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투쟁이다.”

[어서 와요, 소소부부네] 평범한 직장인 게이의 일상 투쟁기

  성소수자 인권운동 뿐 아니라 노동운동에도 진심인 평범한 직장인 게이, 오동지 [출처: 소소부부]

지난 5월 말, 소소부부는 행성인 회원인 ‘오동지’의 초대로 여수에 놀러 가게 됐다. 오동지는 여수 화학 산업 회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다. 회사 노조에서 최초의 사무직 노조원이기도 한 그는, 활동명에도 ‘동지’를 붙일 정도로 노동 운동에 관심이 많다. 한 편 그런 그는, 회사에서 커밍아웃을 실천하고 고민하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소소부부는 특별한 그의 이력에 관심을 보이며 ‘성소수자 노동자’ 오동지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소주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오동지 2013년에 여수에 와서 평범하게 직장 생활하고 있는 게이입니다.

오소리 오동지는 주변에 커밍아웃을 많이 했죠?
오동지 그렇죠. 커밍아웃에 대한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고, 그런데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한테 그렇게 친화적인 환경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전략적으로 했죠.

소주 어떻게요?
오동지 독립해서 나 혼자 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고 판단될 때 커밍아웃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죠.

성소수자 중에 커밍아웃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의 비율은 82%나 된다고 한다. 커밍아웃했을 때 상대방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이 두려움의 감정은 단순히 추측에 의한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듣고 때로는 직접 경험한 수많은 실례에 입각한 감정이다. 집에서 쫓겨나거나 학대당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괴롭힘이나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거나 심할 경우 해고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성소수자들은 커밍아웃에 앞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그중 하나가 경제적인 자립이다.

오동지 그런데 이제 연습은 해야 하니까 독립하기 이전에도 친구들, 지인들, 주변 어른들한테 먼저 커밍아웃했고, 이제 마지막으로 가족에 하기 전에 직장에 했죠.

오소리 직장에서는 언제부터 커밍아웃했어요?
오동지 2013년도에 입사하고 1년이 지난 후부터 했죠.

소주 회사 직원들한테 다 한 거에요?
오동지 다 한 건 아니죠. 아직도 못한 사람이 있어요. 우리 회사가 화학 산업 회사다 보니까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고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가 사무직이라 주로 사무실 동료들한테 했죠. 직급으로 가장 높은 사람한테 한 건 부사장. 사장한테는 제가 게이라는 뉘앙스를 줄 만큼까지 얘기하긴 했는데 무시당했죠.

오소리 어떻게 얘기했는데요?
오동지 우리 회사가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까 회사 강령 원문에 ‘성정체성으로 차별하지 아니한다.’라 고 정확히 적혀 있어요. 그런데 이걸 한글로 번역하면서 ‘성적 취향’으로 해버린 거죠. 취향이랑 정체성은 완전 다른 말이잖아요. 그리고 이게 성소수자들에게는 굉장히 민감한 사안이잖아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이걸 바꿔 달라고 얘기했는데 무시하더라고요.

소주 그래도 그 정도로 회사에서 커밍아웃한 것도 대단한 것 같아요. 어떤 계기로 커밍아웃하게 된 거예요?

일터는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주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지만, 성소수자들은 이러한 주된 삶의 공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로, 성소수자 노동자의 86%가 일터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1, 청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최근의 조사에서도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폭력이나 위협, 괴롭힘이 걱정돼 정체성을 드러내기 꺼리는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에 ‘직장(66.3%)’이라는 응답이 가장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1

오동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처럼 얘기하는 게 싫었어요. 한 번은 직장 상사가 저한테 왜 결혼을 안 하냐고 묻더라구요. 그때는 그냥 여자 많이 만나봤는데 내가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얘기했는데, 사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였는데, 이 이야기의 절반은 거짓인 거죠.

오소리 커밍아웃에 앞서 걱정이 들진 않았어요?
오동지 당연히 걱정하긴 했죠. 그런데 커밍아웃할 당시 2014년이면 아직 젊을 때니까, 문제가 생기면 다른 곳에 취업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평생 이렇게 살래? 바꿔볼래?’ 했을 때, 바꾸는 걸 택한 것이고,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 했을 때, 그럼 다시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소주 회사에서 커밍아웃했을 때 기억에 남는 반응들 있나요?
오동지 먼저 나빴던 경험은, 커밍아웃했더니, 그거 하면 에이즈 걸리는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굉장히 화를 낸 기억이 있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검색만 해도 아닌 거 딱 나오는데 기사 좀 찾아보시고 얘기를 하라고. ‘에이즈의 원인이다’라는 말과 ‘취약하다’는 말은 완전히 다른 거고 그렇게 얘기하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설령 그렇더라도 우리가 사람인 이상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 게 맞지 않냐고 막 그랬죠.

오소리 좋았던 반응은요?
오동지 제가 존경하는 부장님이 있는데, 이분이 제가 먼저 커밍아웃한 다른 직원이랑 얘기를 하다가 제 정체성을 알게 됐나 봐요. 사실상 아우팅이긴 한데, 어쨌든 저한테 갑자기 술 먹자고 부르더니, 내가 누구한테 그렇다고 들었는데 맞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그렇다고 했죠. 그랬더니 그 분께서, ‘그동안에도 아이들 돌보고(오동지는 보육원과 결연을 맺고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 10여 명에게 정서적·금전적 지원을 10년째 이어오고 있다), 직장에서도 이런 일도 하고 저런 일도 하는 거 보면서 후배인데도 존경스럽고 대단하다고 느낀다’고 얘기하시는데,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소주 그러니까 그 분에겐 성정체성이 사람을 판단하는 가치 기준이 아닌 거네요. 그 분한테는 어떤 사람의 선행이 그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이네요.

