호 교수 담당 재판부, 성대거나 삼성이거나

왜 사법부는 성대 출신 판사들을 고집했을까

김명호 성균관대 전 교수에 대한 동정과 지지 여론이 계속되고 있다. 사건이 터졌을 초반과 달리 여론의 화살이 석궁을 쏜 김명호 교수가 아닌 오히려 사법부를 정조준하고 돌아서고 있다. 김명호 교수의 저항이 단순히 박홍우 부장판사 개인에 대한 ‘테러’가 아닌 사학, 재벌 그리고 사법권력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권력동맹과의 싸움이었다는 시각이 힘을 얻고 있다.

사실 이번 석궁 사건의 직접적 피해자로 알려진 박홍우 부장판사는 성균관대나 삼성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인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995년 이후 김명호 교수의 소송을 담당했던 과거 재판부의 면면에 적지 않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미 알려진 대로 김명호 교수가 성균관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사법부는 이미 1996년과 1997년 두 차례 모두 성균관대의 손을 들어주었다. 또 10여년 만에 이어진 두 차례의 소송에서 역시 김명호 교수는 모두 패소했다. 10년을 두고 이어진 총 네 차례 소송에서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은 무려 10여 명에 이른다.

10년 전 패소 판결 주역들, 삼성SDI 이사로, 대법관으로 ‘go go'

김명호 교수가 최초로 법원에 교수지위확인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1995년의 일이다. 그리고 다음해 7월, 사건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27부 장준철 부장판사는 김명호 교수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당시 장준철 부장판사는 “(부교수 승진 심사)에서 연구실적심사위원회의 제 1, 2 차 심사결과는 원고의 주장과 같이 부당한 것이었다”며 김명호 교수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보복성 논문 심사를 간접적으로 인정했지만, “성균관대 정관 및 인사관리 규정들에 정하여진 승진 임용요건을 모두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장준철 부장판사는 이후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고, 김명호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법적 투쟁에 들어간 2005년 즈음에는 삼성SDI 사외이사로 재직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김명호 교수는 1996년 8월, 서울고등법원에 즉각 항소했다. 역시 패소, 당시 사건을 담당한 서울고등법원 민사11부 재판장은 현 양승태 대법관이었다. 양승태 대법관 역시 당시 판결문에서 “심사 과정에서 김명호 교수가 주장하는 부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피고 법인의 내부적인 심사결과에 불과하며, 교수 임용은 성균관대 법인의 전적인 자유재량에 맡겨져 있다”고 성균관대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10년 만의 ‘나홀로’ 소송, 상대 변호사도 담당 판사도 모두 ‘성균관대’

도미했던 김명호 교수가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성균관대를 상대로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은 지난 2005년 초. 김명호 교수는 지난 2005년 3월 3일, 성균관대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교수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성균관대 출신 이혁우 판사가 부장으로 있는 민사 23부였다. 당시 김명호 교수의 사건은 ‘노동’으로 분류되어 있었지만, 법원은 사건을 ‘건설’ 전문 재판부인 민사 23부에 배당했다.

또 당시 피고인 성균관대 측 변호를 맡고 있었던 법무법인 일신 소속 이재원 변호사는 이혁우 부장판사와 성균관대 법대 동문이었다.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을 진행했던 김명호 교수는 성균관대 출신 변호사를 상대로 논리싸움을 해야 했고, 또 성균관대 출신 판사에게 성균관대 당국의 부정을 입증해야만 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균관대 측이 김명호 교수가 제기한 소장에 대한 답변서를 법적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는 등 재판을 지연시켰지만, 담당 재판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현행 민사소송법에서는 피고가 원고가 제출한 소장을 송달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답변서를 제출하여야 한다. 결국 2005년 5월 2일 김명호 교수는 신속한 재판을 위해 변론기일을 지정해달라는 기일지정 신청서를 제출하고서야 성균관대 측은 답변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소송 결과는 역시 패소. 같은 해 9월 21일, 이혁우 판사는 “(성균관대의) 재임용 거부 결정은 피고에게 주어진 재량권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 적법한 것”이라고 김 교수의 청구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상훈 부장판사, 5개월 간 재판 진행 미루다 형사 5부로 전보

김명호 교수는 곧바로 2005년 9월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했고, 사건은 민사 14부에 배당되었다. 당시 재판장은 서울대 법대를 나온 이상훈 부장판사로 대법원 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연구심의관, 광주지방법원 부장판사, 대전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을 두루 거쳤고, 지난해 8월부터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 부장판사로 있다.

그러나 재판 진행은 이혁우 부장판사 때 보다 더 더뎠다. 변론기일지정 신청서를 두 차례나 냈으나, 재판은 진행되지 못했다. 성대측은 해를 넘겨 2006년 2월이 돼서야 이재원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으로 선정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이상훈 부장판사는 2006년 2월 13일자로 민사 14부에서 형사 5부로 전보됐다.

이상훈 부장판사, 삼성 에버랜드, 론스타 사건 논란의 핵심 인물

주목할 점은 이상훈 부장판사가 옮겨 간 형사 5부는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이 배당된 부서였다는 점이다. 이상훈 부장판사는 2006년 7월 열린 삼성 에버랜드 관련 항소심 공판에서, 전환사채를 발행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씨에게 헐값에 넘겨 에버랜드에 손해를 입힌 혐의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허태학, 박노빈 전 현직 에버랜드 사장에 대해 “1심 판결에 논리적 비약이 있다”며 이례적으로 검찰에 보강 증거를 요구하는 석명권을 행사해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에 대해 아직까지 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한편, 이상훈 부장판사가 민사 14부에서 형사 5부로 전보될 당시 대법원 인사실장은 이상훈 판사의 친동생인 이광범 판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광범 판사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최측근으로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지냈고, 현재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실장으로 있다. 또 이용훈 대법원장,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이상훈 부장판사는 모두 광주일고 출신이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경우 2005년 9월 대법원장 취임 한 달 전까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사건의 삼성 에버랜드 측 변호를 1년 7개월 남짓 맡은 경력이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관련 1심 재판에서 “전환사채 저가 발행은 배임죄가 아니다”고 변론했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혐의를 모두 인정, 유죄를 선고한 바 있다.

특히 이상훈 부장판사는 론스타 주가조작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잇따른 영장 기각으로 법원과 검찰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 해 11월, 민병훈 영장전담부장판사, 박영수 대검 중수부장,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 등과 함께 사적인 자리에서 이른바 ‘4인 회동’을 열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법조비리로 구속된 조관행 전 부장판사도 거쳐

짧은 기간이었지만, 김명호 교수 사건을 담당한 민사14부의 재판장 중에는 법조비리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관행 전 부장판사도 있었다.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지난 해 2월 대전고법 수석부장에서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옮겨 온 직후 1주일 동안 김명호 교수 사건을 담당했다.

조관행 전 부장판사는 법조브로커 김홍수 씨로부터 사건 청탁 명목으로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지난 해 12월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한편, 당시 법원은 조관행 전 부장판사의 뇌물수수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청구한 조 판사 부인의 금융계좌 압수수색영장을 기각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김명호 교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조관행 판사에 대해 “조관행 판사는 서울고법부장으로 승진하자마자 내 사건에 대해 재배당 신청을 냈다”며 “워낙이 썩은 판사라 돈 생기는 일도 없고, 골치만 아프겠다 싶은지 재배당 대상으로 분류한 듯하다”고 밝혔다.

“29명 중 유일하게 1명이 성대출신인데, 또 성대라니...”

조관행 전 부장판사의 재배당 신청으로 김명호 교수의 사건은 2006년 2월 27일 민사 26부로 재배당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성균관대 출신이 부장판사로 있는 재판부였다. 전문 분야 역시 ‘노동’이 아닌 ‘건설’이었다.

김명호 교수는 조관행 전 부장판사가 재배당 신청을 내자, 또 성균관대 출신이 재판장으로 있는 부서에 배당될 것을 대비해 2006년 2월 23일 대법원 총무과에 ‘진정인의 (노동)사건이, 민사 제26부에(건설 전문, 성대출신 강영호 부장판사) 재배당되지 않을 까 하는 우려’를 담은 진정까지 제출한 상태였다.

당시 서울고등법원 민사부에는 건설, 환경, 지적재산권, 노동, 의료, 교통산재 등을 담당하는 총 29개 재판부가 있었고, 이중 건설 전문 민사 26부의 강영호 판사만이 유일하게 성균관대 출신 부장판사였다.

김명호 교수는 이에 곧바로 재판부에 법관기피신청을 냈다. 그는 이 법관기피신청서에서 “민사 제26부의 전문 분야인 건설도 아닌, 신청인의 노동사건을 26부에 배당해야 할 특별한 사유가 없고, 1심 담당 부장 판사인 성대출신 이혁우 판사로부터 이미 범죄적 부당 판결을 받은 바 있다”며 “재판의 공정성을 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제서야 법원은 김명호 교수의 사건을 박홍우 부장판사가 있는 민사 2부로 배당했고, 이후 10개월 만인 지난 1월 12일 최종 판결이 나온 것이다.

김명호 교수 사건의 판결문을 쓴 이정렬 판사는 최근 ‘김명호 교수의 학자적 자질은 인정하나, 교육자적 자질은 부족했다’며 판결의 정당성을 강변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구성원들은 되묻는다. 김명호 교수의 교육자적 자질에 대해서가 아니라 법의 칼자루를 휘둘러 온 그들의 ‘판사적 자질’에 대해서. 대한민국 사법권력이 이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2006년 2월 당시 서울고등법원 민사부 부장판사 출신학교]

1[교통산재] 유○○ - 서울대
2[노동] 박홍우 - 서울대
3[교통산재] 황○○ - 서울대
4[지적재산권] 주○○ -서울대
5[지적재산권] 조○○ - 건국대
6[건설] 윤○○ - 서울대
7[환경] 조○○ - 서울대
8[환경] 김○○ - 서울대
9[의료] 이○○ - 서울대
10[국제거래] 이○○ - 서울대
11[노동] 김○○ - 서울대
12[상사] 박○○ - 서울대
13[언론] 최○○ - 서울대
14[교통산재] 조관행 - 서울대
15[노동, 부활] 김○○ - 서울대
16[상사] 정○○ - 서울대
17[의료] 박○○ - 서울대
18[상사] 김○○ - 서울대
19[국제거래] 김○○ - 서울대
20[교통산재] 안○○ - 서울대
21[교통산재] 이○○ - 서울대
22[교통산재] 한○○ - 서울대
23[가사] 심○○ - 서울대
24[가사] 이○○ - 서울대
25[항고] 길○○ - 한양대
26[건설] 강영호 - 성균관대
27[건설] 정○○ - 서울대
28[건설] 이○○ - 서울대
29[항고] 홍○○ - 서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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