  함께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우리는 동지다. 왼쪽부터 오동지, 소주, 오소리. [출처: 오동지]

오소리 그 외에는 또 어떤 반응들이 있었어요?
오동지 커밍아웃 들었을 때, “그래.” 그게 끝. 별로 반응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저는 그게 좀 정상이라고 봐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반응이. 처음에는 ‘응원해, 파이팅’ 이런 반응이 좀 고마웠는데, 이제 하다 보니까 너무 그러는 거는 좀 별로더라고요. 한 번은 친구한테 했는데 새벽 2시에 전화 와서는 갑자기 자기 소신을 얘기하면서 ‘그래, 차별 받지 말아야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얘기하는데…. 아니, 이게 틀렸다는 건 아니고 고맙긴 한데, 너무 오버스럽긴 하죠. 너무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 되겠지만, 연애 이야기 하고, 사는 이야기 하고, 커밍아웃이 그냥 스몰토크로 이어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소주 회사에서 커밍아웃을 많이 한 편인데, 이후에 바뀐 게 있어요?
오동지 회사 사무실 사람들이랑 재미로 게이 관련된 농담 같은 거 하고. 대화가 자유로워졌어요. 편하죠. 당당해지고.

성소수자 노동자가 일터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으려면 제도적 변화뿐 아니라 성소수자에게 지지적인 태도를 가진 직장동료의 존재가 절실하다. 일터에서 전면적으로 성소수자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지지적인 일부 직장동료들에게 커밍아웃한 성소수자는 안정감을 가지고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반면, 일터에서 성소수자임을 완전히 밝혔더라도 직장동료들이 성소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다. 청년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성소수자가 직장생활을 잘할 수 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요소가 '커밍아웃을 할 수 있는 분위기'(61.6%)라고 답하기도 했다. 구체적인 정책에 앞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분위기를 가장 필요한 요소로 꼽은 것은 일터에서 함께 하는 직장동료와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 성소수자들에게 일터 내 지지기반의 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오동지 사무실 분위기는 편해졌는데, 노동조합에서는 과제가 여전히 있긴 하죠. 노조가 어떤 사회적인 면에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거든요. 특히나 이런 소수자의 입장이라든가, 별로 관심이 없죠.

오소리 맞다, 회사 노동조합에서도 활동하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노조 가입 계기가 있었어요?
오동지 노조 가입은 5년 전에 했습니다. 계기가 있었는데, 회사 임원 중에 한 분이 폭언을 자주 했어요. 저한테도 했고. 그 말이 듣기 싫어서 가입했고, 그 이후로 그런 언어폭력이 사라졌죠. 그게 첫 번째였고 이제 두 번째 목적은, 우리 회사에 엄청나게 많은 복지가 있는데 제가 게이이다 보니까 받을 수 있는 복지가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 걸 바꾸고 싶었던 거죠. 예를 들면, 자녀 등록금 무상 제공, 배우자 병원비 무상 제공 등이 있는데 제가 받을 수 있는 게 너무 제한적인 거죠. 동성 배우자 지원해 줄 것도 아니고, 내가 애를 낳을 것도 아니고, 내가 우리 애들을 가르치고 키웠지만 그렇다고 호적상 제 자식은 아니니까 지원받을 수 있는 건 없고.

소주 회사나 노조에서 조금 더 바뀌었으면 하는 게 있어요?
오동지 교육 같은 걸 통해서 소수자에 대한 인식을 바꿀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회사 같은 경우 민주노총에 소속돼 있기도 하고 화물연대 파업했을 때도 당연히 지지하죠. 우리 회사의 나이 든 세대들은 이렇게 노동 운동하면서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그런데 어떤 사회적인 문제, 성소수자나 장애인 인권 같은 문제에서는 아직 더 시간이 필요한 것 같고 가부장적인 것 같아요. 남자는 무조건 여자를 좋아해야 하고 여자는 무조건 남자를 좋아해야 하고. 그런 거에 대해서 용납이 전혀 안 되는 거죠. 그래서 저도 주로 젊은 분들한테만 커밍아웃하는 편이거든요. 교육 한 번으로 사람이 당장 크게 바뀌진 않겠지만, 그래도 기회라도 주어지면 좋겠어요.

오소리 교육만큼이나 오동지의 커밍아웃도 ‘경험’이라는 효과가 있을 것 같아요.
오동지 그렇죠. 이런 사람이라고 드러내는 것만큼 강력한 게 없어요. 그래서 커밍아웃을 많이 하고 있고요. 언젠가는 회사의 나이 든 세대분들에게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기회가 온다면 진짜 꼭 해볼 생각이에요. 사실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같이 살자고 하는 거지.

소주 마지막으로 워커스를 보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동지 계속 나아질 거라는 생각으로 행동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사실 성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한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것인데, 직장 동료가 무지개 굿즈를 소지한다거나 이런 아주 작은 것들이라도 커밍아웃에 있어 도움이 되거든요. 조금이라도 나은 어떤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고 다 의미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희망을 잃지 말고 조금이라도 변할 수 있도록 작은 무언가라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우리는 여수의 오동지 단골 가게로 이동해 술잔을 기울였다. 오동지에게 건배사를 제의하자 오동지는 이렇게 외쳤다.

포기하지 않는 것, 그것이 투쟁이다!”

<각주>
(1) 장서연, 김정혜, 김현경, 나영정, 정현희, 류민의, 조혜인, 한가람 (2014), 『성적지향·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 정성조, 김보미, 심기용, 한성진 (2022), 『”나 같은 사람이 혼자가 아니구나” 2021 청년 성소수자 사회적 욕구 및 실태 조사 보고서』,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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